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일을 사랑하는 이들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자기만의 이유와 목표를 가지고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퀸 중의 퀸이 되기 위해’ 출전한다.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서로를 칭찬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꿈을 말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파이널 무대를 앞두고 심사위원 앞에 선 참가자 중 나오미 스몰스(Naomi Samlls)가 이렇게 말하던 순간이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 내일이 기다려지는 모든 이유가 바로 드래그입니다.”

울먹이면서 말하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우아하고 때로는 천박한 그들의 퍼포먼스는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울뿐더러, 종종 보이는 속 시원한 모멘트는 가려운 곳을 정확히 조준해 긁어 주는 명쾌함이 있다.

나오미 스몰스, 출처 – 나오미 스몰스 인스타그램 

 

개성 강한 참가자들이 가득했던 시즌 8

드래그는 더 이상 저평가받고 소수의 사람만이 즐기는 장르가 아니니 이들의 우아하고 솔직한 드라마에 빠져보자. 덧붙여 이 글에서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시즌 8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의 매력을 짚어본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 트레일러

‘드래그(Drag)’는 ‘자신의 성과 다른 성의 복장이나 행동을 하는 문화나 사람’이라고 짧게 설명하기엔 다양한 면을 가진 입체 도형 같은 장르다. 드래그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 그 사람을 연기하기도 한다. 드래그라는 장르를 깊게 들여다보면 쉽게 차별받는 그들의 실제 삶이 담겨있기도 하다. 드래그 아티스트를 늘상 유쾌하고 화려하다고만 생각했다면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을 보기를 추천한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 참가자들, 출처 – ODYSSEY 

물론 이 프로그램 하나로 그들의 삶의 면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어렵지만 그들의 부단한 노력과 그들의 가족 이야기, 더 나아가 그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관찰자가 되어 그들의 도전의 순간을 바라보는 것이 남의 집 창문을 엿보는 것처럼 찜찜하기도 하지만 왠지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혹시나 품고 있었을 어떤 편견이 물러지거나 깨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꼭 편견의 문제가 아니어도 이 프로그램에는 다양한 감정의 요소가 녹아있다. 특별히 추천하는 시즌은 여덟 번째 시즌.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김치, 출처 – 김치 인스타그램 

“이토록 참가자들의 개성이 확실한 시즌도 없었어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에 긴 시간 심사위원으로 자리한 미셸 비세이지(Michelle Visage)가 시즌 8에서 심사를 앞두고 한 말이다. 참가자들의 개성이 두드러져 누구 하나 집에 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메인 심사위원이자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루폴은 참가자들의 퍼포먼스 수준이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엄격하게 두 사람을 집에 돌려보냈다. 매주 한 명의 탈락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의 규정상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 이런 차가운 심장의 심사위원들이 심사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시즌 8. 이유가 뭘까?

왼쪽부터 루폴과 밥 더 드래그 퀸, 출처 – 밥 더 드랙퀸 인스타그램 

이미 LA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닮아 유명했던 드래그 퀸 데릭 베리(Derrick Barry), 모델처럼 쭉 뻗은 각선미에 뛰어난 패션 센스를 가진 나오미 스몰스(Naomi Smalls), 큰 키에 정치적인 농담 혹은 말솜씨만으로도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밥 더 드랙퀸(Bob The Drag Queen), 매회 창의적인 코스튬과 메이크업으로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 김치(Kim Chi). 이 밖에도 매주 놀라운 코스튬과 위트를 뽐낸 출연자들은 시즌 8을 빛나게 하기 충분했다. 어떤 캐릭터도 겹치지 않았고 모두 뛰어났다. 심사가 힘들 수밖에. 덧붙여 시즌 8 파이널 무대에 선 드래그 퀸 김치는 한복을 입고 한국어 노래로 퍼포먼스를 했다.

김치의 시즌 8 파이널 무대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모멘트

매 회 참가자들은 주어진 미션을 위해 직접 퍼포먼스 의상을 만들고 의상에 맞춰 메이크업을 준비한다. 미션에 따라 춤 연습을 해야 했고 대본을 외우는 수고도 해야 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소화해야 하는 퀸들은 할 말을 참지 않았다. “너는 드래그가 뭔지 이해할 필요가 있어, 화장법부터 잘못됐다는 걸 이해는 하니?”라거나 “너는 지독히도 춤을 못 추잖아, 너 때문에 피해 보기 싫어” “넌 예쁜데 뇌는 없는 것 같아”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출처 – Manhattan digest Credit to: EW

이들은 마냥 착한 주인공처럼 고구마 삼킨 듯한 답답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숨김없이 말해 곧 줄이 끊어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들고, 이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의 또 다른 묘미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물고 뜯는 장면만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자기가 가진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치에게 동료들은 그가 가진 창의력이나 코스튬을 만드는 실력, 큰 키 등 그가 가진 좋은 점들에 대해 칭찬 또한 아낌이 없다. “너 처음 보고 너무 귀여워서 꼬셔볼까 생각했어”라는 예상치 못한 칭찬이 나오기도 한다.

 

아름다운 꿈 이야기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에서 볼 것은 두꺼운 속눈썹뿐 아니라 그들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각자의 드라마다. 스타킹을 신고 몸에 패드를 붙여 여자의 몸처럼 굴곡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미션이 끝나고 거울 앞에서 가면 같은 화장을 지우면서 그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눈다. 치치 드 베인(Chi Chi DeVayne)은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탓에 예쁘고 좋은 의상이 없는 것에 대해, 나오미 스몰스(Naomi Smalls)는 자기를 입양한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소지 토르(Thorgy Thor)는 드래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을 공유한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의 인상적인 순간 10, 출처 – 유튜브 ‘MsMojo’

그들이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할 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공연을 할 때 못지않게 반짝이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소수’ 집단이 받는 차별 대우와 사람들의 시선을 이미 알고, 경험했기에 유독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싶어 했다. 사회적인 문제를 언급하기도 하고, 자기의 일뿐 아니라 사람들 전체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원대한 꿈 말이다.

이전에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선발하는 국내 프로그램을 보며 ‘국민 프로듀서’가 되어 느꼈던 감정을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시즌 8을 보면서 다시 느꼈다. 참가자들의 성장이 느껴지는 순간 필자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그들이 눈물 흘릴 땐 코끝이 시큰했다.
진행자 루폴은 매 회 같은 엔딩 멘트를 한다. 그 멘트로 글을 마치려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다 같이 아멘 할까요?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공식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드래그 퀸 김치(Photo: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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