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무역의 최종 중계지였던 고레섬 전경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는 세션 뮤지션으로 약 500여 회의 녹음에 참여하였고 두 번의 그래미를 수상한 정상의 베이스 연주자다. 그와 함께 협업한 뮤지션을 몇 사람만 꼽자면 마일스 데이비스, 루더 밴드로스, 데이비드 샌본, 칼리 사이몬 등으로 재즈에서 록, 팝, R&B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12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그 중 열 번째로 발매한 <Renaissance>(2012)는 그의 앨범 중 최고로 평가되는 앨범이다. 모두 13곡 중 자신의 창작으로 7곡을 수록하였는데 그 중 하나인 ‘Gorée(Go-ray)’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곡이다.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Gorée’를 연주하는 마커스 밀러(Jazz in Marciac, 2012)

그는 2010년 월드 투어 중에 말로만 듣던 고레(Gorée)섬을 방문하여 오랜 역사의 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다. 고레섬은 서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Dakar) 3킬로미터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대서양 노예무역의 최종 중계지로 악명이 높던 곳이다. 현재는 역사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고, 노예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노예의 방’, 노예선으로 바로 연결되었던 ‘돌아올 수 없는 문’(Door of No Return) 등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하여 서방의 지도자들도 순례와 참회의 형식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고레섬을 방문한 마커스 밀러 영상 및 인터뷰
노예가 거래되던 건물에 있던 ‘돌아올 수 없는 문’

“그 문은 ‘돌아올 수 없는 문’이라 불렸어요. 왜냐하면 그 문을 지나 노예선에 타는 순간, 아프리카인으로의 삶은 끝나기 때문이었죠. 바로 그 곳에 있을 때의 감정을 살려 곡을 하나 쓰기로 했어요. 아프리카인의 경험은 마지막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프리칸-아메리칸의 경험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가 끔찍한 역사의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기억하여 써내려 간 곡이 바로 ‘Gorée(Go-ray)’이다. 그 곡은 2012년 유엔이 노예 무역을 기억하기 위해 주관한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고, 아이리나 보코바(Irina Bokova)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고레섬 방문을 보도한 영상

보코바 총장은 유네스코가 위치한 파리로 마커스 밀러를 초대하였고,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노예의 길 프로젝트(Slave Route Project)를 지원하고 홍보하기 위한 평화의 아티스트(Artist of Peace)로 선정하였다. 1994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인류 최악의 범죄라 할 수 있는 노예 무역의 원인과 실상을 규명하고 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해를 도와서 궁극적인 치유를 위해서 시작되었다.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는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의 평화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마커스 밀러

마커스 밀러는 노예의 길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음악의 힘으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그리고 미국의 아티스트들과 공동으로 11번째 음반 <Afrodeezia>(2015)를 냈다. 노예의 길을 따라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가 변화되는 과정을 따른다는 콘셉트로 현지의 뮤지션들과 함께 현지에서 녹음한 음반이다. 이 음반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이어진 월드 투어는 250회 이상이 매진되었다. 그에게 평화의 아티스트 활동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마커스 밀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