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5월 25일 라스베가스 서쪽 교외의 한적한 도로에서 목이 부러진 채 버려진 시신이 발견되었다. 다른 장소에서 살해되어 범인의 차량으로 이곳에 유기되었던 것이다. 그는 하루 전날 개장한 물랭 루즈 카지노 호텔에서 실종된 재즈 색소포니스트 워델 그레이(Wardell Gray)였다. 그는 베니 카터 악단과 함께 초청되어 개장 하루 전 리허설에 참가하였으나 정작 호텔 개장을 기념하는 연주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 경찰은 제대로 된 수사조차 하지 않고 황급히 사건을 종결하여,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레스터 영을 빼어 닮은 연주자로, 찰리 파커에 필적하는 서부 지역의 호리호리한 테너 색소포니스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워델 그레이 ‘Pennies from Heaven’(1952)

그는 데뷔 시절 얼 하인즈 오케스트라와 함께 3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하며 음악적으로 급성장했다. 나이 스물 다섯이던 1946년에는 지긋지긋한 순회밴드 생활을 접고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군인들로 넘쳐난 센트럴 애비뉴의 재즈 클럽들은 그레이에게 약속의 땅이었다. 이 시기에 덱스터 고든과의 테너 색소폰 연주 대결은 유명하다. 워델의 가볍고 빠른 연주 스타일과 고든의 무겁고 중후한 사운드는 잘 들어맞았다. 두 사람이 함께 테너 투톱으로 녹음한 ‘The Chase’나 ‘The Hunt’가 뜨면서 그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워델 그레이는 캘리포니아에서 결혼하여 안정된 가정을 꾸렸지만, 캘리포니아 재즈 클럽의 일자리가 날이 갈수록 줄어 들면서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테너 듀오의 유명한 ‘The Chase’ 연주. 먼저 덱스터 고든이 솔로로 나서고 이어서 워델 그레이가 따른다
Dexter Gordon & Wardell Gray ‘The Hunt’ Live (1947)

그가 마약에 빠진 것은 이즈음이었고, 전성기의 물 흐르는 듯한 전성기 연주는 일찍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Thin Man’이라 불린 워델 그레이는 친근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이었으나 주도적인 삶을 살지는 못하였다. 그는 뛰어난 연주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고용되는 세션 연주자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순회 공연의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이 때 라스베가스에 새로운 카지노 호텔 물랭 루즈가 들어서며, 그는 베니 카터 악단과 함께 호텔의 개장을 기념하는 연주에 고용되어 생애 마지막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개장 당시의 물랭 루즈 카지노 호텔

그가 리허설에 참석한 후 어디선가 살해되어 도로에 유기되었다는 사실은 명백했으나, 그 외의 것은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채 라스베가스 경찰은 그대로 수사를 종결하였다. 당시 라스베가스는 서부 지역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극심한 도시였고, 대부분의 카지노 호텔이 조직범죄와 연루되어 있던 때였다.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는 느와르적 요소로 가득했고, 수많은 다큐멘터리나 서적들이 워델 그레이의 죽음을 소재로 다루었다.

워델 그레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Forgotten Tenor> 표지

사건의 진실에 관한 가설에는 도박, 마약, 인종차별, 불륜 같은 요소들이 섞여서 등장한다. 그가 마약과 도박으로 인하여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고 수금하려는 조직원과 마찰을 일으켜 피살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라스베가스의 극심한 흑백분리 정책으로 인해 갱단이 경고의 일환으로 그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워델 그레이가 백인 유부녀와 불륜 관계였다는 소문도 나온다. 라스베가스 지역의 유명한 갱스터 메이어 랑스키(Meyer Lansky)의 이름이 거론되고, 그의 사주를 받아 지역 경찰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물랭 루즈 호텔은 6개월 후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되는데, 여기에는 라스베가스의 마피아 보스들의 알력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카운터 베이시 악단 시절 29세의 워델 그레이(1분 25초경에 솔로에 나선다)

워델 그레이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한 채 불과 나이 34세에 허망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주도적인 밴드리더로 나서지 못하고 세션 색소포니스트로 고용되어 스윙, 비밥, 빅밴드 스타일을 모두 소화했다. 사후 현재는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다만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뿐. 그래서 후일 그의 음악과 인생을 기리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잊혀진 테너>(Forbidden Tenor)로 지어졌다.

컴필레이션 음반 <Wardell Gray Plays Bebop & Swing>

 

워델 그레이 추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