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서치>의 흥행은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아시아 출신을 다루는 방식과 그들의 입지가 달라진 사례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사실 영화관보다 앞서 여러 나라에서 TV 채널을 통해 익숙해진 아시안 가족들이 있다. 2015년을 기점으로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 연이어 아시안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을 먼저 선보인 것. 이 작품들은 모두 히트를 기록하며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시안 이민자들의 존재감을 바꿔 놓았다.

 

<프레시 오프 더 보트>

<프레시 오프 더 보트(Fresh Off the Boat)>는 미국 ABC 방송국에서 2015년 방영을 시작한 시트콤이다. 인기리에 시즌 5까지 방영되었고 다음 시즌도 준비 중이다. 대만계 미국인 요리연구가 에디 황(Eddie Huang)의 자서전을 기반으로 그의 어린 시절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11살 때 플로리다(Florida)의 올랜도(Orlando)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목부터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이 서툴고 새로운 아시안 가족의 모습을 쉽게 상상하게 한다.

<프레시 오프 더 보트> 예고편

 

<더 패밀리 로>

<더 패밀리 로(The Family Law)>는 오스트레일리아 SBS 방송국에서 2016년 방영을 시작해 올해 초까지 세 시즌을 방영한 시트콤이다. 퀸즐랜드(Queensland)의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에 사는 7명의 중국계 오스트레일리안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벤저민 로(Benjamin Law)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책을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호주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더 패밀리 로> 오프닝 신

 

<김씨네 편의점>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은 캐나다 CBC 텔레비전에서 2016년 방영을 시작한 시트콤이다. 현재 시즌 3까지 방영됐고 다음 시즌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한국 출신 극작가인 최인섭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으로, 토론토(Toronto) 교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씨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민 1세대 한국계 부모와 성인 나이의 개성적인 남매를 중심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김씨네 편의점> 예고편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주며

<프레시 오프 더 보트> 중에서

작품들이 만들어진 각 나라에서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절대 수는 매우 적다. 그래서 세 작품은 필연적으로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아시안 스테레오타입과 직면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코미디라는 장르의 힘을 빌려 스테레오타입에 해당하는 모습을 극구 피하기보다 오히려 보란 듯이 드러낸다.

<김씨네 편의점> 중에서

세 작품에서 대표적인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은 대부분 부모의 캐릭터를 통해 투영된다. 모국어 억양이 섞인 영어 발음과 같은 표면적인 특징부터 현실주의적 태도나 자녀 교육에 대한 욕심과 헌신도 그에 해당한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서는 ‘에디’가 전학 후 올 A를 받자 황 부부는 시험이 너무 쉬운 것 아니냐며 교장실에 따지러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 또한 부모 캐릭터는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김씨네 편의점>에서 아빠가 광복절에 대해 몇 번이나 자녀들에게 설명하는 장면도 그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에게 인종 문제는 일상이다. <더 패밀리 로>에서 제니는 호주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좋아한다며 아들의 회장 선거를 위해 중국인 발음의 홍보 문구가 들어간 포춘 쿠키를 만들어준다. 이처럼 작품들은 스테레오타입을 걸친 캐릭터를 보여주지만, 그것을 웃음의 장치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다양한 인간적인 면이나 그들이 겪는 고충을 보여줄 기회로도 삼는다.

 

스테레오타입을 넘어서며

<프레시 오프 더 보트> 스틸컷

세 작품에는 부모 세대와 부딪히며 충돌과 화해를 거듭하는 카운터스테레오타입의 자녀 세대가 등장한다. <더 패밀리 로>의 ‘벤저민 로’는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혼 가정의 자녀이며,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인물이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에디 황’은 래퍼들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힙합 마니아로 모범생 생활을 거부한다. <김씨네 편의점>의 아들 ‘정’은 어린 시절 작은 범죄를 저질렀고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며 멋진 외모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리고 딸 ‘재닛’은 사진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이들은 수학, 컴퓨터, 무술 등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의 키워드와는 거리가 멀다. 조금 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을 뿐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그 또래 한 사람이다.

<김씨네 편의점> 스틸컷

그러니 부모 세대와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김씨네 편의점>에서 엄마는 딸이 교회에 다니는 한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기 바라고, 아빠는 아들이 어린 시절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연을 끊어버린다. <더 패밀리 로>에서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벤저민이 동성애에 편견을 가진 어머니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한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서는 중국 음식을 도시락으로 가져갔다가 창피를 당한 에디가 어머니와 충돌한다. 하지만 그러한 갈등들은 결국 사랑을 바탕으로 한 양보와 이해의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화해를 맞는다.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고,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더 패밀리 로> 스틸컷

그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을 털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결국 하나의 ‘가족’이다. 이 작품들은 어느 가족을 그려낸 시트콤이고, 그것이 각 나라에서 인종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저 가족들’은 좀 이상하지 않냐고? <더 패밀리 로>의 제니 로가 말한다. “어떤 가족이 안 이상한데? (What family isn’t crazy?)”

 

더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프레시 오프 더 보트>에 아예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TV 쇼에 나간 루이스 황이 우스운 개인기를 선보이자 제시카는 불같이 화를 낸다. 중국계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역할을 맡은 영화가 대히트하는 바람에 과거 본인들이 감수해야 했던 창피를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결국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밖에 할 수 없고, 그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것이 이 세 시리즈가 공통적으로 다다른 결론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저마다의 가족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한계도 있고, 그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기회가 많아진다면 더 다양한 아시안의 모습이 미디어에 비칠 수 있고, 더 넓은 이해의 폭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박 씨, 양 씨, 다나카 씨 가족의 이야기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또, 이제까지 TV에서 볼 수 없던 더 다양한 아시안의 모습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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