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레루>, <아주 긴 변명> 등을 연출한 일본의 영화감독 니시카와 미와가 에세이 <고독한 직업>을 출간했다. 국내에는 지난 4월 소개됐다. 이 책은 감독이 문예지 <제이노블> 등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단행본으로 화제작의 뒷이야기와 영화에 대한 감독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에세이를 펴낸 영화감독은 니시카와 미와가 처음이 아니다. <어느 가족>으로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 이경미는 자전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연출론과 일상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쓴 글을 들여다보는 일은 영화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다.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영화감독이 쓴 에세이 3권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니시카와 미와 <고독한 직업>

니시카와 미와는 일본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로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러다 TV 프로그램 프로덕션 TV MAN UNION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나 <원더풀 라이프>의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일에 발을 들였다. 2002년 각본 연출한 <뱀딸기>로 데뷔했다. 이후 자신이 쓴 소설 <유레루>를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을 연출해 일본과 한국에 이름을 알렸다. 2016년에 만든 <아주 긴 변명> 역시 본인이 직접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영화 <유레루> 스틸컷

 

"처음부터 결론을 아는 작품을 만드는 건 재미없다."

<고독한 직업>은 영화와 연관된 니시카와 미와의 일상과 생각의 단편을 모은 책이다. 'x=오디션'이라는 글에서는 과거 취업 준비생 시절 여러 번의 면접으로 상처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 오디션 참여자들에게 면목 없어 하는 글쓴이의 귀여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외 매력 있는 인생 캐릭터를 스모 선수에 빗대어 설명하는 글, 자신에게 영감을 준 감독과 배우, 영화에 대해 성실히 논하는 글, 영화 <유레루> 제작노트를 읽고 있노라면 니시카와 미와의 일상과 영화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드니로 어프로치를 동경하고, 필름을 그리워하고, 언제까지고 알 수 없는 영화, 알기 힘든 영화,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영화를 하며 만난 여러 사람에 대한 마음까지 우리는 참으로 닮았습니다”라고 배우 문소리가 추천사를 썼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바닷마을 다이어리>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아무도 모른다> 등 자신만의 가치관과 태도로 좋은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소설과 에세이로 관객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사로잡았다. 그가 쓴 대표적인 에세이는 <걷는 듯 천천히>와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론과 다큐멘터리에 대한 전문적인 고민이 중점적으로 녹아든 에세이라면, <걷는 듯 천천히>는 조금 힘을 빼고 영화와 세상사, 다큐멘터리와 관련된 감독의 생각과 일상을 짤막한 이야기들로 엮은 책이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스틸컷

 

"작품이나 감독이 무엇과, 누구와 혈연을 구축해가는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출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걷는 듯 천천히>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등장한 주인공 아이들의 캐스팅 에피소드부터 칸 영화제 대상작을 보면서 느꼈던 점,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가진 저널리즘 신념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해 친근한 방식으로 일화를 풀어나간다. 저자로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꾸준히 배우고 느끼는 감독이다. 그는 어린 배우로부터 듣기의 힘을 깨닫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역할을 다시 곱씹기도 한다. 이 책에는 그가 좋은 감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담겨 있다.

 

 

이경미 <잘돼가? 무엇이든>

<미쓰 홍당무(2008)>와 <비밀은 없다(2016)>으로 알려진 이경미 감독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이다. 최근에는 아이유와 배두나 주연의 넷플릭스 단편 영화 <러브 세트>를 연출했다. 현재는 배우 정유미와 함께 정세랑 작가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잘돼가? 무엇이든>은 감독이 매일 쓴 일기와 <채널예스>에 연재한 '이경미의 어쨌든'의 글들을 엮은 에세이다. 에세이에 삽입된 일러스트는 이경미 감독의 동생 이경아 작가가 그렸다. 솔직하고 통통 튀는 이야기로 출간 일주일 만에 3쇄를 찍으며 인기를 얻었다.

 

"영화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완성한다."

이 책은 이경미 감독의 데뷔작 <잘돼가? 무엇이든>과 같은 제목이다. 감독의 맛깔스러운 글빨(?)에 빠지면 그 자리에 앉아 한 번에 통독이 가능한 책이다. 그만큼 재밌고 유쾌하다. 책에서 이경미 감독은 감독이 되기 전 직장인이었으며 그것도 러시아인 세르게이 상무의 비서로 일했던 사실을 밝힌다. 해당 에피소드를 읽으면 영화 <미쓰 홍다무>에서 주인공이 하필 왜 러시아어 교사였는지가 수긍이 갈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홧김에 영화학교에 들어갔지만, 감독에게 펼쳐진 것은 불안정한 미래였다. 영화감독 데뷔 후 두 번째 영화를 만들기까지 걸린 8년의 세월 동안,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는 지금까지 한 개인으로서 느낀 분노, 억울함, 유쾌함, 불안함, 뿌듯함의 감정을 소소한 일상을 바탕으로 기록했다.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감독이 써 내려간 현실 이야기도 개성 넘쳐서 각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