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예부터 비극을 글로 남겼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부터 비극은 문학의 여왕이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서점 소설 코너엔 제각기 다른 불행이 가득하다. 하지만 일상에선 불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폭력적인 긍정주의가 만연한 도시는 인간의 비참을 돌보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엔 행복한 환희만 수두룩하다. 우울한 감정은 미처 드러날세라 감추기 바쁘다. 살기가 퍽퍽해 타인의 고뇌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들은 누군가의 불행을 적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음 소개하는 세 소설집은 지금 한국 사회가 근심하는 불행에 관해 말한다.

* 이 글엔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세희 작가 <가만한 나날>(2019)

표제작 <가만한 나날>의 화자는 특이하게도 직업적 블로거다. 블로그를 통해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마케팅 회사에서 일한다. 가짜 계정을 만들어 온갖 물품의 사용 후기를 올린다. 마치 진짜 자신이 사용한 듯 그럴싸케 포스팅한다. 화자가 만든 캐릭터는 30대 후반의 ‘채털리 부인’이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취향으로 동년배 주부를 현혹한다. 그녀가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채털리 부인은 거짓으로 꾸민 삶의 양태를 판매하는 셈이다.

작가가 되길 희망했지만 여의치 않아 홍보업체 취업한 화자는 블로거가 본인에게 잘 맞는다고 느낀다. 채털리 부인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는 그녀가 포기했단 문학을 향한 갈증을 일깨운다.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일상을 적는 에세이 작가처럼 그녀는 채털리 부인에 몰입한다. 마치 소설을 적듯 있을 법한 이야기를 꾸며 생생한 캐릭터를 구축한다. 문제는 회사 방침에 의해 허위를 바탕으로 한 상업적 게시물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못내 찜찜한 마음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퇴근과 함께 고민도 끝난다. 먹고사는 데 급급해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어느 날 채털리 부인은 자신이 홍보한 살균제가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유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비극에 휘말린 화자는 더는 채털리 부인이 되지 못한다. 제 일이 가닿은 여파가 윤리적으로 바닥을 드러내자 파열한다.

김세희 작가는 2015년 등단 이후 올해 첫 소설집 <가만한 나날>을 펴냈다. 작가는 사회 초년생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우리가 늘 겪는 직장에서의 고민, 지하철에서 스치는 일상의 갈등을 다룬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장은 현실에 가까워 서늘하고 끝내 놓아버리지 않아 온기를 머금는다.

 

김애란 작가 <바깥은 여름>(2017)

소설집 <바깥은 여름>은 김애란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2002년 등단 이래 청춘의 설움과 고달픔에 집중했던 초기를 넘어 문단 주류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슬픔을 농담처럼 적던 작가는 <바깥은 여름>에 이르러 일상을 꿰뚫는 상실에 주목한다. 소설집에 수록된 7편 모두 체념의 정조가 안개처럼 자욱하다. <바깥은 여름>이 다루는 소재는 전과 다를 게 없다. 변화라면 극 중 화자가 사회에 부대껴 어느 정도는 요령을 득했다는 점이다. 삶에서 뭔가를 바꿔 볼 엄두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회를 비난할 수도 없는 어중간한 위치에 선다. 이는 ‘김애란’이 직면한 작가로서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 문단의 공고한 스타 작가로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짙게 배어 있다.

다음은 수록작 중 하나인 <건너편>의 한 단락이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춘 적이 있었다.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중략) 동일한 출발선을 돌아본 뒤 교훈을 찾고 줄거리를 복기할 입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색한 침묵이 돌면 금방 다른 화제를 찾아내겠지. 어쩌면 다른 친구들도 이미 타인의 삶에 심드렁해진 지 오랜데.”

누군가를 상상하기엔 버거운 일상, 타인을 향해 한 소리를 보태기도 부담스럽다. 작가는 <바깥은 여름>을 통해 토로한다. 그래 난 너희의 삶을 잘 몰라. 그저 최대한 가닿아 보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불행을 상상해 적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해보는 거야. 무뎌진 마음과 무력한 눈으로 김애란은 바깥에 있는 제 처지를 살핀다.

 

최은영 작가 <쇼코의 미소>(2016)

<쇼코의 미소>는 출간된 지 3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이 소설집이 가진 미덕은 수록된 7편이 작품이 하나같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마치 버릴 게 없는 네스프레소 캡슐처럼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건 최은영이 가진 문체에 공고함에 기인한다. 문장마다 작가 특유의 사려를 느낄 수 있다. 무리한 보폭이 없이 끝없이 길을 걷는 당나귀처럼 온순하다. 인물을 향한 사려가 담긴 언어의 조탁은 부대낌 없이 세심하다. 자극적 소재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한 보 한 보에 집중한 결과다. 내디딘 문장이 미처 뭔가를 놓치지 않았을까 심려한다.

 수록작 중 하나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의 경우 작은 상처가 덧나 끝내 생채기를 내는 가혹한 소설이다. 군부독재 시절과 빈곤, 운동권 학생들과 노동자의 처우와 같은 먼지 나는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작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누군가를 비춘다. 역사는 잊었으나 어딘가에 상흔처럼 남은 인물이다. 상처 난 이의 궁여지책을 고육지책으로 만드는 참혹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최은영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소설이 가진 끈덕진 태도는 삶이란 당신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목소리다. 작품의 말미에 최은영은 이런 문장을 적는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최은영이 그린 한국엔 지긋지긋한 도시인의 염증과 어찌할 도리 없이 이곳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상존한다. 그건 한국인이라면 살갗이 기억하는 감정이다. 도시의 새침한 생김새와 매캐한 공기 속에 주위를 기민하게 살피는 그들은 친숙하다. 어느 곳에서나 고개를 파묻고 카카오톡으로 쭈뼛거리고, 인스타그램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그들. 감정을 최대한 압축해서 언어마저 이미지의 한 형태로 소비하는 그들. 뭉친 어깨처럼 딱딱한 그들을 최은영은 더딘 손길로 매만진다. 미처 해소하지 못한 여지를 곡진하게 다듬는다. 최은영은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 이라며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밝혀왔다.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