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무당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당신 앞에 있는 무당은 어떤 모습이었나? 별말도 안 했는데 과거를 정확하게 맞추고, 막연하게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답을 해주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무당의 모습이다. 우린 미래가 궁금할 때, 무엇 하나 결정하기 힘든 현실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 무당을 찾는다. 

무당이 등장하는 영화를 소재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뒤에,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무당을 보러 갔다. 작두 위에 서 있는 무당을 보면서, 그 모습이 무당의 삶을 함축한다고 느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 작두를 타는 건 두려운 일일 텐데, 무당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작두 위에 오른다.

삶에는 예측 불가의 사건이 언제든 등장하고, 사람들은 궁금증이 생길 때 무당을 찾는다. 그렇다면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 동안 무당의 삶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 그들도 무당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삶의 수많은 화두로 고민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영화 속 무당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무당의 삶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들을 살펴보자.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설경구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2002)는 영매(靈媒)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매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소통을 맡는 이를 뜻한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영매는 스스로 매개체가 된다.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영매들을 보여준다. 진도에는 대대로 세습하는 ‘세습무’가 존재하고, 이를 ‘당골’이라고 부른다. 세습무는 집안 대대로 굿하는 방법을 물려받으며, 신내림을 받은 이들과는 별개다. 신내림을 받은 이들은 ‘강신무’라고 부른다. 진도에 사는 세습무와 강신무의 삶에 이어 영화가 보여주는 건 27살에 신내림을 받아 10년째 점을 보고 굿을 하는 인천의 영매다. 그녀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승의 엄마가 저승의 아들과 만날 수 있도록 굿을 한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는 영매를 찾는다. 죽은 아들은 잠시 영매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온다. 영매의 입을 통해 아들은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누이, 잘 지내요. 아빠, 엄마를 부탁해요. 엄마, 마음 단단히 먹고 오래 살아요. 동생아, 건강해라, 불이나 물이나 위험한 거 조심하고, 너만 믿는다 내가. 이승에서 다 못한 말을 뒤늦게 한다. 영매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이뤄진다.

 

<사이에서>

<사이에서>(2006)는 <목숨>(2014), <노무현입니다>(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에는 여러 명의 영매가 등장하지만, <사이에서>는 한 무당의 삶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다. 이창재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60여명의 무당을 만났고, 큰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다루기 위해 대무(大巫) 이해경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이에서>는 이해경에게 찾아온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해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8살에 주변 사람들의 미래가 보이고, 자신과 주변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신내림을 받아야 할지 갈등하는 황인희, 30년간 암을 비롯한 갖은 병을 앓고 50살이 되어서야 신내림을 받게 된 손영희, 이유도 없이 왼쪽 눈을 실명하고 어느 날부터 귀신이 보이는 8살 김동빈. 이해경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무당의 삶에 존재하는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이에서>는 인물을 소개할 때 손을 보여주며, 손에는 신이 그려준 운명이 있다고 말한다. 이해경은 신내림의 숙명을 받은 인물들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이해경은 남편에게 학대당하고 자식을 잃는 등의 슬픔을 겪다가 무당이 되었다. 자신도 무당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28살 황인희가 신의 응답을 받았어도 무당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 8살 김동빈이 17살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남들처럼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50살 손영희의 삶이 앞으로는 편안하기를 바라며 굿을 한다. 사람은 미래를 보고 싶어서 무당을 찾지만, 정작 모든 것을 다 보는 듯한 무당의 삶은 내내 외롭고 슬프다.

 

<만신>

<만신>(2013)의 ‘만신(萬神)’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만신>의 연출자 박찬경은 미디어 아트 작품을 전시하는 아티스트로, 친형인 박찬욱 감독과 ‘파킹찬스(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함께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대표작은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 부문 황금곰상을 받은 <파란만장>(2010)으로, <파란만장>에도 무당이 등장한다.

<만신>은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과 달리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형식이 섞인 작품이다. 김금화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인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지정된 김금화의 삶을 보여준다. 김금화가 직접 출연해서 다큐멘터리처럼 진행하는 동시에, 배우들이 직접 김금화의 삶 일부를 재연한다. 어린 시절은 김새론, 신내림을 받을 당시는 류현경, 70년대의 김금화는 문소리가 각각 연기한다.

김금화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어린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노예처럼 지내다가 도망치고, 신내림을 받은 뒤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첩보 활동의 누명을 쓰고, 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인 미신타파로 인해 핍박받는다. 김금화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한국전쟁과 분단 등 한국 현대사의 모든 순간을 몸으로 느끼며 만신이 됐다.

김금화는 자신이 고통받아봤기에, 자신을 찾은 이들의 한을 위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금화는 올해 2월에 세상을 떠났지만, 만신에게 위로받았던 이들의 마음 안에는 여전한 존재감으로 숨 쉬고 있다.

 

<곡성>

앞에서 소개한 세 편의 작품은 무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곡성>(2016)은 극영화로서, 앞에 세 작품과 완전하게 성격이 다른 작품이다. 그런데도 <곡성>을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한국영화에 등장한 무당 캐릭터 중 관객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곡성>은 오컬트 장르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장르 영화가 무당을 활용하는 방식의 한 예이기도 하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 때문에 혼란스럽다. 마을주민들은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들어온 이후 마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하고, 종구는 무명(천우희)을 만난 뒤로 외지인에 대한 소문을 믿기 시작한다. 어느 날부터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이 이유 없이 아파하는 등 통제 불가의 일들이 벌어지고, 종구는 무당 일광(황정민)에게 이에 관해 묻는다.

무당 일광은 종구가 현실에서 해결 못 하는 부분에 대해 답을 제시한다. 초현실적인 현상 앞에서 무당은 그 어떤 권위자보다도 큰 신뢰를 얻는다. <곡성>은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 못 하는 현상에 대해 말한다. <곡성>처럼 큰 규모의 사건이 아니어도, 우리의 삶은 늘 예상 불가한 지점과 함께 진행된다. 그런 면에서 <곡성>의 태도는 일종의 애도처럼 보인다. 우리가 옳은 방향이라고 믿는 쪽을 향해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힘든 순간이 등장할 거라는 슬픈 확신. 왜 우리 삶에는 감당 못 할 고통이 등장하는가? 우리 삶에 늘 무속신앙이 함께 하는 이유는 이런 근본적인 물음 때문이 아닐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