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방문했던 국가 중 어디가 가장 아름다운지 물으면 높은 확률로 ‘이탈리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탈리아는 어느 도시를 가도 아름다운 풍경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탈리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감독들에게 이탈리아는, 주로 비극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여행자들에게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영화를 통해 이탈리아를 접한 이들에게 이곳은 비극의 배경으로 기억될 확률이 높은 것. 이탈리아의 거장들이 만든,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극적인 영화들을 살펴보자. 

 

타비아니 형제의 <빠드레 빠드로네>

2018년 4월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이탈리아 영화계의 거장 비토리오 타비아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비토리오 타비아니는 동생 파올로 타비아니와 함께 제3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로렌조의 밤>(1982), 제62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시저는 죽어야 한다>(2012) 등을 연출했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속 비극적인 이야기보다 더 슬픈 사실은 앞으로 두 사람의 합작을 볼 수 없다는 거다. 두 사람이 그려낸 가장 대표적인 비극은 제30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빠드레 빠드로네>(1977)다.

이탈리아 남부 사르데냐섬에 사는 소년 ‘가비노’(파브리지오 포르테)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오메론 안토누티) 밑에서 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양치기로 자란다. 성인이 된 가비노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군에 입대하지만, 글을 모르고 사투리도 심한 그에게 군대생활 적응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가비노의 군대 동기(난니 모레티)가 글을 알려주고, 가비노는 이를 계기로 언어 공부에 몰두한다. 가비노는 고향에 돌아가서 언어학자가 되길 원하지만,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폭력적이고 권위적이다.

<빠드레 빠드로네>는 언어학자 가비노 레다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가비노 레다가 영화의 시작과 끝에 실제로 등장한다. 가비노는 영화에 나온 대로 문맹의 양치기로 지내다가 독학으로 언어학자가 됐다. 가비노는 처음 글을 배울 때 비슷한 단어를 묶어서 외우는데, ‘빠드레(Padre)’, ‘빠드로네(Padrone)’는 각각 ‘아버지’, ‘주인’을 뜻한다. 가비노에게 삶의 주인은 늘 아버지였지만, 글을 배운 뒤 확장된 세계 안에서 가비노의 삶은 가비노 자신의 것이 된다.

<빠드레 빠드로네> 트레일러

가비노의 삶은 아버지에 의해 정해진, 다른 길이 없는 삶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의 억압이 가비노로 하여금 소통에 대한 열망을 키웠고, 우연히 알게 된 언어가 삶의 새로운 돌파구가 된다. 언어는 곧 세계이고, 가비노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확장한다. 교육과 언어가 비극적인 삶에서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걸, 가비노의 삶을 보면서 느낀다.

 

난니 모레티의 <아들의 방>

앞에서 소개한 <빠드레 빠드로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주인공 가비노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군대 동기로,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지금부터 소개할 난니 모레티다. 제30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빠드레 빠드로네>에서 짧은 분량으로 등장했던 난니 모레티는, 몇십 년 뒤에 자신이 직접 연출, 각본, 주연을 맡은 <아들의 방>(2001)으로 제54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다. 난니 모레티는 블랙코미디에 능한 감독이지만, <아들의 방>은 아들을 잃은 가족의 슬픔에 집중한 작품이다.

정신과 의사 ‘지오반니’(난니 모레티)는 아내 ‘파올라’(로라 모란테), 아들 ‘안드레’(주세페 산펠리체), 딸 ‘이레네’(자스민 트린카)와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러나 안드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의 삶에는 균열이 생긴다. 남은 가족 모두 일상의 순간순간에 슬픔이 몰려와서 힘들어하는 와중에, 우연히 안드레의 옛 여자친구와 연이 닿게 된다.

