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치열하게 사느라 지치고, 멋진 순간은 찰나다. 춤은 그런 면에서 삶과 닮았다. 관객들은 화려한 춤이 펼쳐지는 무대를 기억하지만, 무대에 서는 이들에게는 혹독한 연습의 시간이 대부분이다.

춤이 직업이 아니어도, 누구나 삶에서 자신만의 안무를 소화 중이다. 노력 끝에 시작된 모든 무대는 멋지고, 그러므로 모든 이의 삶은 아름답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춤에 매혹된다. 영화가 춤을 다루는 이유도 삶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춤을 통해 삶을 보여주는 영화들을 살펴보자.

 

<쉘 위 댄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안정적인 삶을 사는 중년의 샐러리맨 ‘수기야마’(야쿠쇼 코지). 집 마련을 위해 달려왔고, 일 외에는 딱히 취미도 없는 그에게 갑작스러운 무기력이 찾아온다. 어느 날 수기야마는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사교댄스 교습소 창가에 서 있는 여인 ‘마이’(쿠사카리 타미요)를 보고 호기심이 생긴다. 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수기야마는 얼떨결에 사교댄스 교습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쉘 위 댄스>(1996)는 <으랏차차 스모부>(1992)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작품으로, 제2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부문을 휩쓴 작품이다. 2004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미국에서 리차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다.

<셀 위 댄스> 트레일러

<쉘 위 댄스>의 수기야마는 춤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우연히 춤에 입문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진다. 그러나 그가 가진 성실함은 춤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삶과 춤은 닮았기에, 자신의 삶을 잘 꾸려온 이라면 그 누구나 춤을 즐길 수 있다. 춤은 늘 우리에게 말한다. 쉘 위 댄스? 일상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면, 춤의 손을 잡아보자.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팻’(브래들리 쿠퍼)은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직장동료를 폭행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법원의 허가로 집에 돌아온다. 팻은 전 부인 ‘니키’에 대해 점점 더 심하게 집착하지만, 접근금지처분을 받았기에 고민한다. 팻은 친구의 집 파티에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만나고, 이후로도 둘은 여러 번 마주친다. 티파니는 니키에게 편지를 전해줄 테니 대신 자신의 댄스대회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팻에게 제안하고, 두 사람은 함께 댄스대회 준비를 한다.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은 햇빛이 구름 뒤에 있을 때 구름 가장자리에 생기는 은색 선으로 희망을 상징하고, ‘플레이북(playbook)은 미식축구에서 팀의 공수작전 전략을 말한다. 즉,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라는 제목은 ‘희망을 위해 펼쳐지는 작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팻과 티파니가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작한 댄스대회 준비는 결국 두 사람에게 깨달음을 준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트레일러

팻과 티파니는 주변 이들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팻은 새벽에도 니키의 추억이 떠올라서 가족을 깨우거나 창문을 부수고, 티파니는 남편이 죽은 뒤 직장 동료 전부와 잔다. 결핍으로 가득해 보이는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추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춤이 반드시 사랑을 연결해주는 건 아니지만, 춤은 좋은 사랑의 매개체임에는 분명하다. 상대를 배려하고 나만의 매력을 찾는 춤의 과정은 사랑과도 비슷하니까. 사랑에 대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만든다면, 첫 장에는 팻과 티파니의 춤을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하고 싶다.

 

<댄서>

제이미 벨이 주연으로 등장한 <빌리 엘리어트>(2000)를 보면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장래는 무작정 밝을 것 같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영화 <댄서>(2016)의 ‘세르게이 폴루닌’을 보면 가족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발레리노의 꿈이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음을 느낀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다양한 수식어로 불린다. 19살에 영국 로얄 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에 발탁되면서 천재로 불리는 동시에, 파티와 마약 등 그의 행적을 좇는 미디어는 그를 악동이라고 부른다. 그런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발레와 가족이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세르게이 폴루닌은 딱히 자신이 불우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발레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발레학교 비용 때문에 아버지가 포르투갈로, 할머니가 그리스로 가며 가족이 해체했던 당시를 행복이 끝난 시기라고 회상한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영국 로얄 발레단에서 월반을 거듭하고 최연소 수석 무용수가 되는데, 자신이 발레로 성공해야 가족이 뭉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댄서> 트레일러

세르게이 폴루닌은 현재 발레 외에도 다른 장르의 춤도 추고 있고, 케네스 브래더가 연출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레드 스패로> 등의 영화에 배우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꿈은 어릴 적 어머니가 결정 지었으며, 부상으로 발레를 그만두기를 바란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또한, 이젠 통증 때문에 하루도 운동을 쉴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은 발레에만 갇히지 않고 좀 더 활동영역을 넓힌 그는 이전보다 더 행복할까? 그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그의 행복을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가 영원히 춤과 함께할 것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

 

<걸>

15살 ‘라라’(빅토르 폴스터)의 꿈은 발레리나가 되는 거다. 다만 라라에게는 큰 고민이 있는데, 그가 남자로 태어났다는 거다. 라라는 자신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꿈을 향해 전진하지만 극복하기 힘든 지점들이 자꾸 등장한다.

<걸>(2018)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출품작 중 가장 뛰어난 데뷔작에 주는 황금촬영상을 받은 작품으로, 주연배우 빅토르 폴스터는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배우상을 받았다. <걸>은 냉정하게 느껴질 만큼 덤덤하게 라라의 삶, 그중에서도 특히 육체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발레 연습을 할 때 테이핑 하느라 생긴 사타구니의 염증이나 발의 상처와 피, 함께 연습하는 발레리나 지망생들의 몸을 보여준다.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라라는 몸을 혹사하고, 병원에서는 호르몬 주입과 몇 년 뒤 수술을 위해 안정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라라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예고도 없이 날아온다. “라라가 여자샤워실 쓰는 게 불편한 여학생이 있는지 물어볼게, 라라는 잠시 눈을 감아줘.”, “다른 여자아이들은 다른 방을 쓸 테니까, 라라는 따로 이 방을 쓰렴.”, “라라, 너는 우리 몸을 보면서 왜 너는 너의 몸을 보여주지 않아?”. 라라에겐 발레리나의 꿈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남들보다 몇 배로 필요하다. 너는 이미 멋진 여자야, 라는 병원에서 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라라에게 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걸> 트레일러

사려 깊은 딸, 친절한 누나, 좋은 연인, 멋진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데 라라가 이 모든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남들의 몇 배다. 몇 년 뒤 수술 후에 라라의 삶은 지금보다는 나아질까 싶지만, 아버지는 합병증을 걱정한다. 매 순간 전력질주하는 라라에게 그 어떤 말도 폭력이 될까봐 조심스럽다. 그저 라라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할 뿐이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라라가 삶이라는 무대에서 하는 그 어떤 춤에도 박수 치고 싶다. 부디 그녀의 삶이 그 어떤 발레 무대보다 오랫동안 편하게 이어질 수 있기를.

 

Writer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