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현실 게임(Alternative Reality Game), ARG는 현실 세계에 여러 정보와 단서들을 뿌려 참가자들이 직접 행동하며 주어진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게임 형식이다. 가공의 내러티브와 이것이 드러난 현실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탐사와 추리, 참여와 협동을 이끌어내는 ARG는 이 특성을 적용한 <블레어 윗치>나 <A.I> 같은 영화부터 <포탈>과 <오버워치> 등의 게임, <그래비티 폴즈>나 <로스트> 같은 TV쇼, 심지어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음반 <Year Zero>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부터 웹을 기반으로 둔 ARG가 더욱 많아졌고, 나름대로의 진입 장벽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의 특징들을 이용한 영상 기반의 ARG들이 만들어졌다.

 

lonelygirll5와 유튜브 ARG의 시작

유튜브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브이로그가 넓게 퍼지며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과 이야기를 담은 영상들을 만들었고, 그런 채널들 중 하나로 lonelygirl15가 있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수많은 다른 브이로그 채널들과 마찬가지로, lonelygirl15는 ‘브리’라는 십대 소녀가 올리는 일상생활이 중심이었다. 처음 채널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자신의 방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브리와 친구인 ‘다니엘만’이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며 채널에는 브리의 부모님과 엮인 사이비 종교에 대한 암시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채널이 시작될 때부터 채널의 진위 여부를 두고 논쟁하던 시청자들은 이후 영상 속에 드러난 다양한 증거와 현실과의 연관점을 찾아냈고, 이어 lonelygirl15가 사실은 제작된 픽션이라는 것도 밝혀냈다.

lonelygirl15의 첫 브이로그 영상

lonelygirl15는 캘리포니아의 한 제작자들이 만든 유튜브 시리즈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브리를 중심으로 한 사이비 종교 관련 이야기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했다. 아직까지 유튜브가 이야기 전달을 위한 매체로써 가진 특징들이 확실히 나타나지 않던 시기였기에, lonelygirl15는 이 당시 미국에서 전국적인 히트를 쳤으며, 채널은 다른 스핀 오프 시리즈로도 연결되었다. 지금으로써는 엉성한 부분들이 많지만, lonelygirl15는 이때부터 나타날 유튜브 내의 ARG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리즈로 불린다.

 

슬랜더맨에서 출발한 호러 ARG

이후 ARG 시리즈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공통점들을 정립한 건 2010년대 초반에 큰 인기를 끌었던 슬랜더맨과 관련된 ARG였다. 온라인 크리피파스타 커뮤니티에서 비정상적으로 긴 팔다리에 정장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를 여러 사진들에 합성해내며 만들어진 가상의 도시 전설로 슬랜더맨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사이트에서 천천히 인기를 얻은 후, 유튜브의 관련 ARG들을 바탕으로 입소문을 탔다. 2009년 시작된 마블 호넷(Marble Hornets)과 2010년에 시작된 에브리맨하이브리드(EverymanHYBRID)가 이 인기의 중심에 있었다.

마블 호넷은 <마블 호넷>이라는 제작 중단된 가상의 영화를 둘러싸고 중심인물인 제이가 영화 제작자인 친구 알렉스에게서 받은 녹화본 테이프들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지나며 이야기는 점차 어두워지고, ‘오퍼레이터’라고 불리는 슬랜더맨을 비롯해 점차 괴기스러운 일들이 벌여지게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에브리맨하이브리드는 운동 관련 영상들을 만드는 세 친구들에게 이상하고 기이한 일들이 벌여지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블 호넷의 첫 영상

마블 호넷과 에브리맨하이브리드는 단순히 유튜브 안에서 가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넘어서, 유튜브 채널의 특징들을 활용해 짧은 영상들을 뒤죽박죽 배열하거나, 영상 내외적으로 다양한 힌트와 숨겨진 정보가 담긴 메시지를 집어넣고, 연동된 다른 사이트들로까지 시청자를 이끌어내면서 직접 비밀을 밝혀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푼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방법론들은 이후 영미권의 다른 크리피파스타들과 엮이며 유튜브에서 호러나 미스터리 기반의 ARG 채널과 시리즈들이 나타나는 가장 큰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에브리맨 하이브리드의 첫 영상

 

다양하게 퍼져나가는 ARG

이후 ARG는 유튜브를 스토리텔링의 매체로써 활용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지나 하나의 스타일이자 장르가 되어 다양하게 나타났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유튜브에서의 ARG는 괴담과 호러, 미스터리 요소들을 주로 집어넣는 식으로 나타났다. 앞의 채널들처럼 브이로그나 라이브 영상의 형식을 따른 영상들이 계속되는 한편, 다른 쪽으로는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나 모큐멘터리 호러처럼 ‘발견된 영상’들을 비롯해 기괴한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영상들이나 호러 이미지에 집중하는 방식들이 나타났다. 특히나 게임과 얽힌 크리피파스타를 유튜브의 ARG와 연동시키는 방식이 많았는데, 기괴하게 변형된 <젤다의 전설: 무쥬라의 가면>과 얽힌 괴담을 담은 2010년의 벤 드라운드(Ben Drowned)부터 아예 알 수 없는 가상의 플레이스테이션1 게임을 만든 2017년의 펫스코프(Petscope)의 플레이 영상까지 나타났다. 한편 호러 요소에 치중해 공포스러운 이미지들에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담은 2h32나 기괴한 형태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데이지 브라운(Daisy Brown) 같은 채널들이 나오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ARG 영상들에 나름의 공식과 문법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타입의 영상들은 이전만큼 큰 효과를 내지 못하며 종종 늘어지거나 유치해졌지만, 그럼에도 유튜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호러 장르가 되어 이를 분석하고 정보를 찾아다니는 많은 팬들이 생겨났다. 물론 이 과정에서 ARG라는 형식을 자체적으로 탐구하며 이용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굉장히 재밌게도 이는 어쩌면 lonelygirl15이 처음에 보여줬던 나름의 경계 흐리기와도 연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븐티브로드(seventybroad)>라는 이름의 채널은 조지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인을 고백하며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말하는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상들이 채널에 올라가고, 시리즈는 조지가 현재의 상태까지 오게 된 상황들을 추리할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다른 ARG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던 시리즈는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과 함께 경찰이 개입하며 시리즈 제작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올라오며 크게 바뀐다. 이후 채널에는 시리즈의 제작자로써 조지의 삶이 망가지는 영상이 계속 올라왔지만, 이 이야기는 또 다른 ARG가 되어 조지가 설정한 현실과 가상, 어쩌면 현실 속의 가상과 가상 속의 현실 등의 경계를 더더욱 흐리며 진행되었다.

세븐티브로드의 초기 영상

이렇게 ARG는 인터넷의 웹 영상들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써 쓰이며 다양한 스타일과 콘셉트로 나타났다. 특히나 유튜브에서는 사이트의 초창기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하나의 영상 형식으로 작용하며 다양한 영상들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인터넷에 맞춰 만들어진 호러 장르로써 ARG는 유튜브를 매체이자 형식으로 이용해 여러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가끔은 매우 훌륭하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많은 비밀스러운 채널들이 나타날 것이다.

 

Writer

어설픈 잡덕으로 살고 있으며, 덕심이 끓어 넘치면 글을 쓴다. 동시대의 대중 음악/한국 문학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인디 게임, 인터넷 문화, 장르물 등이 본진(중 일부). 웹진 weiv에서 대중 음악과 비평에 대해 쓰고 있고,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창작/비평하고자 비효율적으로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