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희망직업 순위에서 ‘유투버’로 불리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10위 안에 포함됐다. 요즘 인터넷 방송 진행자를 꿈꾸는 이들은 비단 초등학생만이 아닐 것이다. 조직 생활에 지친 직장인도 한 번쯤은 스타 유튜버와 BJ를 꿈꾸기도 한다. 한국영화 속 인터넷 방송 진행자는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 방송이 주류 문화가 되기 전부터 이를 영화 소재로 활용한 <잉투기>와 배우 류준열의 장편 초기작 <소셜포비아>, 한국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은 <곤지암>이 우리 주변의 인터넷 방송 세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알아보자.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잉투기>

잉여들의 거친 세상

2013년 개봉한 <잉투기>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던 엄태화 감독의 장편 독립영화다. 자기 방식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잉여들의 일상을 영화로 담았다. <밀정>에서 강렬한 악역 연기를 선보인 엄태구,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이름을 날린 류혜영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감독 엄태화와 배우 엄태구는 류승완, 류승범의 뒤를 잇는 충무로의 형제 콤비다. 영화 제목 잉투기는 ‘잉여들의 격투기’ ‘ing투기’라는 뜻의 아마추어 격투 대회로, 키보드 워리어인 잉여들이 인터넷이 아닌 현실로 나와 정정당당하게 땀 흘리며 상대와 겨루는 무대다. 2011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실제 대회를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현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적이었던 ‘젖존슨’에게 급습당한 ‘칡콩팥’ ‘태식’(엄태구)이 복수를 위해 종합격투기를 배우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킥복서 출신 인터넷 먹방 BJ, 영자

<잉투기>에서 ‘영자’(류혜영)는 실력 있는 고등학생 킥복서다. 하지만 그의 주된 일과는 학교 생활도, 킥복싱도 아닌 인터넷 방송이다. 삼촌이자 격투기 도장 관장인 ‘형욱’(김준배)이 부모님 없이 홀로 사는 영자를 돌보지만 인터넷 세상에 빠진 영자를 말리진 못한다. 영자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태식과 함께 젖존슨을 찾아다니다가 태식의 복수를 돕기 위해 그에게 격투기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밤마다 영자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은 먹방이다. 영자는 분홍색 가발을 쓰고 치킨을 뜯으며 방송을 보는 네티즌들과 설전한다. 지금처럼 인터넷 방송이 보편화가 되지 않았을 때, 인터넷 방송 진행자는 시시콜콜 부정적인 편견과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에서 영자 역시 주위 친구들로부터 비난받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이에 맞선다.

 

<소셜포비아>

소셜네트워크 세계의 어두운 이면

2015년 개봉한 <소셜포비아>는 홍석재 감독의 데뷔작이자 배우 변요한과 이승재, 류준열의 얼굴을 알린 영화다. 홍석재 감독은 <잉투기>를 만든 엄태화와 한국영화 아카데미 동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악플러들이 어느 선수를 공격하기 위해 집 근처까지 찾아간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영화는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현피’(인터넷 공간에서의 싸움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의 폭력성을 그린다. 영화는 한 군인의 탈영과 자살 소식에 대해 ‘레나’(하윤경)라는 트위터리안이 악플을 달자, 레나의 언행에 화가 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양게’라는 BJ를 중심으로 현피 원정대를 조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웅’(변요한)은 같이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용민’(이주승)과 함께 기분 전환할 겸 이 원정대에 참가하게 되고, 원정대원들과 레나의 집에 쳐들어가지만 레나의 시신을 발견한다.   

현피 원정대를 만든 BJ, 양게

‘양게’(류준열)는 레나를 타겟으로 현피 원정대를 조직하는 인터넷 방송 BJ다. ‘양게TV’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레나의 죽음 이후 '민진사'라는 레나(영화에서 실명은 민하영이다)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모임을 만들어 진상 규명 과정을 인터넷으로 방송한다.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양게 캐릭터 구축을 위해 아프리카TV의 BJ 철구를 레퍼런스로 삼았으며, 류준열 역시 BJ 철구를 보고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응답하라 1988> <리틀포레스트> 등 여러 작품에서 듬직한 역할로 등장했던 것과 달리 <소셜포비아>에 등장하는 류준열은 한없이 가볍고 철없다. 실제 교정기를 차고 실감 나게 인터넷 방송 BJ를 연기하는 류준열의 모습은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곤지암>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형식

2018년 개봉한 <곤지암>은 <기담>을 연출한 정범식 감독의 신작으로 입소문을 타고 한국 공포영화 중 가장 빨리 100만을 돌파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포 영화 <그레이브 인카운터>와 유사한 장면이 많아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0대와 20대 관람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실제 CNN이 선정한 7대 괴기한 장소 중 하나인 곤지암 정신병원을 영화 공간의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신인 배우며 실제 이름을 역할명으로 사용했다. 체험 장면 역시 배우들이 대부분 직접 촬영했다. 개봉 이후 영화 속 이스터 에그(숨겨진 메시지)를 둘러싼 각종 해석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정범식 감독은 최종 이스터 에그로 특정 장면의 사운드를 거꾸로 돌리면, 자신이 남긴 멘트를 들을 수 있다고 인터뷰했다. 공포체험 콘텐츠를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이 체험 지원자들과 함께 곤지암으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돈 욕심에 눈 먼 인터넷 방송 진행자, 하준

‘하준’(위하준)은 공포체험 콘텐츠를 전문으로 하는 유튜브 채널 ‘호러 타임즈’를 진행한다. 실시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곤지암 정신병원 탐험을 기획하고, 함께 체험할 지원자들을 모집한다. 총 7명의 멤버들은 곤지암 근처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생방송 진행을 위해 하준은 캠프에 남고 나머지 멤버들은 카메라와 장비를 챙기고 곤지암에 들어간다. 하준은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체험 지원가들 몰래 호러 타임즈 메인 MC인 ‘승욱’(이승욱), 촬영감독인 ‘성훈’(박성훈)과 가짜로 상황 설정을 꾸민다. 하지만 상황 설정을 넘어 예상치도 못한 공포스러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멤버들이 하나 둘 피해를 입는다. 하준은 멤버들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방송을 끝내지 않고 더 많은 광고비를 벌기 위해 직접 곤지암에 들어간다.

 

모든 이미지 출처 ‘IMDB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