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로버츠 트리오, 오른쪽의 제이슨 마살리스는 윈튼 마살리스의 막내 동생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 신동이었던 윈튼 마살리스는 클래식 트럼펫 연주자를 꿈꾸며 음악 명문 줄리어드에 입학했다. 하지만 곧바로 인기 하드밥 밴드 아트 블레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일원으로 유럽 투어에 참여하면서 일약 19세의 나이에 재즈 스타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트 블레키와 함께 한지 3년 만에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하게 되면서, 친형 브랜포드 마살리스, 케니 커클랜드와 함께 자신의 밴드를 구성했다. 앨범 <Think of One>(1983), <Hot House Flowers>(1984), <Black Codes>(1985)가 연이어 그래미를 수상하면서 이보다 더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정도로 최고의 데뷔 시절을 보낸 재즈 스타가 되었다.

<Standard Time Vol. 1>(1987)의 ‘Caravan’. 듀크 엘링턴이 1936년 공동 작곡한 곡이다

하지만 브랜포드와 피아니스트 케니 커클랜드는 크로스오버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팝스타 스팅(Sting)의 프로젝트 제안을 따라서 밴드를 떠났다. 그 자리를 대신한 피아니스트 마커스 로버츠(Marcus Roberts)는 다섯 살부터 시각장애인이 되었으나 천부적인 음감의 소유자였고, 뉴올리언스 전통 재즈에 깊은 관심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서 주변에서 그를 ‘J Master(재즈 마스터)’라 부를 정도였다. 그의 연주는 비밥보다 전통적인 랙타임(Ragtime)이나 스트라이드 피아노(Stride Piano)에 더 가까웠다. 또래의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빌 에반스나 맥코이 타이너보다 제리 롤 모튼이나 패츠 왈러에 더 깊은 영향을 받았다. 윈튼 마살리스가 그와 함께 구성한 두 번째 쿼텟의 첫 앨범 <J Mood>(1986)의 ‘J’는 그를 지칭한 말이며, 이 음반 역시 그래미를 수상하였다.

<Standard Time Vol. 2: Intimacy Calling>(1991)의 ‘When It’s Sleepy Time Down South’. 1931년 곡으로 루이 암스트롱의 대표곡 중 하나다

윈튼 마살리스와 마커스 로버츠의 신진 콤비는 재즈 레전드였던 마일스 데이비스나 허비 행콕과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들이 재즈의 일탈과 퓨전을 추구할 때, 젊은 두 사람은 도리어 메인스트림 재즈를 추구했다. 그러한 노력의 첫번째 열매가 <Standard Time Vol. 1>(1987)이다. 윈튼 마살리스는 검은 양복과 진지한 표정으로 앨범 표지를 장식하였고, 12곡 중 10곡을 ‘Caravan’, ‘Cherokee’ 같은 재즈 스탠더드로 미래의 재즈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이 앨범 역시 그래미 최고 재즈연주 앨범상을 받으며 윈튼 마살리스는 5년 연속 그래미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Standard Time Vol. 3: The Resolution of Romance>(1990)의 ‘In the Court of King Oliver’. 윈튼 마살리스가 뉴올리언스 스타일로 작곡한 오리지널이다

스탠더드 타임 시리즈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Standard Time Vol. 3: The Resolution of Romance>에서는 마커스 로버츠 대신, 뉴올리언스 재즈의 레전드인 아버지 엘리스 마살리스 주니어가 피아노를 맡아 뉴올리언스 재즈의 스탠더드 21곡을 연주했다. 1991년에는 블루스 스탠더드 시리즈 <Soul Gestures in Southern Blue> 세 장을 연속해서 출반했고, 마커스 로버츠가 마살리스 형제의 막내 제이슨 마살리스와 함께 자신의 트리오를 결성하여 독립한 후에도 <Standard Time Vol.5: The Midnight Blues>(1998) <Standard Time Vol. 4: Marsalis Plays Monk>(1999)로 이어졌다.

뉴올리언스 음악, 클래식의 영향, 재즈 즉흥연주에 대해 설명하는 마커스 로버츠

두 사람은 지금도 미국 재즈의 기본을 지키는 중심 인물이다. 자신의 음악 활동 외에도 재즈 전파나 후학 양성에 매진한다. 윈튼 마살리스는 뉴욕 링컨센터의 재즈 부문인 Jazz at Lincoln Center의 책임자(Director)로 활동하고 있고 <Marsalis on Music> 같은 TV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마커스 로버츠 역시 미국 남부 지역의 교육 프로그램 형성에 기여하였고, 현재는 모교인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듀크 엘링턴이나 루이 암스트롱을 가르치고 클래식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두 사람의 방향성이 재즈를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시대착오라는 논쟁은 이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