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극장가에 전례 없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역대 22번째 영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제3막(Phase 3)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슈퍼 히어로들을 하나의 영화에 모은다는 설정은, 서로 다른 영화사에 분산되어 있던 판권 문제나 막대한 제작비로 인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마블은 산하에 영화사를 설립하고 디즈니를 모회사로 두면서 하나하나 실행에 옮겼고, 2008년 <아이언맨>으로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첫 테이프를 끊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레드카펫 행사 영상

하지만 MCU 영화사는 그동안 감독과 배우들에게 고난의 역사이기도 했다. MCU의 세계관과 스토리 구조 하에서 감독들의 독창성은 제약되었고, 타이트한 제작비와 일정 관리, 그리고 이들을 옥죄는 마블 특유의 계약 방식은 여러 문제를 노출시켰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은 일정에 쫓겨 제작을 강행해야 했고, 결국 <아이언맨>(2008)과 <아이언맨 2>(2002)를 감독했던 존 파브로(Jon Favreau) 감독은 아이언맨 3부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떠났다. ‘헐크’ 역을 맡았던 에드워드 노튼은 마크 러팔로로 교체되었고, ‘워 머신(War Machine)’ 역의 테렌스 하워드도 돈 치들로 교체되었다. <토르>의 케네스 브래너 감독 또한 후속편에 복귀하지 못했다.

MCU 제작을 총괄한 마블 스튜디오 케빈 파이기(Kevin Feige) 사장

2011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조 존스톤 감독은 비주얼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으나, 그 역시 다음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마블은 대신 세 사람의 후보를 놓고 저울질한 끝에 의외의 감독을 선택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슈퍼 히어로 영화를 감독한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이 다른 코미디 영화와 드라마를 주로 제작한 루소 형제였다. 코엔 형제처럼 언제나 함께 일하는 형 앤소니와 동생 조세프는, 마블과의 인터뷰에서 ‘드론’ 아이디어로 후한 점수를 받았고, 마블의 최고 책임자인 케빈 파이기 사장이 당시 형제가 제작하던 드라마 <Community>의 최종 에피소드를 보고 결심을 굳혔다.

<어벤저스: 엔드게임> 루소 형제의 인터뷰

루소 형제의 첫 MCU 작품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2014)는 1억 7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7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는 2억 3천만 달러의 제작비로 11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들을 고용한 마블을 흡족하게 했다. 이제는 당연한 수순으로, 수많은 감독이 원하는 대망의 <어벤져스> 시리즈의 감독을 연이어 맡게 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는 <타이타닉>(1997, 22억 달러), <아바타>(2009, 28억 달러),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21억 달러) 이후 역대 네 번째로 흥행수입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10억 달러 고지를 가장 빠르게 넘어선 영화로, 현재 추세로 보아 역대 최고 흥행영화로 올라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루소 형제감독과 크리스 에반스(가운데)

코미디 드라마를 주로 제작하던 루소 형제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멋지게 낚아챘고, 지난 6년 반 동안 MCU를 마무리하는 네 편의 영화 감독을 맡아서 최고의 흥행 기록을 썼다. 이들은 당분간 쉬면서 슈퍼 히어로 감독을 맡지 않을 것이라 밝혔지만,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MCU에 게이 캐릭터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 역설하며 오래지 않아 다시 복귀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였다. 수많은 영화감독이 원했지만 잡지 못했던 기회를 잡아 앞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을 쌓은 루소 형제가 <어벤져스> 전쟁의 진정한 승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