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마리오> 느낌으로 제작된 MoMA 로고

나이언틱 랩스(Niantic Labs)가 <포켓몬 고(Pokémon GO)>의 한국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이용자 수 700만 명을 돌파했다. 게임의 기반이 되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 이하 AR)’은 현시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그러나 사용자의 실제 위치와 시간이라는 현실, 손을 움직이거나 걸어서 이동하는 등의 실제 행동을,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라는 가상의 세계관과 결합한 상상력과 시각적 효과는 새로운 것이라 할 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포켓몬 고>를 통해 사람들이 포켓몬 수집에 열중할수록 카메라의 AR모드를 끄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선 AR모드를 켜면 휴대폰의 배터리 소모가 크고, 기울기, 반응 속도, 정확성 같은 문제 때문에 애니메이션 모드에서보다 포켓몬들을 잡기가 어렵다. 그러니 이용자가 포켓몬을 잡을 때는 기존 게임을 하듯 가상의 풀밭에서 ‘몬스터 볼’을 던진다. AR로 만들어진 게임 세계의 원리를 습득하고 나면, 이제 플레이어는 AR의 시각적 효과가 없어도 게임의 원칙에 순응하여 행동한다. 가상의 포켓몬 지도를 따라 실제 거리를 걷고, 모인 사람들과 실제 대화를 나누며 가상의 생물을 잡는 것이다. 이용자는 이제 직접 게임의 일부가 되어, 특정하게 구성한 세계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며 함께 호흡한다.

<Pokémon GO> 플레이 중 AR 모드(좌)와 AR 모드를 끈 화면(우)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은 이렇게 사용자의 문화적, 지리적, 심리적 요소와 행동 양식 따위를 고려, 제품 혹은 서비스와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디자인 방법론이다. 여기서 특히 중심이 되는 것이 인간의 경험과 행동 전반인 만큼 그 영역은 당연히 무척 광범위하다. 그중에서도 게임 분야에서 특히 인터랙션 디자인의 힘이 드러난다. 게임의 유희적 속성은 이용자가 게임의 세계와 규칙에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게임은 사용자에게 일정하게 만들어진 규칙 속에서 행동이나 목적을 지시, 제약하거나 확장한다. TV, 컴퓨터, 게임 콘솔, 핸드폰 같은 기구를 매개로 하는 게임은 동시대 기술의 영향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포켓몬 고>의 사례에서는 AR을 인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시각 디자인은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사용자가 게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창구이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핵심 요소로 사용할 것인지, 부차적인 요소로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터랙션 디자인의 영역이다.

인터랙션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표적인 인물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의 건축 디자인 분과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다. 2012년 그는 파격적인 행보로 격렬한 토론을 끌어냈다. 14점의 비디오 게임을 MoMA 에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리스트에는 <심시티 2000(SimCity 2000)>(1994),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1978), <팩맨(Pac-Man)>(1980), <테트리스(Tetris)>(1984), <괴혼: 굴려라 왕자님(Katamari Damacy)>(2004) 같은 유명하고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이 포함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에서 비디오 게임을 소장한다는 데에 즉각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는 2012년 스미스소니언 미술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의 <비디오 게임의 예술(The Art of Video Games)> 전 오픈 때보다도 격렬한 것이었다.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의 전시는 주로 게임의 시각적 효과에 무게를 둔 아카이빙 성격에 가까웠고, MoMA와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괴혼>의 플레이 장면. 작은 공을 굴리면서 지구의 물건들을 붙여 거대하게 만들어 가는 게임이다. © 2017 NAMCO BANDAI Games Inc.

조나단 존스(Jonathan Jones)는 ‘유감스럽지만 MoMA,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아닙니다(Sorry MoMA, video games are not art)’라는 <가디언(The Guardian)> 지 칼럼에서 “피카소와 반 고흐 사이에 팩맨과 테트리스를 전시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종언을 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생에 대한 개인의 내적 상상력과 성찰을 통한 답변으로, 대중을 위해 고안한 전자 게임에서는 개인이 의도한 대로 움직일 뿐 개인성을 표출할 수 없다.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은 체스 챔피언이지 예술가가 아니다”는 말로 끝맺은 이 글에 대해, 파올라 안토넬리는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영역에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지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맞섰다. 아직도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이 지나치게 흐려져 오해를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또 존 마에다(John Maeda)는 매거진 <와이어드(WIRED)> 기고를 통해 게임이 조나단 존스가 말하는 예술의 영역에 진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게임이 단순한 기계적 메커니즘과 달리 이야기의 요소가 있으며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경우 개인의 창조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뛰어난 게임일수록 그 속에서 플레이어는 충분히 개인적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질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도 응답했다.

