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의 대중은 나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는 1944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 이런 말과 함께, 사후 20년 동안 자신의 작품을 봉인해 달라는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긴다. 그의 판단이 옳았던 것일까? 1986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사후 첫 전시를 시작으로, 총 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맞이하며 클린트는 뒤늦게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년 10월, 뉴욕 구겐하임에서 개최된 <미래를 위한 그림(Paintings for the Future)>이란 제목의 대규모 회고전 역시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 “이 그림들은 계시(revelation)이다." 영국의 유명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이미지 출처 ‘Modern Amusset

클린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혼이나 사후세계, 우주적인 힘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신학에도 역시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의 이면에는 슬픈 사건이 있었다. 바로 오랜 시간을 의지하며 지냈던 여동생의 급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 영적 세계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현실이 물리적 세계에 국한되어 있음을 부정했고, 육체적 죽음에 구애받지 않는 영혼의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동료들과 함께 ‘the Five’ 이라는 오컬트적 성격의 그룹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신적 존재와 속세를 잊는 영매의 역할을 수행하는 훈련도 받았다. 그들은 실제로 영혼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의식을 반복했으며 그 과정을 드로잉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Modern Amusset
이미지 출처 ‘Modern Amusset

화폭을 채우는 풍부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선, 그리고 도형들은 작가가 보는 영적 세계, 즉 보이지 않는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클린트의 그림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유명한 추상 미술 작품들과는 달리 완벽한 비례와 대칭, 균형감을 강조한 장면들도 여럿 보인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삼각형, 하나의 중심을 두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원형들을 보면 도식적인 다이어그램이 연상되면서 전통적인 아르누보의 형식도 함께 떠오른다. 또한 이와 동시에 빛의 파장이나 눈의 결정 같이 자연물에서 목격할 수 있는 과학적 조화 역시 포착된다. 클린트의 작품이 독자적인 위치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 인식 불가능한 영역의 것들을 인간의 오감으로 감각할 수 있도록 묘사하는 것, 즉 추상적인 것의 시각적 성취를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렇게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영역은 작가의 손끝을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그 스스로가 속세 안에서 영적 세계와 교감을 나누었던 것처럼.

이미지 출처 ‘New Republic
이미지 출처 ‘Hilma Af Klint
이미지 출처 ‘Modern Amuseet

이 위대한 화가는 결국 자신이 예언했듯 생전에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로부터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업적을 온전히 인정받게 되었다. 자신의 작업이 추상미술의 대부인 칸딘스키나 말레비치, 몬드리안보다도 몇 년 앞서 있다는 미술계와 언론의 극찬을 그는 아쉽게도 직접 들을 수 없었다.

동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작가 스스로 단정했던 건, 단지 그들의 독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통을 중시하고 검열이 심하며, 여성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어려운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 근원이었다. 그러나 이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나갈 수 있었던 건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 ‘있음’ 자체에 대한 순수한 믿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만약 영혼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미술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바라보는 그의 영혼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Writer

단단한 것을 좋아한다.
주단단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