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스포츠 중 하나다.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감독이 복싱에 관심을 가져왔다. 복서에게 링은 삶이고, 경기가 이뤄지는 매 라운드는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이며, 그들이 날리는 주먹은 세상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복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경기 중인 복서를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의 삶을 복서에게 투영한다. 링 위에서 주먹으로 삶을 증명하는, 복서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영화들을 살펴보자. 

 

<록키>

별 볼 일 없는 복서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는 고리대금 업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짝사랑하는 ‘애드리안’(탈리아 샤이어)와의 미래를 꿈꾸지만, 그의 상황은 그리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칼 웨더스)가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서 무명 복서와의 대결을 추진하고, 그 상대로 록키가 지목된다. 록키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 훈련에 집중한다.

<록키>(1976)는 개봉 당시에 흥행과 함께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은 작품으로, 제4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당시 무명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은 직접 <록키>의 각본을 썼고, 자신이 주연을 맡는다는 조건을 수용한 영화제작사와 계약 후에 저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제작 당시에는 그 누구도 <록키>의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결국 <록키>는 복싱 영화의 상징이 됐다.

<록키> 트레일러

<록키>를 계기로 단숨에 무명에서 벗어나 스타가 된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 발보아, 그 자체인 인물이다. <록키>에서 자신이 직접 주연과 각본을 맡기도 했고, <록키>의 후속 시리즈에서는 주연, 각본, 연출을 직접 맡는다. 무엇보다도 <록키>에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삶이 녹아 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라는 자신에게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와 같은 영화로 성공한 이야기는, 록키 발보아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는 메시지가 주는 희망은 <록키>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된 이유 중 하나일 거다.

 

<성난 황소>

‘제이크 라 모타’(로버트 드니로)는 복싱 챔피언이 되기 위해 동생이자 매니저 ‘조이 라 모타’(조 페시)와 훈련 중이다. 제이크는 우연히 본 ‘비키’(캐시 모리어티)에게 반하고, 부인과 이혼한 뒤 비키와 혼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이크는 복싱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비키와 조이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점점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성난 황소>(1980)는 <록키>를 제작한 로버트 차토프와 어윈 윙클러가 제작한 작품으로, 마틴 스콜세지는 <록키>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복싱 영화를 만들었다.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선수 시절의 날렵한 제이크 라 모타와 중년이 되어 체중이 늘어난 제이크 라 모타, 두 가지 모습 모두 로버트 드니로가 특수분장 없이 실제로 촬영 기간에 체중을 늘려서 촬영했다. 배역을 위해 체중 등 외적인 부분을 변화시킨 뒤 역할에 몰입하는 그의 연기를 ‘드니로 어프로치’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로버트 드니로는 <성난 황소>로 제5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성난 황소> 트레일러 

실제 미국의 프로 복서이자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제이크 라 모타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성난 황소>는, 제이크 라 모타의 삶을 통해 인간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러닝타임 내내 성장하다가 결국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 빛을 보는 다른 영화 속 복서들과 달리, <성난 황소>의 제이크 라 모타는 바닥에서 시작해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바닥을 찍는다. <성난 황소>에는 관객이 응원하고 싶은 복서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주먹으로 성공한 인간이 결국 주먹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이야기만 존재할 뿐이다.

 

<백엔의 사랑>

32살의 ‘이치코’(안도 사쿠라)는 취업, 연애 등 거의 모든 걸 포기한 채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다. 게임과 군것질이 일과인 이치코는 여동생(코이데 사오리)과 매일 싸우다가 결국 가족들 앞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쫓겨나듯 독립을 결심한 이치코는 단골이었던 백엔 샵에서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치코는 우연히 복싱장 앞을 지나다가 본 복서 ‘카노’(아라이 히로후미)를 좋아하게 되고, 그의 은퇴 경기를 보면서 복싱의 매력을 느낀다.

카노가 이치코에게 복싱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이치코는 말한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이들이 경기가 끝나면 서로 고생했다며 어깨와 등을 두드려 주잖아.” 이치코는 무엇을 시작하기조차 두려워서 포기부터 해버리는 삶을 살아왔다. 죽일 듯이 싸워도 결국 끝에는 위로가 존재하는 복싱은, 때리기만 하고 위로는 없는 세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을 거다.

<백엔의 사랑> 트레일러 

복싱 프로선수 테스트의 나이 제한은 32살로 이치코의 나이와 일치한다. 이치코는 복싱, 아르바이트, 사랑 등 모든 것을 이제서야 시작하려고 하는데, 세상은 늦었거나 끝났다고 말한다. 세상의 기준이 뭐라고 해도 이치코의 삶은 이제 막 시작했다. 이치코는 링에 오르기 전 자신을 백엔 짜리 여자라고 칭하지만, 삶의 그 어떤 것도 함부로 정량화할 수 없다. 이치코는 복싱장에서 줄넘기를 하고, 스텝을 밟고, 주먹을 뻗는 과정을 통해 제자리걸음처럼 보이는 모든 순간이 결국 전진이었음을 배운다. 세상은 앞으로도 이치코의 삶을 각종 수치로 계산하려 들겠지만, 이젠 이치코의 삶은 백엔 짜리 동전이 아니라 두 주먹으로 그려내는 무한대다.

 

<크리드>

‘아도니스 존슨’(마이클 B. 조던)은 복싱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인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를 설득해 그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아도니스는 아랫집에 사는 ‘비앙카’(테사 톰슨)와 연인이 되고, 록키와 호흡을 맞추며 모든 게 좋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그와 록키 앞에 위기가 찾아온다.

<크리드>(2015)는 <록키>에서 파생된 작품으로, 평단의 호평과 흥행 성공에 힘입어 2편까지 제작되며 <록키>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특히 <록키> 시리즈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자리를 옮긴 실베스터 스탤론이 빛나는 작품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 이후로 참여한 영화 대부분에서 평단의 혹평을 받았고, 최악의 영화에 상을 주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20세기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크리드>를 통해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만회상’을 받고,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는 등 명예회복에 성공한다.

<크리드> 트레일러 

복서가 복싱을 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결국 그들의 모든 증명은 링 위에서 이뤄진다. 아도니스는 사생아인 자신이 실수로 태어난 자식이 아님을, 아버지가 섰던 링 위에서 증명하고 싶어 한다. 록키와 아도니스는 자신들이 질 확률이 훨씬 높은 상대와의 대결을 거절하지 않는다. 꼭 승리만이 가치 있는 증명은 아니니까. 링 위에 서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걸 우린 수많은 복싱 영화를 통해 깨닫는다.

 

Writer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