<패시지>의 플레이 화면. 우리나라에는 <여정>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졌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플레이 시간 5분 이내의 인디 게임이다. © The Museum of Modern Art 

그렇다면 파올라 안토넬리와 MoMA는 어떤 기준으로 비디오 게임 소장품을 선별했을까? 이들이 중점을 둔 요소는 행동(Behavior), 미학(Aesthetics), 공간(Space), 시간(Time) 총 네 가지다. 행동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만든 요소들이 플레이어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고 어떤 효과와 경험을 가져오는지를 고려하는 기준이다. 미학은 물론 시각적 디자인을 고려하는 기준으로, 당대의 최신 기술 적용도에 따라 게임의 아이덴티티와 형식미는 다양해졌다. 미술관인 만큼 시각 디자인의 우수성을 물론 고려하여 선택하였으므로 게임 저마다의 그래픽에서 시각적 개성이 두드러졌다. 공간은 코드(code)로 만들어진 가상의 게임 공간을 뜻한다. 비디오 게임은 공간의 논리와 중력 등을 지정하면서 현실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이를 위한 기술적 영향 또한 잘 결합하여 드러나야 한다. 시간은 경험 시간의 장단과 선형적이거나 동시적인 시간 진행의 형식, 게임과 현실의 시차 등을 고려한 기준이다. 시간 역시 플레이어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네 개의 기준에서 물론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행동의 측면이지만, 여기에 무게를 두면서 다른 세 가지 기준을 고려한 결과는 게임 마니아들의 ‘명작’ 선정 기준과는 다른 리스트가 되었다. 이렇게 가장 먼저 소장한 게임 14점은 2013년 <어플라이드 디자인(Applied Design)> 전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MoMA <Applied Design> 전의 <팩맨> 디스플레이 풍경 © Caroline Voagen Nelson, www.timeout.com

이들 게임이 화이트 큐브(White Cube)의 벽면에 설치된 모습은 우리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할 때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다소 무미건조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작은 스크린으로 조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기와 함께 전시되었다. 이렇게 게임은 당대의 기술력을 포함, 인간의 전반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제작한 디자인의 기록으로 미술관의 ‘승인’을 얻었다. 재미있는 것은, 파올라 안토넬리의 고백이다. 많은 비평가가 게임의 미술관 진입을 두고 왈가왈부했지만, 정작 게임을 즐기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거나 오히려 기꺼워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대중들이 고급한 예술과 저급한 예술의 구분에 무심한 결과일까? 아니면 이미 많은 이들이 의식적이건 아니건 간에 이 게임들을 훌륭한 디자인의 결과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뜻일까?

<어나더 월드>의 한 장면 © 2017 Éric Chahi

<포켓몬 고>로 돌아가 보자. 게임의 경험은 플레이어 개인의 행동과 시각을 바꾼다. 그가 일상적으로 걷던 길가의 풍경은, <포켓몬 고>를 시작한 후에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시각으로 비칠 지 모른다. 카메라 화면에서 AR 모드를 제거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세계, 관계와의 주고받음이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얻고, 새로운 눈을 얻는다. 설령 그것이 제한된 세계라고 할지라도. 나이언틱 랩스의 인터랙션 비주얼 디자인 디렉터 데니스 황(Dennis Hwang, 黃正穆)이 지난 11월 방한했을 때 한 이야기.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을 밖으로 나가게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과제이자 목표이다.” 다시 한번 게임의 패러다임이 움직이고 있다. 문을 열고 나선 사람들을, 게임은 어떤 종착지로 안내할까.

 

* 2017년 2월 MoMA 소장 비디오 게임 컬렉션

<팩맨(Pac-Man)>(1980)
<테트리스(Tetris)>(1984)
<어나더 월드(Another World)>(1991)
<미스트(Myst)>(1993)
<심시티 2000(SimCity 2000)>(1994)
<비브리본(vib-ribbon)>(1999)
<심즈(The Sims)>(2000)
<괴혼: 굴려라 왕자님(Katamari Damacy)>(2004)
<이브 온라인(EVE Online)>(2003)
<드워프 포트리스(Dwarf Fortress)>(2006)
<포탈(Portal)>(2007)
<플로우(flOw)>(2006)
<패시지(Passage)>(2008)
<카나발트(Canabalt)>(2009)
<야스 리벤지(Yar’s revenge)>(1982)
<애스트로이즈(Asteroids)>(1979)
<마그나복스 오디세이(Magnavox Odyssey)>(1972)
<마인크래프트(Minecraft)>(2009년 알파 버전과 2011년 정식 버전)
<퐁(Pong)>(1972)
<스트리트 파이터 2(Street Fighter 2)>(1991, 2003년 버전)

 

* MoMA의 남은 비디오 게임 위시리스트 목록

<스페이스워!(Spacewar!)>(1962)
<스네이크(Snake)>(1976)
<조크(Zork)>(1980)
<동키 콩(Donkey Kong)>(1981)
<M.U.L.E.>(1983)
<코어 워(Core War)>(1984)
<마블 매드니스(Marble Madness)>(1984)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Super Mario Bros.)>(1985)
<젤다의 전설(The Legend of Zelda)>(1986)
<넷핵(NetHack)>(1987)
<크로노 트리거(Chrono Trigger)>(1995)
<슈퍼 마리오 64(Super Mario 64)>(1996)
<그림 판당고(Grim Fandango)>(1998)
<애니멀 크로싱(Animal Crossing)>(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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