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맨>을 촬영했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를 찍었으며, 영화 <레버던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혹독한 자연을 담아내어 아카데미 촬영상을 3번이나 수상한 사람.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이 이뤄낸 쾌거다. 이 화려한 타이틀을 한 손에 거머쥔 사람은 전 세계에서 롱테이크를 가장 잘 담아내는 촬영감독이라고 불리는 '엠마누엘 누베즈키' 감독이다.

롱테이크는 영화의 쇼트(short) 구성 방법의 하나로, 쇼트가 편집이나 커트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엔 1~2분 이상이면 롱테이크라고 분류했는데, 이제는 ‘몇’ 분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롱테이크는 촬영을 하는 감독이나, 연기하는 배우나 매우 까다로운 작업임이 확실하다. 쇼트가 길고, 커트가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루베즈키 감독은 이 어렵다는 롱테이크를 자신의 촬영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으며, 여러 명작 영화 안에서 놀라우리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롱테이크 촬영을 보여주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나을 테니, 그의 롱테이크가 담긴 영화 장면들을 소개한다.

 

1. 그래비티

‘관람’이 아니라 ‘체험’이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생생한 우주의 감각을 관객들에게 전했던 영화 <그래비티>.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을 모두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근 20분에 달하는 오프닝 장면은 컷 전환이 없는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우주망원경을 고치던 우주비행사들이 갑작스러운 재난을 만나 고립되는 상황을 마치 다큐멘터리같이 연출하고 있다. 끝이 없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우주에 남겨진 주인공. 그 막막함을 카메라는 그대로 따라간다.

사실 영화 <그래비티> 속 우주를 더욱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촬영 감독의 몫이었다. 그리고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 끊김 없는 촬영으로 우주를 담아낸다. 흐름이 끊기지 않는 우주에서 관객들은 절로 압도적인 우주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2. 칠드런 오브 맨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롱테이크는 살육의 참상을 낱낱이 보여주기 위하여 채택된 듯하다. 급박함과 긴장감을 나타내기 위해선 쇼트를 쪼개야 한다고 배웠건만,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총탄이 날아오는 전쟁터 같은 곳을 ‘끊김 없이’ 담아낸다. 그가 여기에서 롱테이크를 활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관은 곧 멸망이다. 인류는 더는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되고, 인구는 계속 줄어 멸망 만을 앞두고 있다. 절망에 빠진 세계는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끔찍한 곳으로 변모한다.

엠마누엘 루베즈키는 기교를 오히려 줄이고, 오로지 순수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렌즈 너머  참사를 바라본다. 카메라의 이러한 움직임에서 관객들은 이 순간을 ‘영화’가 아닌 ‘현실’처럼 보게 된다. 카메라는 주인공의 시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모두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 3자의 시선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마치 관객처럼,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들의 눈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모든 것을 담겠다는 듯이 잔인한 현실 그대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는 롱테이크가 꽤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 기법은 남용되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죽거나 죽어갈 때를 보여주기 위해 신중하게 사용된다. 흔들리는 걸음만큼이나 흔들리는 카메라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그 질문이 꽤 가슴에 남는다.

 

3. 버드맨

사실 <버드맨>은 하나의 클립을 뽑는 것이 의미가 없는 영화다. 왜냐하면 이 영화 자체가 119분짜리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버드맨>은 단 한번의 끊김없이 모든 것이 한 테이크로 연결되어 있는 영화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따라간다. 때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관객들은 완벽히 카메라에 이입하여 장면을 바라보게 되고, 컷이 나누어져 있냐 없냐는 그리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실제로, 컷이 나눠지지 않았다는 것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르는 관객들도 많다. (관객들의 눈썰미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한때는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톱스타에 올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힌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그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영화 <버드맨>은 리건 톰슨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연극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며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촬영감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엠마누엘 루베즈키 감독. 그의 롱테이크에 담긴 인생의 정수를 계속해서 맛보고 싶다. 역시 우리 인생은 ‘컷’으로 나뉘지 않기에.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