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862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출간된 이래, 이 이야기는 오늘 날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재탄생하여 사랑받고 있다.

소설 <레미제라블> Via ‘Amazon

굶는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체포되어 19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장발장은 감옥에서 나온 뒤 차갑기 그지없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굶주림에 고통받는다. 하지만 미리엘 신부만이 그에게 따뜻한 호의를 베풀었고 이에 장발장은 크게 감동,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후 이름을 바꾸고 열심히 일한 결과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시장이 되었음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자베르 경관에 의해 다시금 체포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코제트를 돌보겠다는 판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탈옥을 감행, 경관을 눈을 피해 파리로 도피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주인공 장발장의 불행과 구원, 사랑과 희망을 담은 이야기는 수 세기에 걸쳐 깊은 감동을 안겼다. 빅토르 위고는 총 다섯 권, 365개의 챕터, 2,000쪽에 달하는 <레미제라블>의 방대한 분량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뮤지컬과 연극 제작에도 직접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노력은 현대에도 이어져 <레미제라블>은 뮤지컬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도 여러 차례 다시 태어나 현대인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드라마 <레미제라블>(2000, 프랑스)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프랑스에서는 이 작품을 이미 수차례 리메이크했다. 그중에서 1934년 레이몬드 버나드가 주연을 맡고, 2000년 존 말코비치, 제랄드 드라프디유가 주연을 맡은 두 편의 드라마가 원작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으며, 자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2012년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한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 버전이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휴 잭맨, 러셀 크로,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에디 레드메인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이 작품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레미제라블>의 대표적인 리메이크 작품으로 꼽힌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 미국)
영화 <레미제라블>(2012, 미국) 예고편

프랑스에서 제작된 두 편의 드라마가 원작의 고증 및 작품성을 고려했다면,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 뮤지컬 버전의 영화는 대중성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작품들 모두 평단이 호평한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만족시킨 리메이크 작품을 굳이 고른다면, 지난 해 BBC에서 리메이크한 논-뮤지컬(Non-Musical) 버전의 <레미제라블>(2018)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작품의 마지막 화가 방영되었을 때, 평단과 대중 모두 고전을 리메이크 한 TV작품들 중 단연 최고의 TV시리즈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사람들을 매료시킨 건 아니었다. 지난 해 12월 BBC One에서 <레미제라블> 1화가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 웨스트앤드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워낙 유명한 데다가, 2012년 개봉된 뮤지컬 버전의 영화 <레미제라블>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19세기 프랑스를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삭막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이 시리즈에 점차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레미제라블>(2018, 영국)

도미닉 웨스트가 ‘장발장’ 역을, 데이비드 오예로워가 ‘자베르’ 역을, 릴리 콜린스가 ‘판틴’ 역을 맡아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열연을 펼쳤다. 올리비아 콜먼이 ‘코제트’의 양어머니 ‘마담 테나르디에’ 역을 맡았다. BBC에서 방영된 이 새로운 버전의 <레미제라블(2018)>은 1995년 BBC에서 방영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극작가 앤드류 데이비스의 작품이다. 그는 가장 최근 BBC가 드라마화한 <전쟁과 평화>의 각본을 맡기도 했다.

사실 고전의 재해석에 능수능란한 그조차도 <레미제라블>의 방대한 분량을 6부작으로 압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앤드류 데이비스는 역사적 배경, 고증을 거치지 않은 엉터리 가사의 뮤지컬에 회의를 느껴, 어려움을 감수해서라도 새롭고 제대로 만든 <레미제라블>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지난 12월 BBC에서 공개된 <레미제라블>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등장인물 고유의 이야기를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이든, 영화나 드라마든 정해진 시간과 한정된 분량 안에 원작 <레미제라블>의 방대한 이야기를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작은 가지들은 생략되기 마련이고, 때때로 큰 줄기의 개연성을 잃기도 쉽다. 앤드류 데이비스는 이 같은 점을 보완하고자 했다.

드라마 <레미제라블>(2018, 영국) 예고편

2018년 리메이크된 <레미제라블>과 과거의 TV 작품들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판틴’의 분량이다. 판틴은 예상 못한 임신을 하고, 아이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일자리를 잃게 되며, 병까지 걸린다. 그의 삶은 가난의 덫을 보여주는 동시에, 19세기 프랑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대체로 드라마나 영화 속 판틴은 딸과 생계를 위해 머리카락을 팔고 몸을 파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의 모정과 희생만이 강조되었던 것. 반면에 2018년 리메이크된 드라마에서의 판틴은 6부작 가운데 1~3화에 걸쳐 중요하게 등장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판틴이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잣집 도련님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과 그에게 버림받는 장면, 코제트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장면들을 추가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드라마 <레미제라블>(2018, 영국)

따라서 <레미제라블>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있어, 2018년 작은 가장 설득력 있는 작업물 중 하나인 동시에 매우 친절한 작품이다. 2012년 휴 잭맨, 러셀 크로 주연의 영화 또는 뮤지컬 공연을 통해 레미제라블을 먼저 접했다면, 이 작품이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BBC에서 1화가 방영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시청자들은 노래 없는 무미건조한 <레미제라블>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미닉 웨스트, 릴리 콜린스, 데이비드 오예로워 등 영국 배우들의 열연은 동시간대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고, 2018년 최고의 TV 고전 리메이크작으로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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