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주목받는 미드의 장르 중 하나는 블랙코미디로, 다른 말로는 다크 코미디라고도 한다. 코미디에서는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 예컨대 죽음, 테러리즘, 인종 차별, 약물 중독 등과 같은 극단적인 소재들로 하여 웃음을 유발하거나 풍자의 소재로 삼는 장르다. 그 중에서 가장 심오하면서도 어두운, '죽음'을 유쾌하게 비튼 세 편의 블랙 코미디를 소개해볼까 한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죽음에 대한 제작자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되어 독보적인 색깔과 유머 감각을 드러내며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랑받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브라이언 풀러 감독의 <푸싱 데이지(Pushing Daisies)>(2006)와 <데드 라이크 미(Dead Like Me)>(2003)다. 두 작품은 사후세계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와 유쾌한 색깔을 고루 담고 있다. 무엇보다 삶의 끝인 죽음이 곧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관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푸싱 데이지>

<푸싱 데이지>는 당시 미국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작가 파업 사태에 의해 2시즌 만에 종영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드라마다. 심지어 약 12년 전 파일럿 에피소드가 불법 유출되어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러나 단 두 시즌, 총 22화만으로 골든글로브, 에미상을 포함한 유수의 시상식에서 각종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에미상에서는 음향, 연출 부문을 비롯해 여우조연상 등 2년간 7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현재까지도 리부트되었으면 하는 추억의 TV 드라마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숨은 명작이다.

2009 에미상 코미디 부문 여우조연상을 받은 크리스틴 체노웨스 

<푸싱 데이지>에서 파이장수 ‘네드’ 역을 맡은 리 페이스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우연히 어릴 적 첫사랑 '척'(안나 프리엘)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척'을 살린다. 하지만 네드의 능력에는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그는 단 한번의 손길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지만, 살아난 이에게 1분 안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다른 누군가가 대신 죽게 된다. 게다가 살아난 이에게 그의 손길이 다시 닿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죽는다. 네드는 능력을 이용해 결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척과 함께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푸싱 데이지>는 선명한 색감의 영상미와 짐 데일의 내레이션을 통해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소재는 ‘사랑’, ‘이타적인 삶’, ‘희망’과 같은 메시지를 힘입어 따뜻한 시선으로 되살아난다. 죽음은 결국 살아있는 순간을 더 많은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제작자 브라이언 풀러의 남다른 관점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푸싱 데이지> 예고편

 

<데드 라이크 미>

2004년 방영된 <데드 라이크 미>는 엘렌 뮤스와 맨디 파틴킨이 주연을, 훗날 드라마 <한니발>(2013)을 탄생시킨 브라이언 퓰러가 당초 제작을 맡았으나 제작사와의 견해 차이로 시즌1 5화 만에 하차해 아쉬움을 자아낸 작품이다. 그러나 삐걱대는 제작진과 무관하게 드라마는 마니아층의 호응에 힘입어 큰 사랑을 받았다.

<데드 라이크 미>는 이기적이고 괴팍한 10대 소녀 ‘조지’(엘런 뮤스)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죽은 이후 사신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이자, 죽고 나서야 비로소 가족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조지의 하이틴 성장드라마다. 조지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주변인들도 조지의 죽음 이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자가 직면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성장하게 된다.

영화 속 사신은 죽기 직전의 사람들의 영혼을 거두는 일부터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일까지 맡는다. 사신이 된 조지는 매 에피소드 극적인 활약을 펼치며 성장하게 된다. 특히 생전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조지가 지난날들을 후회하며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반성하는 순간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전반적으로 우스꽝스러운 내용과 달리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데드 라이크 미>는 현재의 삶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활력이 될 것이다.

<데드 라이크 미> 예고편

 

<식스 핏 언더>

<식스핏 언더(Six Feet Under)>는 2005년 종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최고의 미국 드라마 반열에서 내려오지 않는 작품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드라마 100’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높은 평가의 배경에는 완성도 높은 각본과 배우들의 열연이 한 몫 했다. 영화 <아메리카 뷰티>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알란 볼의 첫 TV드라마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장의사 집안인 피셔 가를 중심으로 매 에피소드 각기 다른 죽음을 다루는 동시에 가업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떠나자 남겨진 두 아들 네이트와 데이비드가 가업을 두고 마찰을 빚게 되면서 시작된다. 5개 시즌에 걸쳐 매 순간 죽음을 눈 앞에서 직면하고 이를 반복하는 장의사의 시선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고 있다.

<식스 핏 언더> 속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려진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지라도 남겨진 자들의 삶은 계속되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극 중 사자(死者)와의 대화는 피셔 가의 형제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장치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절절하면서도 담백하게 이를 전달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는 등 종영된 지 십여 년이 흘렀지만 그 여운이 오래 기억되고 있다.

<식스 핏 언더> 예고편

이 밖에도 지금 넷플릭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두고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를 다수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 공개된 <러시안 인형처럼>, <데드 투미>,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이 그렇다. 이들 드라마 속 죽음은 단순히 절망과 안타까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을 극복하는 방식을 유쾌하게 전달하며 많은 이들에게 웃음뿐만 아니라 공감과 힐링까지 선사한다. 죽음을 유쾌하게 비튼 이들 블랙 코미디들은 죽음을 가벼이 여기고 생명을 경시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상처받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고자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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