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미국 드라마의 ‘웰메이드’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시대극이 되곤 했다. 사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은 “시대극을 못 만든다.”라는 비아냥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드라마계는 시대별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 및 이슈들을 적절히 반영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드라마 배경 속 시대별로 목록을 추린 아래 추천 가이드를 확인해보자.

 

1950년대 <마스터 오브 섹스>(2013)

미국 역사 속에서 1950년대는 세계 제2차 대전의 승리 및 눈에 띄는 경제 성장, 냉전으로 인한 국제적 갈등의 수면 위 부상 등이 대두된 정치, 군사적으로 민감한 시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문화적으로 파격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서서히 드러난 때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성(性)에 대한 관점의 변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초는 산부인과 의사 윌리엄 마스터즈와 그의 조수 버지니아 존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성'은 공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사적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러나 윌리엄 마스터즈와 버지니아 존슨 두 사람의 연구는 '섹스'를 의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연구로, 당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미국 사회가 새로운 영역으로 한 단계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두 사람의 획기적이면서도 시대를 앞서간 연구는 미국 사회에서 인간의 성에 대한 인식 변화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스터 오브 섹스>는 첫 방영 시기인 2013년, 미국 영화 협회에 의해 ‘2013년 최고의 드라마 10’에 선정되었고,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마이클 쉰과 리지 카플란이 각각 ‘윌리엄 마스터즈’와 ‘버지니아 존슨’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작품은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후반에 이르는 배경의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인간 본연의 성(性)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펼친 윌리엄 마스터즈와 버지니아 존슨 두 사람의 관계와 연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야기는 윌리엄 마스터즈의 비밀 연구에 버지니아 존슨이 합류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면서 시작된다. 버지니아의 합류로 더딘 실험과 연구에는 속도가 붙었으며 윌리엄은 그를 자신의 파트너로 삼을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시즌 전반에 걸쳐 보여지는 두 사람의 성적 긴장감은 작품의 가장 큰 재미로 꼽힌다.

 

1960년대 <아쿠아리우스 >(2015)

미국의 1960년대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움직임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여성 인권, 흑인 민권 운동에서 나아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LGBT 운동으로까지 움직임은 확대되었다. 동시에 이 같은 사회 움직임에서 영향을 받아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미국 사회의 주류 흐름을 거부하고 보수적 가치에 반발하는 반문화 운동, 히피 문화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쿠아리우스(Aquarius)>다. 드라마는 베트남 전쟁 반대, 급진적 흑인 인권 운동 단체 블랙 팬서(the Black Panthers), 리처드 닉슨 같은 1960년대 대표적인 키워드들을 아우르고 있다. 2015년 비평가협회에서 가장 기대되는 신작 부문에 선정되었다.

작품은 미국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들을 쫓는 형사의 추적을 담고 있다. 비록 찰스 맨슨이 실존 인물이긴 했으나, 드라마 <아쿠아리우스>의 경우 역사적으로 정확한 근거를 바탕에 두진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1960년대 사회 분위기를 비롯한 히피 문화를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 시대상이 잘 드러나는 삽입곡은 제작진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인다.

<엑스파일>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주연을 맡아 ‘찰스 맨슨’을 쫓는 형사 ‘샘’ 역을 맡았다. 샘은 친구의 딸이 실종되자 그를 찾아 나서고 젊은 찰스 맨슨과 얽히게 된다. 시대적 배경은 찰스 맨슨이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사건인 ‘테이트-라비앙카’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으로, 데이비드 듀코브니는 당시 전형적인 LA형사를 완벽하게 재현해냈으며, 찰스 맨슨 역을 맡은 게딘 앤소니는 유명해지고자 자신의 매력을 무기로 여성들을 이용하는 찰스 맨슨을 훌륭히 소화해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데이비드 듀코브니 비하인드 인터뷰

 

1970년대 <듀스>(2017)

미국 대중문화사에서 빠지지 않는 걸출한 밴드들이 두각을 드러낸 1970년대. 우리가 기억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유행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1970년대의 화려한 면모 뒤에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웠다. 뉴욕 42번가에 위치한 극장가. 이곳에는 브로드웨이 공연 대신 성인 영화들이 공개적으로 상영되었으며 대로변에는 마약을 파는 이들, 매춘부들과 거래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2017년 HBO를 통해 방영된 <더 듀스(The Deuce)>는 <와이어>의 데이비드 사이먼스가 제작을 맡았으며 제임스 프랭코, 메기 질렌할이 주연을 맡았다. 미국에서 포르노가 합법화되고 포르노 산업이 성행하던 일명 포르노의 황금기라고 불린 미국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타락한 정부 관료, 경찰들의 부정 부패, 약물 중독, 부동산 붐 등 당시 뉴욕의 지하세계를 조명했다. 제임스 프랭코는 극 중 쌍둥이 형제로서 1인 2역을 맡은 바, 술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빈센트’와 도박 빚에 허덕이는 ‘프랭키’를 실감나게 소화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듀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포르노 배우 ‘캔디’역을 맡은 메기 질렌할이다. 거리의 매춘부에서 포르노 영화 여성 감독으로의 성장과 좌절을 담은 캔디의 서사는 작품에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으로 꼽힌다.

메기 질렌할 인터뷰

 

1980년대 <홀트 앤 캐치 파이어>(2014)

세계대전 이후 평화의 시기가 찾아오고, 오랜 투자 끝에 과학 분야에 있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1980년대. 그 중에서도 퍼스널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한 전자기기, 게임 산업의 발전은 사회,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드라마 <홀트 앤 캐치 파이어(Halt and Catch Fire)>는 텍사스 주 달라스를 배경으로 1980년대 초기 컴퓨터 산업을 조명하고 있다. 비록 극 중 리 페이스가 근무하는 카디프 일렉트릭은 허구일지 모르나 카디프의 성장과 추락은 마치 현실 속 ‘콤팩(Compaq)’의 전성기와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 시즌1에서는 퍼스널 컴퓨터를, 시즌2에서는 초기 온라인 게임 시장을 소재로 1980년대 정보 산업 혁명의 발자취를 비교적 정확하면서도 동시에 흥미롭게 풀어냈다.

미국 케이블 채널 AMC에서 방영된 <홀트 앤 캐치 파이어>는 개성있는 캐릭터, 감각적인 영상미 등 높은 완성도로, 자사 오리지널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 <매드맨>과 비견될 정도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저조한 시청률을 면치 못해 안타깝게도 지난 2017년 시즌4를 끝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트 앤 캐치 파이어>는 21세기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이자, 웰메이드 시대극의 표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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