코로나19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더위는 계속된다. 야간에도 최저 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는 단잠의 적이다. 그저 하루 이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불면이 계속됨으로써 반드시 다음 날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밤낮이 바뀌어도 괜찮을 여름방학과 휴가가 누구에게나 항시 주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여기 숙면을 도와줄 청각 콘텐츠들을 모아봤다. 하나하나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영상들이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처음 접하는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중에 단 한 가지가, 단 하루라도 당신의 숙면에 도움이 된다면 대성공이다.

 

 

#Music

잠든 후에 귀에 들리는 자극은 청각 시스템으로 하여금 파수꾼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깊게 잠들지 못하는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익숙하고 편안한 소리는 그들을 꿈나라로 데려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실제로 아시아의 불면증 환자 중 10명 중 9명은 음악을 듣는 것이 잠으로 이끄는 최고의 유도제라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좋을까?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안드레아 쉬프 연주

바흐가 자신의 제자이자 건반 연주자인 골드베르크(Johann Gottlieb Goldberg)를 위해 작곡했다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 곡은 불면증과 관련된 일화로 자주 소개된다. 당시 작센 주 영주이자 신성로마제국의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이 심한 불면증에 시달린 나머지 골드베르크에게 불면을 극복하기 위한 곡 몇 개를 부탁했고, 이에 바흐가 자신의 제자를 위한 수면용 변주곡을 써주었다는 것. 최초의 바흐 전기에 소개된 이 스토리는 비록 진위를 의심받기는 하지만, 곡의 뛰어난 작품성과 이야기가 주는 힘 덕분인지 그것을 들을 때 실제로 불면증을 극복하게 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샤데이 <Diamond Life>

Sade <Diamond Life>

가사를 생략하고 악기를 최소화한 잔잔한 클래식 곡이나 뉴에이지풍의 이지리스닝 음악만이 수면에 도움이 될 거라고 여기는 것은 오해다. 가사와 목소리, 여러 악기의 합주 사운드가 있어도 편안한 목소리와 유려한 연주만 보장된다면 밴드 음악도 충분히 수면 유도 음악이 될 수 있다. 나긋나긋하고 몽환적인 목소리의 샤데이 아두를 앞세운 영국 밴드 샤데이(Sade)의 음악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스튜디오 데뷔 앨범 <Diamond Life>를 들어보자. 러닝타임 45분 내내 나른하고 달콤한 스무드 소울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 앨범은 재즈 신과 팝 신 양측에서 모두 사랑받으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해의 그래미 신인상은 당연히 샤데이의 차지였다.

 

 

#White Noise

수면을 도울만한 청각 자극으로 '백색소음(White Noise)'을 빼놓을 수 없다. 백색소음은 일정한 청각 패턴 없이 일정한 스펙트럼을 가진 소음을 말한다. 마치 '흰 빛'과 같은 형태의 주파수 형태를 띄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한때 백색소음이 집중력을 향상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퍼지며 관련 제품이 국내에 인기를 끈 적도 있지만, 사실 백색소음이 심리적으로 이로운 효과를 준다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효과 측면일 뿐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뜻. 하지만 거꾸로 말해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분명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운드버즈 '진공청소기' 일상소음

사운드버즈(Soundbuds)는 각종 백색소음을 업로드하는 채널이다. 빗소리, 파도 소리, 풀벌레 소리와 같은 자연의 백색소음부터 샤워기 소리, 헤어드라이어 소리, 선풍기 소리 등 가정에서 들을 수 있는 일상소음까지 총 40여 가지에 이르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백색소음 콘텐츠를 총망라하고 있다. 이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은 진공청소기 소리 영상이다. 모터 소리와 공기를 강하게 흡입하는 소리가 합쳐진 특유의 소리가 고음질로 2시간 가량 녹음되어 있다. 2015년 업로드된 후 지금까지 700만 건이 넘게 조회되었고, '좋아요' 수는 1.4만, 댓글은 1천 개가 넘었다. '싫어요' 수도 4천 개가 넘는 만큼 소리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있는 것 같지만, 진공청소기 소리가 태아가 뱃속에서 듣는 소리와 비슷하여 실제로 우는 아이를 달래는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다고 하니 나에게도 맞을지 한 번쯤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AMSR

수면 유도 콘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는 ASMR은 '자율 감각 쾌감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일컫는 신조어다.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리'라는 뜻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앞서 소개한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음악이나 백색소음도 포함하는 개념이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그것이 널리 전파된 후에는 '3D 서라운드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소리'라는 한정적 의미가 강해졌다. 말하자면 ASMR은 귀를 거치는 콘텐츠이지만 부가적으로 화면과 반드시 이어폰을 거쳐 느끼는 다른 감각, 이른바 시각과 촉각 또한 그 기능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래피태피 '태핑' 영상

래피태피(RaffyTaphy)는 해외 ASMR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유튜버 중 하나다. 섬네일 이미지에서부터 보이는 건장한 체격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외형이 투박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보기와 다르게 무척 섬세한 ASMR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유튜버다. 그의 콘텐츠 중에서도 각종 사물을 두드리는 태핑 사운드와 손을 이용해 각종 소리를 만들어내는 핸드 사운드는 '최고'라고 치켜세워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인 ASMR 크리에이터의 경우 지극히 한정된 패턴의 태핑 사운드와 핸드 사운드만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래피태피는 마치 타악기를 연주하듯 러닝타임 내내 다양한 소리와 리듬을 창조해낸다. 그가 방에서 단순히 몇 가지 사물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촬영한 2017년 영상은 조회 수가 무려 2,000만을 돌파했으며, 다른 유튜버들이 따라하거나 패러디할 정도로 ASMR계의 교과서 같은 영상이 되었다. 비록 영상이 매우 드문드문 업데이트되는 것이 단점이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양하이잉 '연꽃 그림 그리기' 영상

양하이잉(Yang Haiying)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거주하는 중국계 미국인 유튜버다. 세련된 스타일과 다정한 미소로, 마치 잘 아는 이모나 신세대 할머니 같은 인상을 풍기는 그는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무려 4개 국어를 활용해 청자에게 말을 걸며 각종 일상 ASMR 영상을 촬영, 업로드한다. 이 영상은 양하이잉이 색연필로 종이에 연꽃을 그리는 25분을 담고 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 대신 담긴 차분한 비주얼과 사각거리는 색연필 소리, 부시럭거리는 종이 소리의 단출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 편안한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Writer

끊임없이 실패하고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사람. 나를 어리석게 하는 모든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들의 총체가 곧 나임을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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