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 북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작은 도시 콩코드(Concord)에서 사상 최초로 재즈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곳에서 ‘링컨-머큐리’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해 성공한 지역 유지 칼 제퍼슨(Carl Jefferson)은 열정적인 재즈 팬이었다. 그는 자신의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 주민들의 협력과 시 당국으로부터 페스티벌 운영비 절반에 해당하는 찬조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아무런 시설 없이 잔디밭만 덩그러니 있던 콩코드 거리공원(Concord Boulevard Neighborhood Park)에 페스티벌을 열어 오스카 피터슨, 제리 멀리건, 조지 시어링, 엘라 피츠제럴드 등 당대의 재즈 스타들을 초청했다.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와 같은 인근 대도시의 재즈 팬들이 몰려들면서 첫 해 관객이 무려 만 7천 명에 이를 정도로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콩코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데이브 브루벡 공원 입구

그 후 콩코드 재즈 페스티벌은 매년 같은 장소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국제적인 재즈 페스티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 행사가 열린 공원은 콩코드 출신의 재즈 스타 데이브 브루벡 이름을 따라 데이브 브루벡 공원(Dave Brubeck Park)이라 개명했다. 칼 제퍼슨은 비가 오는 날에도 문화 행사가 열릴 수 있도록, 지붕이 딸린 야외 음악당을 건설할 것을 시 당국에 적극 요청했다. 당국은 마침내 1975년에 약 50억 원의 건설비를 들여 콩코드 파빌리온(Concord Pavilion)을 건설했다. 수 차례의 개보수를 거친 이 곳은 오늘날 1만 2천 석과 인근 잔디밭을 갖춘 지역 문화행사의 산실이 되었다.

콩코드 파빌리온(Concord Pavilion)

칼 제퍼슨은 재즈 페스티벌의 성공에 고무되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열정을 살린 재즈 비즈니스에 나섰다. 페스티벌에 출연했던 허브 엘리스와 조 패스의 협연 음반을 내기 위해, 자신의 자동차 딜러 건물 옆의 레스토랑을 개조하여 1973년에 콩코드 레코드(Concord Records)를 설립했이다. 초기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허브 엘리스, 찰리 버드, 바니 케셀, 조 패스, 짐 홀 같은 재즈기타 음반에 집중하다가, 점차 스윙 재즈, 재즈 보컬, 라틴 재즈 분야로 확장하여 6백여 장의 음반을 직접 프로듀싱했다. 오늘날 콩코드 레코드는 1천 타이틀의 음반을 발매하여 그래미를 13회 수상한 독립 재즈 레이블로 자리잡았다.

콩코드 레이블의 초기 음반, 허브 엘리스와 조 패스의 <Seven, Come Eleven>(1973)의 타이틀곡

콩코드 재즈의 창업자 칼 제퍼슨은 노먼 그랜츠와 함께, 재즈 역사에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임프레사리오(Impresario)로 손꼽힌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자 회사를 매각했이고, 이듬 해인 1995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했이다. 그의 손을 떠난 콩코드 레코드는 2004년 판타지 레코드(Fantasy Records)와 합병했고, 2005년에는 클래식 부문에 강한 텔락(Telarc)을 인수하며 오늘날 콩코드 뮤직 그룹(Concord Music Group)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창업자가 떠난 후, 콩코드 뮤직 페스티벌은 콩코드를 떠나 뉴욕, 토론토, 동경에서 열리다가 2004년을 마지막으로 지난 15년간 열리지 않았다. 콩코드 레코드 역시 콩코드에서 베벌리힐스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콩코드에서 일어난 재즈 열기는 차츰 시들었다.

콩코드 레코드와 페스티벌 창업자 칼 제퍼슨

올해는 콩코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지 50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콩코드 파빌리온 운영사 Live Nation Entertainment는 콩코드 뮤직 그룹과 협력하여 15년 만에 원래의 장소 콩코드 파빌리온에서 콩코드 재즈 페스티벌을 열기로 했다. 8월 3일 하루 동안 진행되는 이 행사에 에스페란자 스폴딩, 칙 코리아, 데이브 코즈, 폰초 산체스 등의 재즈 레전드를 초청하여, 콩코드의 재즈 열기를 되살리고 실황 음반을 낼 계획이다. 티켓 가격은 39.5달러에서 149.5달러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