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왈드런의 <Left Alone> 표지

뉴욕의 재즈 명문 레이블 프레스티지(Prestige)는 1957년 소속 재즈 뮤지션 중 올스타 콤보를 구성해 앨범 <Interplay for 2 Trumpets and 2 Tenor>를 기획했다. 당시 프레스티지의 하우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역할을 했던 멜 왈드론(Mel Waldron)은 여기에 수록된 네 곡을 모두 작곡하였는데, 이 중 ‘Soul Eyes’는 올스타 중 한 명이었던 존 콜트레인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다. 콜트레인은 4년이 지나 정상의 위치에 오른 후 자신의 앨범 <Coltrane>(1961)에서 자신의 클래식 쿼텟과 함께 다시 이 곡을 연주하여 재즈 스탠더드로 올려 놓았다. 그의 연주는 맥코이 타이너의 피아노 솔로와 함께 평론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Coltrane>(1961)에 수록한 ‘Soul Eyes’

이 곡은 그 후로 명성을 얻으며 후대의 재즈 뮤지션들이 수백 회에 걸쳐서 녹음한 재즈 발라드의 명곡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콜트레인-타이너의 연주와 자주 비교되는 버전은, 1991년 스탄 게츠가 사망하기 직전 케니 배런과 함께 출반한 <People Time>(1991)에 수록한 곡이다. 콜트레인과 타이너 콤비의 무덤덤한 연주와 게츠와 배런의 감미로운 연주는 악기 별로 비교해서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곡은 1980년대부터 가사를 붙여 노래로 불렀고, 가장 최근에는 켄더스 스프링스(Kandace Springs)의 데뷔 앨범 <Soul Eyes>에 수록되면서 다시 한번 인구에 회자되었다.

스탄 게츠 & 케니 배런 ‘Soul Eyes’ 실황(1989)

멜 왈드론에 대해 얘기할 때 빌리 홀리데이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1957년부터 두 사람은 함께 투어에 동반하며 홀리데이가 사망한 1959년까지 그의 전담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홀리데이는 왈드론 첫째 딸의 대모가 될 정도로 두 사람은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두 사람이 함께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연주 여행을 가던 비행기에서 만든 ‘Left Alone’은, 홀리데이가 자신의 슬픈 인생을 묘사한 곡으로 또 하나의 유명한 재즈 발라드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자신이 가사를 쓴 이 곡을 한 번도 녹음하지 못한 채 마지막을 맞았고, 멜 왈드론은 그 해 자신의 앨범 <Left Alone>(1959)에 홀리데이에 대한 회고의 변과 함께 최초로 출반했다.

CBS <The Sound of Jazz>에 함께 출연한 빌리 홀리데이와 멜 왈드론

멜 왈드론 역시 홀리데이처럼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홀리데이가 사망한 지 4년이 지난 1963년에는 헤로인 과용으로 쓰러져 자신이 쓴 곡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망가졌다. 그 후 자신의 레코드를 들으며 차츰 좋아졌고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그는 미국에서의 찌들었던 생활에서 벗어나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유럽에 정착하였고, 고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 “극심한 경쟁”과 “백인 뮤지션보다 낮은 보상” 이라고 밝힌 바 있다. 뮌헨에 정착하여 ECM과 계약을 맺었고, 첫 앨범 제목을 <Free at Last>로 정하여 미국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왔던 삶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던지를 알 수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를 추모한 앨범 <Left Alone>(1959)에 수록한 타이틀곡

그는 유럽에서 안정된 뮤지션 생활을 영위하며 200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77년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100장이 넘는 앨범을 남겼다. 두 번의 결혼으로 일곱 명의 자녀를 둔 그는, 70세 생일 때 전처와 일곱 명의 자녀, 그리고 두 명의 손자 손녀와 함께 두 번째 부인의 모국인 일본으로 3주간 여행을 할 정도로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 암을 진단받은 후 브뤼셀의 병원에 머물며 자신의 마지막 날이 된 그해 12월 2일에도 피아노를 쳤다고 전해졌다.

다큐멘터리 <A Portrait of Mal Waldron>(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