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린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존 오트만은 <보헤미안 랩소디>(2018)로 편집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 기록을 살펴보면 편집상뿐만 아니라, <유주얼 서스펙트>(1995)와 <수퍼맨 리턴즈>(2006)로 새턴 어워즈에서 두 번이나 최우수 음악상을 받았다. 존 오트만은 편집과 음악을 동시에 소화하는 영화계의 대표적인 멀티맨이다.

존 오트만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는 동시에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멀티맨이 존재한다. 한 번에 한 가지만 해도 벅찰 것 같은데 어떻게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해내는 걸까. 그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영화 안에서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영화계의 멀티맨으로 불리는, 동시에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이들의 대표작을 살펴보자.

 

연출부터 연기·촬영·편집까지 해내는 멀티맨,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

마틴 스콜세지(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영화 <사일런스>(2016)에 배우로 참여한 츠카모토 신야(제일 왼쪽). 출처 – imdb 

연기와 연출을 겸하는 이들은 꽤 많다. 그러나 츠카모토 신야처럼 연기와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 촬영, 편집까지 함께 해내는 이는 드물다. 츠카모토 신야는 데뷔작부터 가장 최근 작품인 <킬링>(2018)까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연출부터 각본, 촬영, 편집, 연기를 겸했고, 몇몇 작품에서는 미술까지 담당했다. 이런 그의 작업스타일은 장편 데뷔작 <철남>(1989)에서부터 시작됐다.

남자(타구치 토모로오)는 자신의 몸이 점점 철로 변해가는 걸 느낀다. 남자의 애인인 여자(후지와라 케이)는 남자에게 늘 함께하자고 하지만, 철로 변해가는 남자를 보고 놀란다.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변해가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과거에 여자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저지른 사고를 떠올린다.

<철남> 트레일러

<철남>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츠카모토 신야의 상상력으로 예산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품이다. <철남>은 어떤 남자가 육상선수의 사진으로 채워진 작업실에서 빨라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신의 다리에 철을 삽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철남> 속 인물들의 욕망은 철을 통해 극대화된다. 츠카모토 신야는 <철남>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고 몇 년 뒤에 <철남2>(1992)까지 발표했다. 철을 통해 자신의 영화적 욕망을 풀어낸 츠카모토 신야는 ‘철남’, 그 자체가 아닐까.

 

연출부터 촬영·편집·음악까지 해내는 멀티맨,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엘 마리아치>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로버트 로드리게즈(왼쪽)와 쿠엔틴 타란티노(오른쪽). 출처 - imdb

작년에 개봉한 <알리타:배틀 엔젤>(2018)의 제작비는 1억 5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알리타:배틀 엔젤>의 감독은 로버트 로드리게즈인데, 그의 데뷔작 <엘 마리아치>의 제작비는 7천 달러다(7천’만’ 달러가 아니다). 적은 예산으로 연출, 각본, 촬영, 편집을 혼자 해내던 로버트 로드리게즈 입장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 스텝들과 분업 하에 연출에만 집중하는 <알리타:배틀 엔젤>의 촬영 현장이 어색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데뷔작 <엘 마리아치>의 배경은 멕시코로, ‘마리아치’는 멕시코 악사를 뜻한다. ‘엘 마리아치’(카를로스 가야르도)는 악사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마을로 찾아온다. 마침 그때 폭력조직의 보스 ‘모코’(피터 마쿠아트)에게 배반당한 ‘아주르’(레이놀 마티네즈)가 복수를 위해 마을을 찾는다. 엘 마리아치와 아주르는 똑같이 검은 옷에 기타 케이스를 들고 다니고, 모코의 부하들은 엘 마리아치를 아주르로 착각하고 쫓는다.

<엘 마리아치> 트레일러

<엘 마리아치>는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임상시험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직접 연출부터 각본, 촬영, 편집을 맡은 작품이다. 제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제작비의 몇백 배에 달하는 금액을 벌어들였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이후에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 따라 촬영, 편집 작업을 병행했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2003), <씬 시티>(2005) 등 몇몇 작품에서는 음악까지 담당한다. <알리타:배틀 엔젤>은 거대한 예산에 비해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는데,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필요한 건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멀티맨 성향을 최대한 살리는 게 아닐까.

 

의상부터 미술과 편집까지 해내는 멀티맨, 장숙평의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가운데)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장숙평(왼쪽). 출처 - imdb

왕가위에 대해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는데, 바로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 의상, 미술, 편집을 담당하는 장숙평이다. 장숙평은 홍콩금장상영화제에서 <화영연화>(2000)와 <일대종사>(2013)로 편집상, 미술상, 의상 디자인상까지 세 개 부문 동시 수상을 두 번이나 이뤄냈다. 그가 의상, 미술, 편집으로 참여한 작품 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작품은 <화양연화>다.

상하이의 한 아파트에 동시에 이사 온 신문사 편집기자 ‘차우’(양조위)와 무역회사 비서 ‘첸’(장만옥). 두 사람의 배우자는 집을 비울 때가 많고, 차우와 첸은 점점 더 자주 마주친다. 둘은 각자의 배우자가 자신들 몰래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화양연화> 트레일러

<아비정전>(1990)에서 ‘아비’(장국영)의 러닝셔츠, <화양연화>에서 첸(장만옥)의 치파오는 인물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의상이다. <화영연화> 속 차우와 첸이 만나던 공간인 호텔 2046호의 이야기는 몇 년 뒤에 제작된 영화 <2046>(2004)으로 이어진다. 장숙평의 손길이 담긴 의상, 미술, 편집은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이 하나의 영화 안에 스며든다. 장숙평에게 지금 의상, 미술, 편집 중 무슨 작업을 하는지 묻는 건 무의미할 거다. 그는 그저 영화를 만들 뿐이라고 대답할 테니까.

 

음악과 편집을 해내는 멀티맨, 존 오트만의 <보헤미안 랩소디>

제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을 받은 존 오트만. 출처 - Washingtonpost

작년에 국내에 개봉한 외국영화 중 최고의 화제작은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개봉한 지 석 달 만에 990만 명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고, 퀸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는 라미 말렉을 연기한 프레디 머큐리겠지만, 편집과 음악을 함께 담당한 존 오트만의 존재감도 그에 못지않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설적인 밴드 ‘퀸’에 대해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풀어낸 전기영화다. 뮤지션을 꿈꾸는 잔지바르 출신의 이민자 ‘파록 버사라’(라미 말렉)는 평소 관심 있던 밴드의 보컬이 탈퇴하자 그 자리에 합류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로 바꾸고, 멤버들과 함께 밴드 이름을 ‘퀸’으로 바꾸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 데뷔의 유혹 앞에서 멤버들과 갈등한다. 결국 프레디 머큐리는 솔로 데뷔를 선택하지만, 점점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

<보헤미안 랩소디> 트레일러

존 오트만은 <유주얼 서스펙트>(1995), <엑스맨2>(2003), <수퍼맨 리턴즈>(2006),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 등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작품 대부분에서 음악과 편집을 담당했다. 반전이 돋보이는 스릴러부터 히어로물까지, 브라이언 싱어의 작품 속 극적인 순간들은 존 오트만의 음악과 편집이 있기에 가능했다. 영화에서 음악과 편집은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가 관건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관객들에게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는,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면을 사려 깊게 배치한 존 오트만 덕분이 아닐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