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 장르 중 하나는 바로 노르딕 누아르(Nordic Noir)다. 노르딕 누아르는 북유럽(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 만들어진 또는 이를 배경으로 한 경찰 드라마를 일컬으며, 스칸디나비아 누아르, 줄여서 스칸디 누아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제작, 방영된 <The Fall>, <더 미씽>, <마르첼라>, <브로드처치> 등 또한 작품 성격에 따라 노르딕 누아르로 분류하는 등 노르딕 누아르의 범위는 상당히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고 음울하며, 연쇄살인범의 내면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긴장감, 몰입도를 높인다. 주인공은 대체로 염세주의적이다. 이는 미국 드라마에서 형사와 연쇄살인범의 대결, 갈등 구도를 중심으로 다루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노르딕 누아르의 흥행은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The Killing>, <The Bridge> 등의 북유럽 드라마가 잇따라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르딕 누아르가 유럽 경찰 드라마의 재평가와 흥행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 오늘날 노르딕 누아르의 색깔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네 편의 드라마를 소개해볼까 한다.

 

<월랜더>

<월랜더(Wallander)>는 노르딕 누아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이전부터 미국과 영국, 유럽 등지에서 큰 사랑을 받은 노르딕 누아르 장르 대표작이다. 전 세계적으로 5천만부 이상 팔린 스웨덴의 인기 소설가 헤닝 맨켈의 베스트셀러 시리즈가 원작이며, 2008년 영국 BBC에서 제작, 방영되었다. 스웨덴 남부 한적하고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 중년의 형사 ‘커트 월랜더’(케네스 브래너)의 사생활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만큼 엉망이지만 그의 수사 실력만큼은 노련하고 냉철하다. 4개 시즌에 걸쳐 각기 다른 살인 사건과 녹록지 않은 수사극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중독성을 자랑하고, 이는 드라마가 2012년 시즌3로 종영한 이래 4년 만에 시즌4가 다시 제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월랜더> 예고편 

<월랜더>가 큰 사랑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당시 많은 미국 경찰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선명한 영상미 덕분이었다. 샛노란 꽃밭의 풍경과 이질적인 중년의 형사 그리고 정적인 풍광과 대조적인 살인 사건이 주는 시각적 카타르시스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2016년 시즌4로 종영된 이후에도 넷플릭스는 청년 경찰 ‘월랜더’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수사물 시리즈 제작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살인 없는 땅>

노르딕 누아르는 대체로 하나의 사건과 그로부터 파생된 수 개의 실마리를 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 드라마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전개가 매우 느리다. 하지만 모든 노르딕 누아르가 그렇지는 않다. 지난 3월, 넷플릭스를 통해 두 번째 시즌이 공개된 <살인 없는 땅(Bordertown)>이 대표적이다. 2016년 핀란드에서 방영된 <살인 없는 땅>은 핀란드 TV 부문 시상식 Golden Venla Awards에서 2017 드라마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었고, 핀란드에서는 세 번째 시즌 방영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작품은 에피소드 별로 각기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도시를 떠나 가족들과 한적한 휴양지에 정착한 헬싱키 최고의 수사관 ‘카리’(빌레 비르타넨)가 출근 첫 날 뛰어난 추리력을 바탕으로 기이한 사건을 쫓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헬싱키 최고의 수사관이 어째서 조용한 휴양지로 왔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가운데, 카리의 행보를 견제하는 정치권의 공작도 이어진다.

<살인 없는 땅> 시즌1 예고편

<살인 없는 땅> 시즌2는 최근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 중 하나다. 시즌1이 처음 방영되었을 당시, 핀란드 인구 5명 중 1명이 이를 시청했을 정도로 자국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 드라마가 핀란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데는, 핀란드의 자연 풍광을 고스란히 담은 아름다운 영상미도 한몫했지만, 숨통을 조이는 작품의 긴장감과 스릴이 큰 몫을 했다.

 

<데드 윈드>

핀란드에서 방영 증인 또다른 노르딕 누아르 히트작 <데드 윈드(Deadwind)>는 정통 노르딕 누아르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독창적인 색깔 한두 스푼 가미해 큰 사랑을 받았다. 2011년 미국에서 방영된 인기 범죄/수사물 시리즈 <더 킬링>의 원작이 된 덴마크 <더 킬링>과 비교되며, 핀란드에서 방영과 동시에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현재 2020년 방영을 목표로 시즌2 각본 집필 중으로 알려져 있다.

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고 두 딸을 홀로 키우게 된 싱글맘이자 노련한 형사 ‘소피아’(피흘라 비탈라). 땅에 파묻힌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새 파트너와 함께 사건 수사를 시작하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만다. <데드 윈드>는 이렇게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데드 윈드> 예고편

노르딕 누아르의 다른 특징은 살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데 있다. 이는 정치인의 스캔들일 수도 있고, 때로는 누군가 감추고 싶었던 치명적인 비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간과한 가슴 아픈 진실일 수도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가져오며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Quicksand)>는 지난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노르딕 누아르 최신작이다. 2016년 올해의 노르딕 범죄 소설로 뽑힌 말린 페르손 지오리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넷플릭스의 첫 스웨덴 오리지널 시리즈다. 스웨덴의 엘리트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로 18세 소녀 ‘마야’(한나 아르덴)가 체포된 후, 그의 시선과 기억을 통해 이야기가 그려진다. 사건 당시의 기억을 잃은 마야가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과 그가 살인 및 살인미수 종범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사건 이면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의 각본은. 노르딕 누아르를 전 세계에 알린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oo)> 3부작 및 스웨덴 드라마 <The Brige>의 카밀라 알겐이 맡았다.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 예고편

<퀵샌드: 나의 다정한 마야>는 다른 여타 노르딕 누아르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 작품에는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도, 그를 쫓는 형사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트라우마를 입은 채 상처 입은 소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6부작에 걸쳐 사건의 숨겨진 이면을 다루는 데 있어 노르딕 누아르 특유의 농밀함은 잃지 않았다.

 

* <월랜더> 전 시즌은 POOQ에서, 나머지 세 작품의 전 시즌은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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