<아들의 방> 트레일러

지오반니의 직업은 정신과 의사로, 매일매일 환자들의 다양한 사연을 듣는다. 타인을 치유하는데 익숙한 지오반니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건 쉽지 않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통곡하고, 아들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슬픔이란 없다. 슬픔은 평화와 우아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잊힐 때쯤 삶에 문득문득 등장해서 우리를 괴롭힌다. <아들의 방>은 비극이 불러온 슬픔을 조용히 목격하며, 슬픔의 차가운 속성을 보여준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일 디보>

이탈리아 출신 영화감독 중에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은 파올로 소렌티노다. 영미권 배우들과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 <유스>(2015)를 작업한 파올로 소렌티노의 가장 최근작은 올해 3월에 국내 개봉한 <그때 그들>(2018)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풍자극으로, 파올로 소렌티노는 이전에 <일 디보>(2008)를 통해 논란의 정치인에 대한 탁월한 풍자를 보여준 적이 있다. 제61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파올로 소렌티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알린 <일 디보>(2008)는 이탈리아 정치인 줄리오 안드레오티에 대한 작품이다.

‘줄리오 안드레오티’(토니 세르빌로)는 총리, 장관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해 온 정치인이다. 다만 그가 자신의 권력을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은 그리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이들을 계속해서 암살하지만, 그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검찰은 본격적으로 그와 마피아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줄리오 안드레오티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들이 의문사하면서 암살 관련 논란이 많았고, 파올로 소렌티노는 아예 노골적으로 이를 풍자해서 정치인들을 마피아처럼 그려낸다. 마피아와 정치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도덕이라면, 이들은 이미 마피아다. 이들의 언행은 마피아인데, 이들의 신분은 최상의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일 디보> 트레일러

줄리오 안드레오티는 “난 우연을 믿지 않아, 하나님의 뜻을 믿지”라는 대사를 반복한다. 그의 대사는 자신에게 나쁜 변수가 될 수 있는 모든 인물을 죽이고,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길 바라는 심리를 대변한다. ‘일 디보’는 ‘신이 내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별명이다. 악행을 저질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으므로, 그의 권력은 신에 가깝다. 나쁜 정치는 세상을 몰락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한국 관객에게 이탈리아의 정치 세계는 낯설지만, 사악한 정치인들에 대한 경계심은 만국 공통이기에 보는 내내 통탄하게 된다.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

2008년 전 세계 영화인들은 두 편의 이탈리아 영화에 열광했다. 2008년 열린 제61회 칸영화제에서 파올로 소렌티노의 <일 디보>가 심사위원상을,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2008)가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두 작품은 모두 이탈리아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인데, 방법론에서는 거의 반대에 가깝다. <일 디보>는 시각적인 화려함과 함께 과장을 통해 인물을 희화화시켜서 풍자하고, <고모라>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고모라>는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나폴리의 마피아 ‘카모라’의 범죄에 집중한다. 영화의 제목인 ‘고모라’는 구약에 등장하는 부패한 도시 고모라와 마피아 카모라, 두 가지 모두를 연상시킨다. 나폴리는 카모라에 의해 점점 부패해가고, <고모라>는 나폴리에 사는 인물들이 범죄에 휩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작자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책을 출판한 뒤에 카모라에게 살해위협을 받았을 만큼 적나라한 이야기를 다뤘고, 영화도 마찬가지다. 딱히 주인공이 없을 만큼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은 모두 범죄에 연루된다. 결국 모든 인물이 위협받고 죽는 모습을 보면 <고모라>의 주인공은 폭력과 부패로 가득 찬 도시 나폴리, 그 자체다.

<고모라> 트레일러 

<고모라> 속 소년들은 폭력이 지배하는 환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피아가 되길 원한다. 마피아들이 직접 사람을 죽일 동안, 사업가는 폐기물을 땅에 매입한다. 영화가 끝나고 등장하는 자막에 따르면 폐기물을 매입한 지역의 암 발생률은 20% 증가했다. 도시 안에 총을 사용한 직접적인 폭력과 자본가들이 행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만연하다.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영화가 현실의 일부일 뿐, 현실은 분명 영화보다 더하다는 것이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