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20년대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스윙 밴드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며 관중들을 포복절도하게 했다. 열다섯 살부터 극장과 카바레에서 사람들을 웃기며 피아노를 치고 노래했다. 1930년대 브로드웨이 쇼가 성행하며 그는 작곡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훗날 재즈는 진지한 감상용 음악으로 변모하여 코미디 쇼와 같은 그의 음악이 재즈의 역사에서 간과되고는 하지만, 그가 남긴 ‘Ain’t Misbehavin’’이나 ‘Honeysuckle Rose’ 같은 곡은 수많은 가수가 부른 재즈 스탠더드가 되었다. 그를 가리켜 후세 사람들은 ‘스윙 피아노의 왕’이라 불렀다.

영화 <Stormy Weather>(1943)에서 리바이벌한 브로드웨이 곡 ‘Ain’t Misbehavin’’(1929)

그는 열여섯의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이내 이혼 후 재혼하여 두 집에 양육비를 대느라 항상 돈이 부족했다. 자신 역시 대식가라 한 번에 핫도그 12개나 햄버거 10개를 먹을 정도여서 배가 고팠다. 그는 수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나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브로드웨이의 부유한 백인 작곡가에게 팔고는 나중에 후회하기 일쑤였다. 식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몇 곡을 즉석에서 팔기도 했고, 수백 달러의 수표를 받고 무더기 곡을 판 적도 있었다. 그가 팔았던 곡이 히트하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주위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토로하여 상당히 많을 것이나, 그가 얼마나 많은 곡을 브로드웨이로 넘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39세의 이른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을 때 공식적으로 그의 저작권으로 남은 곡은 400여 곡에 이르렀다.

오프-브로드웨이 쇼 <Load of Coal>(1929)에 삽입된 ‘Honeysuckle Rose’. 이 곡 역시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가 활동하던 1920년대의 시카고는 알 카포네의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던 무법 시대였다. 그는 1926년 시카고에서 공연할 때 네 명의 조직원에게 납치되어 알 카포네가 소유한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알 카포네의 생일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를 ‘서프라이즈 게스트’로 데리고 온 셈이었다. 알 카포네가 다가와 그에게 총을 겨누고는, 눈을 가리고 피아노를 치면 1백 달러 지폐를 주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그곳에서 3일 동안 연주를 해야 했고 파김치가 되어 그곳을 나올 때는 주머니에 1백 달러 지폐가 가득했다고 한다. 팻츠 월러가 알 카포네 생일 파티에 납치된 일화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Ain’t Misbehavin’: The Fats Waller Musical Show>(2013)

그의 음악을 소재로 한 브로드웨이 쇼 <Ain’t Misbehavin’>이 1978년에 제작되어 토니상을 수상하였고, 지금까지도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25세였던 1929년에 녹음한 곡들의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1973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초창기 재즈 스타로 인정되는 루이 암스트롱이나 듀크 엘링턴의 그림자에 가렸으나, 팻츠 왈러 역시 카운트 베이시나 에롤 가너의 스윙 피아노에 영향을 끼친 주요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원래 그가 작곡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햄버거값에 팔아버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작곡으로 알고 있는 재즈 스탠더드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패츠 월러의 팬 중의 한 명인 앙드레 프레빈의 <Andre Previn Plays Fats Waller>(2000)에 여덟 곡을 새롭게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