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이름들은 서로에게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팀 버튼과 조니 뎁 혹은 봉준호와 송강호처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에게는 맥스 달튼이 그렇다. ‘색감 천재’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달콤한 그림으로 풀어내며 ‘웨스 앤더슨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수식어를 얻은 맥스 달튼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 옆에 늘 웨스 앤더슨이 따라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그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 <판타스틱 Mr. 폭스>, <다즐링 주식회사>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이 만든 영화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그림 속에 담았다. 대중적으로 유명하기보다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영화들인 만큼 전반적으로 맥스 달튼의 인지도를 높여주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영화 팬들에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분명 그의 그림에선 그런 것들이 묻어 나왔을 것이다. ‘어, 이 사람도 이 영화를 아네?’ 하는 반가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한다는 데에서 오는 은근한 결속감.



그가 한국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 역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아트북으로 출간되면서부터다. 영화의 제작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책의 주 내용이었던 만큼 그가 그린 삽화는 비중이 적은 편이었지만 책을 펼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도도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자그맣고 알록달록한 사람들, 사탕처럼 달콤한 색감과 정교한 디테일까지. 그 후로 책의 시리즈 격인 <배드 대드>, <웨스 앤더슨 컬렉션>이 차례로 출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맥스 달튼의 화풍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정말 웨스 앤더슨의 작품만 다루는 듯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맥스 달튼의 세계는 생각보다 더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져 있다. <이터널 선샤인>, <레옹>, <백투더퓨쳐>, <라비린스> 등 장르도 분위기도 가지각색인 영화들이 그에겐 모두 모티브가 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주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수놓은 작품들인데,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어렴풋이 그리움의 냄새 같은 것이 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절, 겪어보지 못한 이들조차 한 번쯤 동경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뚜렷한 형체랄 것이 없던 영화들은 그림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바로 한쪽 면이 뻥 뚫려 한눈에 모든 방이 들여다보이는 장난감 집. 그곳에서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살아가는 중이다. ‘월리를 찾아라’를 하는 기분으로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그 모습이 단순히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전체적인 스토리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때때로 그의 그림은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여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지도' 같기도 하고, 영화를 본 이들에게 부치는 비밀 편지 같기도 하다.


이 밖에도 앨범 커버, 카드 일러스트레이션, 책 속 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맥스 달튼. 그중에서도 영화를 다룬 그림들이 유독 반짝반짝해 보이는 건 왜일까. 전 세계에서 새로운 영화들이 앞다투어 개봉하는 요즘, 앞으로 그가 스크린에서 또 어떤 세계를 건져내 그림으로 담아낼지 궁금해진다.
모든 이미지 출처 - 맥스 달튼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