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Via ‘National Gallery

독일인 한스 홀바인은 역시 화가이자 이름이 같았던 아버지에게 미술을 배웠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부였던 바젤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런던을 방문해 초상화가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바젤로 돌아온 지 몇 년 뒤 런던을 재방문해 헨리 8세의 궁정화가를 역임하며 이름을 날렸다. 이후 홀바인은 페스트로 사망할 때까지 화가로서 계속 활동하며 영국을 떠나지 않는다.

 

홀바인의 작품들

‘대사들’ Via ‘Wikipedia

‘대사들’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왼쪽에 1533년 영국에 파견되었던 프랑스 외교관 장 드 당트빌의 모습과 오른쪽에 프랑스 라보르의 주교 조르주 드 셀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장 드 당트빌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홀바인에게 의뢰하여 그린 작품이다. 그는 헨리8세의 이혼을 막고 잉글랜드가 카톨릭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 그림에는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바닥을 보면 이상한 모양의 사선으로 된 표식이 있는데, 그림 측면으로 가서 보면 해골의 모습이 보인다. 일명 ‘왜곡된 해골’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16세기 유럽에서는 광학의 발달로 인해 이처럼 초상화에 왜곡된 부분을 넣어 감상하는 데 흥미를 더 하는게 유행이었다.

헨리8세 Via ‘Larger Size Paintings
헨리 8세 Via ‘서정욱 아트 갤러리

한스 홀바인은 헨리8세의 초상화를 여러 개 그렸는데, 그림 속 왕의 모습은 대부분 원래의 체격보다 과장된 옷을 입고 웃지 않는 얼굴로 근엄하게 서서 왕의 권위를 더했다. 마치 현대의 ‘파워 수트’처럼 어깨가 잔뜩 부푼 소매와 장식이 화려한 옷을 입었다. 홀바인의 그림에 매료된 헨리 8세는 그를 궁정화가로 지정하여 곁에 두고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헨리 8세는 네 번째 왕비를 맞이하기 위해, 왕비 후보로 염두에 둔 덴마크의 왕녀와 독일 공작 클레베스의 딸에게 홀바인을 보내 그로 하여금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다. 그림을 본 헨리 8세는 두 사람 중 클레베스의 딸 앤에게 반하여 결혼을 결심했으나, 반대로 앤의 실물을 보고 크게 화를 내게 된다. 홀바인은 그 이후로 궁정화가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독일 공작 클레베스의 딸 앤 Via ‘The Guardian
헨리8세의 아들 에드워드6세 Via ‘Wikipedia
에라스무스 Via ‘Luminarium
조지 콘월 경 Via ‘The Art Stack
니콜라스 크라처 Via ‘Wikipedia

한스 홀바인이 초상화뿐만 아니라 책의 표지와 삽화에 쓸 목판화도 많이 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목판화 작품 중 유명한 것이 ‘죽음의 춤(Dance of Death)’인데, 홀바인은 도안만 맡았고, 조각은 다른 화가들이 담당했다.

수도승 Via ‘Public Domain Review
자린고비 Via ‘Public Domain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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