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동네 가게,
‘복덕방’ 주인장 강성구 인터뷰 (1)


대형 프랜차이즈로 상징할 수 있는 획일적인 문화들이 빠르게 유통되고 사라지는 틈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담은 공간들로 작지만 또렷한 일상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첫 번째로 인디포스트가 찾아간 인물은 최근 젊은 기운이 모이는 망원동에 자리한 선술집 ‘복덕방’ 주인장 강성구 씨다. 옆집 오듯 편안한 차림새의 동네 손님, 멀리서 물어물어 찾아온 손님들이 왁자하게 섞여 망원시장 한쪽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복덕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팔고 어떤 관계 맺음을 고민하는지 물어보았다.

주인장 강성구 씨

일과는요?
오전 열 시에 일어나요. 가게는 보통 세 시까지 영업하고, 집에 가서 다이어리 쓰고 책 보고 스케줄을 정리하면 보통 다섯 시나 여섯 시에 잠들어요. 일기는 꼭 쓰고 자요.

일기장엔 어떤 걸 쓰나요?
두 개를 써요. 하나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포켓 수첩이고, 다른 하나는 집에서 쓰는 작은 다이어리인데 쓴 지 한 8년 정도 됐어요. 저의 모든 게 다 들어있어서 재미있어요, 들여다보면.

8년 전엔 뭘 했나요?
전 호주에서 대학 나왔어요. 전공은 국제무역. 무역회사 다녔어요.

회사원이셨군요. 회사 생활 잘 했을 거 같아요.
‘아싸’였어요. 아웃사이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생각이지만,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이 나한테 명령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차장님, 신발 좀 끌지 마세요.” 라고 얘기했다가 끌려 나가서 엄청 혼났죠.

슬리퍼 때문에 회사를 관둔 거예요?
상사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 싫고, 야근도 싫고. 조직 생활이 저랑 안 맞더라고요. 부모님 몰래 때려치웠어요. 회사 다닐 때는 돈 많이 버니까, 맨날 친구들 술 사주고 놀았어요. 그렇게 매일 놀다가 보니,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속은 텅텅 비어 있고, 비전도 없고 꿈도 없고 뭘 시작할 용기도 없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장점이 뭘까 고민했는데, 인사 잘하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어렵지 않게 말 걸고. 싹싹하다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망원시장 골목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복덕방

복덕방 손님들은 다 지인인 줄 알았어요. 워낙 친근하게 대하셔서.
호기심이 많아요. 어릴 땐 횡단보도 신호 기다릴 때 옆에 서 있는 사람한테도 말을 걸고 싶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이유는 한 가지예요,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공통점 하나. 어릴 때 친구들이랑 술집 가면 헌팅은 제가 다 했죠. (웃음)

아직 30대 초반인 걸로 알고 있는데, ‘복덕방’이 첫 가게인가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8~9년 된 것 같아요. 논현동에서 연남동을 거쳐 망원동에 정착했죠. 논현동 ‘갯벌의 진주’라는 조개구이집에서 처음 일을 배웠어요. 좋은 사람 많이 만났어요. 당시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호흡이 잘 맞아서 ‘갯벌의 진주 레알 마드리드’라고 불렸어요. 그때 우리 팀이 세운 기록이 아직도 안 깨진 거로 알고 있어요. 21테이블에 198회전. 가끔 우리 복덕방 손님들에게 소주 돌리고 젓가락으로 뚜껑 뚫고 그러는 거 보여드리는데, 그때 연습한 거예요. 그런데 8개월 만에 관뒀어요. 저한테 투자하고 싶다는 분이 나타나서. 결정하자마자 아무 말 없이 다음날 새 가게로 출근했어요. 바로 옆 가게였죠.

일하던 곳에 아무 얘기 없이 나왔다고요?
철판 깔았죠. 그런데, 사람들이랑 상의하면 못 가게 할 것 같았어요. “가지마”가 아니라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라고 말할 거고, 그럼 겁이 날 것 같았어요. 1년 만에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잡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겠어요.
욕 많이 먹었죠.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일했어요. 한 달에 500만 원 팔던 가게였는데, 6개월 만에 월 매출 2억으로 만들면서 논현동 골목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장사 잘 되고 논현동 하나 더, 홍대, 교대에 5호점까지 확장했어요. 나중엔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연남동에 ‘연남회관’이라는 식당을 오픈했는데, 한 달에 8시간씩 밖에 못 잤어요. 연남회관 오픈했을 땐 3개월 동안 아예 가게에서 잤어요.

그만 좀 열심히 해요.
새벽 다섯 시에 마감하고 여섯 시에 잠깐 잠들었다가 날이 밝으면, 가게 문 다 열어놓고 야전 침대에 누워서 책 봤어요. 가게 앞에 누구 지나가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책 읽는 거 처음엔 저만의 마케팅이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절 기억하게 되니까. 그때 책 읽는 습관 들여서 아직도 꼭 잠들기 전에 독서를 해요.

손님을 배려하는 세심함이 돋보이는 화장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망원동에 새 터전을 잡은 계기는 뭔가요?
일에 대한 강박이 심해요. 정신이 몸을 지배한 거죠. 기면증도 생겼었어요. 갑자기 잠드는 거. 결국 크게 아팠어요. 아무것도 못하고 방 안에만 누워 있는데 정말 우울했어요.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아파서 누워 있다는 게 너무 분한 거예요. 뭐라도 해야겠다, 이번엔 생활도 있고 일도 하는 진짜 내 가게를 열어보자, 이런 결심을 하고 몸이 좋아지자마자 찾아다녔어요. 장사할 동네를. 그러다 발견한 곳이 망원동이에요.

이태원처럼 특별한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홍대나 연남동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닌 망원동이 눈에 들어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싸서 들어왔어요. (웃음) 처음엔 그랬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동네에 부동산이랑 미용실이 많더라구요. 인구가 많다는 얘기죠. 동네 장사 하고 싶었어요. 동네 장사는 경기를 안타요. 경기가 안 좋으면 사람들이 회식은 안 해도 가족 단위 외식은 해요. 멀리서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물론 고맙지만, 동네 사는 단골손님들한테 늘 고마워요.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처럼 장사하고 싶어요.

이제 일 년도 안 되었는데 오랫동안 망원동에 있었던 가게처럼 보여요. 동네 골목대장이 자기 놀던 골목에 술집 내고 좋아하는 사람들 불러 모으는 그런 느낌.
이 동네가 좋은 이유가 또 있어요. 동네 손님들도 감사한데, 동네 사장님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커요. 특히 요즘 자기만의 가게를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이 망원동으로 모이고 있잖아요. 같은 고민과 고생을 공유할 사람들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몰라요. 형제처럼 지내는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있는데, 든든한 동료가 생긴 것 같아 행복해요.

형제처럼 든든한 망원동 젊은 가게 미카자야, 오라방 사장님과
사이 좋게 나란히 사랑받는 복덕방과 미자카야

망원동에서 또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사실 요즘 준비하는 거 있어요. 저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서점이에요. 재밌는 분들이랑 재밌는 거 해보려고요. 그리고 나중에 제 사업이 더 커지게 되면, 실력 있는 주부들을 많이 고용하고 싶어요. 아기 데리고 일하러 올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꼭 어머니랑 일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삶이 행복해져야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복덕방 주인장 깡구 인스타그램 @imkhang9
(메인, 본문이미지='복덕방' 인스타그램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