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7일, 아시아 최초로 대만에서 동성 결혼이 법제화됐다. 대만 헌법재판소가 기존의 혼인제도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2017년 5월이며 2년간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많은 담론이 오갔다.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 합법화를 이룬 데에는 다채로운 문화적 풍토가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대만에서는 성 소수자를 주제로 한 문학을 통해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 왔다. 중화권 LGBT 문학의 정전이라고 불리는 ‘바이센융‘의 소설 <불효자(孽子)>는 무려 1983년도에 발행된 책으로, 성 소수자 문화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이후 전반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성 소수자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는 것이 각인되면서 경계 없는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대만이 ‘로맨스 영화의 성지’라 불리는 만큼, 성 소수자 서사의 로맨스 영화 역시 눈에 띈다.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말하다 <결혼 피로연>

<결혼 피로연>은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이안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는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지만, 마냥 아름답기만 한 찰나를 담고 있진 않다. 동성애를 둘러싼 보수적인 사상이 충돌하는 가족은 보편적이지만 어딘가 낯설게 다가오고, 동양과 서양의 시각이 대비되며, 세대 간의 차이는 무겁지 않게 다뤄진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플롯은 성 소수자의 위장 결혼 소동극이다.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주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이는 다각적으로 골몰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웨이퉁’(조문선)은 뉴욕에서 애인 ‘사이먼’(밋첼 릭스타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웨이퉁의 부모님은 ‘전통’과 ‘가문‘을 중요시 여기는 인물로 대를 이어갈 손주를 보길 원한다. 그런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도, 사실을 밝힐 수도 없는 웨이퉁. 반복되는 성화에 지친 웨이퉁과 사이먼은 묘안을 강구해낸다. 바로 웨이퉁 아파트 세입자 웨이웨이(메이 친)와 위장 결혼을 하는 것. 웨이웨이는 미국 내 불법 체류자였고, 영주권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안을 수락한다. 거대한 비밀로 묶인 이들은 수렁 속으로 한 발 내딛게 된다.

어떤 문제는 덮으려고 하면 할수록 부피를 더하기도 한다. 웨이퉁과 사이먼, 웨이웨이의 이야기 역시 담대한 계획을 시작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문제는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웨이퉁은 사랑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은 감정이 얽혀지면서 복잡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행복한 결말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들에게 자그마한 탈출구가 보이기 시작할 때가 돼서야 마음 언저리가 뻐근하게 풀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여름은 영원할 수 있을까 <영원한 여름>

<영원한 여름>은 여름의 면모를 영화 곳곳에 잘 분배한 듯한 영화이다. 파란색으로 물든 화면, 청춘의 말간 얼굴, 잔잔한 바다. 영화가 그려내는 여름의 인상과 다르게 이야기 속 청춘들의 성장통은 아프기만 하다. 이 영화는 청춘, 여름, 사랑을 구분 지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토록 모호한 경계선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더욱 빛을 발한다. 주인공 ‘캉정싱’(장예가)의 여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캉정싱의 시선 끝에는 언제나 단짝 친구 ‘위샤우헝’(장효전)이 있었지만 커지는 감정을 외면하려 애쓴다. 이들 사이에 전학생 ‘후이지아’(양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후이지아는 캉정싱에게 좋아하지만 캉정싱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한발 뒤로 물러나기로 한다. 대학 진학 후, 위샤우헝과 후이지아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여전히 셋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친구로 위장한 채 사랑을 숨기는 일, 관계를 지키고 싶은 감정, 서로를 위한 의무감이 충돌한다. 위샤우헝은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예전을 그리워하며 읊조린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크면 정말 모든 것이 변하는구나.”

영화의 첫 장면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우주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이 등장한다. “지구는 행성이야. 행성은 항성의 주위를 돌지, 그래서 항성은 우리의 태양인 거야. 항성, 행성 이외의 혜성이 있어. 혜성은 매번 태양계에 찾아올 때마다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움을 가져온단다.” 여기서 행성은 캉정싱, 항성은 위샤우헝, 혜성은 후아지아를 뜻한다. 공전하는 이들의 세계는 영원하고 싶던 여름을 기억한다.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나의 EX>

2018년 45주차 대만 박스오피스 1위, 지난 2월부터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하고 있는 <나의 EX>는 떠난 사람을 미처 보내지 못한 3인의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이다. 영화는 아들 ‘쑹청시’(황성추)의 나레이션과 ‘류싼롄’(셰잉쉬안)이 죽은 남편의 보험금 수령자로 지목된 ‘아제’(구택)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아빠 ‘쑹정위안’(스파크첸)이 일반적인 아빠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쑹청시는 아제를 원망하기는 커녕, 그의 곁에 붙어서 ‘아빠가 죽기 전 그의 곁에 남은 이유’에 대해 추적한다. 가족을 떠난 남편에 대한 분노와 그리움으로 똘똘 뭉친 류쌴롄은 아제에게 보험금을 훔쳐간 ‘불륜남’이라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류쌴롄은 아들 쑹청시로인해 아제와 계속해서 마주치고 언쟁을 벌인다. 감정의 골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며 죽은 남편의 감정을 부정하려 애쓴다. 영화의 중반부, 류쌴롄은 상담사에게 “정말 다 가짜였을까요? 조금도 절 사랑하지 않았을까요?”라며 호소한다. 처절하게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던 류쌴롄, ‘죽기 전까지 나로 살고 싶다’는 쑹정위안의 부탁에 마지막을 함께한 아제, 아빠의 편지를 읽고 사랑을 확인한 쑹청시. 영화의 원제는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이다. 하지만 영화의 막바지에는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의 EX>는 독특한 소재와 애니메이션 효과의 신선한 연출이 더해져 영화의 분위기를 마냥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또한 영화의 흐름에 따라 이입하게 되는 대상이 바뀌는데, 극중 누구 하나 질책하거나 원망하기 애매한 상황이 이어진다.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캐릭터들의 성장,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닌 가족 영화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를 빼닮은 사운드 트랙은 반복 재생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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