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1,000만을 넘었다. 동물은 더는 가축이나 소유물이 아니다. 인간과 시공간을 공유하며 삶의 동고동락을 나누는 존재다. <동물해방>을 쓴 철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을 이용해 인간이 혜택을 누린다고 해서, 그 사회에서 동물들이 받는 고통을 정당화하진 않는다고 봤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몇 선진국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포함해 헌법에 생명권을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동물권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일찍이 동물권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한 작가가 있다. 바로 존 맥스웰 쿳시다. 소설 형식의 강연을 통해 동물권에 관해 이야기한 존 쿳시의 작품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글쓰기는 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존 쿳시는 1940년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수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1984년부터 2002년까지 케이프타운 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쿳시의 작품은 아프리카의 유산 속에 스며 있는 유럽 제국주의의 이면을 드러낸다. 아울러 식민주의, 권력, 성, 인종 등의 문제와 서구 문명의 위선을 소설 속에 녹여냈다. 2003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또한 <마이클K>로 부커상을 받았고, <추락>으로 최초로 부커상을 2회 받은 작가가 되었다. 맨부커 심사위원장 보이드 톤킨은 쿳시의 노벨상 수상 결정 직후 영국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추락’을 읽고 ‘얼음 깨는 도끼(ice-axe)’로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평한 바 있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소설가 벤저민 쿤켈은 존 쿳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쿳시를 동물로 치자면, 약삭빠르고 교활한 여우 정도가 될 것이다. 쿳시가 동물권과 윤리적 채식주의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의 손을 거치는 순간, 이 주제는 그의 섬세한 감각에 그만의 예리한 관찰력이 더해져 고통의 문제로 승화된다." 쿳시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소설의 틀을 빌어 동물권이라는 윤리적 논쟁을 다룬다. 실제 존 쿳시는 1997년~1998년 프린스턴 대학이 주최한 한 강연에 연설자로 참석해 "동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 강연 원고가 소설의 바탕이 됐다. 일반 강연 형식을 벗어나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그의 강연과 토론, 일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3장과 4장의 내용은 '인간이 어떻게 동물을 대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를 포함하고 있다.

 

<동물들의 삶1: 철학자들과 동물들>

주인공 ‘코스텔로’는 채식주의자이자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다. 실제 존 쿳시가 남아프리카 생활을 청산하고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을 한 사실을 알게 되면 저자가 코스텔로가 겹쳐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코스텔로는 애플턴 대학 강연 초청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전공인 문학에 대해 강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엄청난 규모의 범죄지만 지식인과 친구들이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동물 학대'에 대해 연설다. 그는 수많은 지식인 앞에서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데 동감력이 부족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동물) 대학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도덕성은 전혀 손상받지 않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에 학계 동료들은 철학적, 이성적 근거를 내세워 비판한다. 하지만 코스텔로는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윤리적으로 만드는 데 있어 철학이 가진 능력은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등장인물들의 논쟁 속에서 독자들은 명확한 정답을 정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동물권'에 대해 서로가 동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들의 삶2: 시인들과 동물들>

두 번째 강연에 참석한 코스텔로는 청중들에게 테드 휴즈의 시 <재규어>를 소개한다. 그는 휴즈의 시를 공감적 상상력이 뛰어난 예로 들면서 '우리도 동물들을 체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즉 <재규어> 시를 곰곰이 회상해보면서 잠시 재규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코스텔로가 언급한 '동물 되기'의 가능성은 동물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흔든다. 강연이 후반부에 다다르자 애플턴 대학 철학교수인 토머스 오헌은 "동물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며 "결국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코스텔로는 마지막으로 발언한다.

"삶이 우리에게는 중요하지만 동물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동물을 모르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 동물은 자신의 온 존재를 남김없이 그 몸부림에 쏟아 붓습니다. 지적인 공포심을 갖는 것이 동물들의 존재 방식은 아닙니다. 그들의 온 존재는 살아 있는 몸에 있습니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