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트리오 형식으로 주로 녹음하던 빌 에반스는 1963년부터 솔로 피아노 형식의 음반을 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Conversation with Myself>(1963)으로 이듬해 그래미 재즈 연주상을 받은 명반이 되었다. 대부분 재즈 스탠더드로 구성한 이 음반에 그가 작곡한 오리지널 한 곡이 수록되었는데, 그해 초 심장마비로 운명한 그의 친구이자 동료 피아니스트 소니 클락(Sonny Clark)에게 헌정한 ‘N.Y.C.’s No Lark’다. 이 곡의 제목은 친구 이름의 알파벳 순서를 뒤바꿔서 붙인 것이다.

빌 에반스 <Conversation with Myself>(1963)에 수록한 ‘N.Y.C.’s No Lark’

소니 클락은 재즈사에 자주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의 마약 희생자로서, 전성기였던 서른한 살에 생을 마감한 비극적 인물이다. 1963년 1월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뉴욕 앨빈 호텔의 로비에 있는 주니어바(Junior’s Bar)에서 연주를 한 후, 다음 날 마약 과용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사실만 명확할 뿐 그 이상의 자세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후견인이었던 파노니카 남작 부인(관련 기사)이 고향 피츠버그의 누나에게 전화로 그의 사망사실을 알렸고 자신이 고향으로 운구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신 도착 후 동생의 모습이 너무 달라 병원에서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했지만,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상 뉴욕에서 마약 과용에 의한 흑인의 변사체가 병원에서 뒤바뀌는 경우는 흔했다. 만약에 시신이 뒤바뀌었다면, 그는 고향 피츠버그가 아니라 뉴욕의 이름없는 묘지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Cool Struttin’>(1961)에 수록된 오리지널 ‘Cool Struttin’

클락은 피츠버그의 광산촌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광부였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직업병인 폐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와 친척 아래서 자란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인근 호텔에서 피아노를 쳤고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연주에 감탄했다. 스무 살에 캘리포니아의 숙모 집에 방문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기서 직업적인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6년 후에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블루노트와 계약하면서 명반을 내기 시작했다. 남긴 10여장의 음반 중 <Sonny Clark Trio>(1957), <Cool Struttin’>(1958), <Leapin’ and Lopin’>(1961)는 그의 블루노트 시절을 대표하는 명반들이다.

<Leapin’ and Lopin’>(1961)에 수록된 오리지널 ‘Voodoo’

그중에서도 젊은 여인이 경쾌하게 걸어가는 재킷 사진으로 유명한 <Cool Struttin’>(1958)은 뉴욕 타임즈가 “불후의 하드밥 클래식”으로 인정한다. 앨범 사진은 블루노트의 공동대표 프란시스 울프가 찍었고, 동업자 알프레드 라이언 대표의 부인이 모델이 되었다. 이 음반은 여러 차례 CD로 다시 찍어내야 할 정도로 인기였고, 하드밥 팬들에게는 지금도 컬트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소니 클락의 명반 <Cool Struttin’>의 유명한 앨범 재킷

소니 클락이 재즈 신에서의 경력은 불과 10여년이지만, 짧은 시간에 하드밥을 대표하는 위치에 올랐고 사후에는 컬트로 대우받는다. 그의 생애가 좀 더 길었더라면 재즈 뮤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하는, 아쉬움의 대상인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죽은 후 시신을 고향에 보내 준 후견인 니카(Nica)를 위해 작곡한 ‘Nica’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면서, 그의 단명을 아쉬워해 본다.

맥스 로치와 함께 한 <Sonny Clark Trio>(1960) ‘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