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e Conzo Via ‘Dailymail

종종 대중은 한국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저항 음악으로서의 힙합’을 의무처럼 요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힙합의 시작과 뿌리는 파티 음악이었다.”라고 말하지만, 탄생 이래 힙합이 언제나 정치적인 음악이었던 것은 맞다.

흑인 민권운동이 결실을 보았던 1960년대의 중심에는 소울 음악이 있었고,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힙합 음악이 그 자릴 대신했다. 그리고 이 시기의 힙합을 논할 때면 매우 중요하게 거론되는 서브 장르가 있다. 컨셔스 랩(Conscious Rap, 혹은 Conscious Hip Hop)이다. 보통 의식 있는 주제를 다룬 힙합 음악을 가리킨다. 힙합이 음악과 산업, 양쪽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인 1990년대는 바로 이 컨셔스 랩의 시대이기도 했다.

힙합이 클럽과 블랙커뮤니티를 넘어 미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음악이 된 데에는 컨셔스 힙합 아티스트들의 역할이 컸다. 최초 랩을 하는 것의 즐거움과 파티장의 열기를 전하는 데 집중하던 래퍼들은 곧 정글과도 같은 게토의 거리와 인종차별의 현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전달방식과 수위 등에 따라 크게 갱스터 랩과 컨셔스 랩이란 갈래로 나뉘고 확장되어 당대 힙합의 핵심 콘텐츠이자 정신으로 대변되었다.

흑인 게토에서 춤 추는 어린이들 © Eddy Kenzo Via Pozděk U Pozděk 유튜브 영상

이 같은 미국 힙합의 흐름은 1990년대 말 즈음,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힙합이 부각되기 시작할 때 큰 영향을 끼쳤다. 음악 팬들과 미디어가 ‘사회, 정치 비판과 저항’을 장르의 특성으로 정의, 혹은 받아들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특히 컨셔스 랩을 둘러싼 담론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장르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한 지점이 더러 엿보인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면’ 컨셔스 랩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반만 맞는 얘기다.

힙합 역사 속의 많은 컨셔스 랩이 사회와 정치를 비판했지만, 방점은 ‘비판’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에 찍힌다. 즉, 주제의 범위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 및 수준이 컨셔스 랩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란 소리다. 실제로 많은 컨셔스 래퍼들의 태도는 급진적이기보다 관조하는 것, 비판하기보다 계몽하려는 쪽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컨셔스 랩이 다루는 주제의 폭은 상당히 넓었다. 비단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블랙커뮤니티의 문화, 종교, 아프리카 중심주의 또한 중요한 주제였다. 프로덕션적으로는 주로 재즈 랩과 교집합을 이룬다. 컨셔스 랩의 선구자 집단으로 유명한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s)의 음악에서 이상의 특징을 전부 찾아볼 수 있다.

네이티브 텅 Via ‘Discog

1988년, 뉴욕에 기반을 두고 결성된 네이티브 텅은 정글 브라더스(Jungle Brothers), 데 라 소울(De La Soul),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블랙 쉽(Black Sheep), 모니 러브(Monie Love), 퀸 라티파(Queen Latifah) 등. 지금 들어도 쟁쟁한 이름의 아티스트들로 구성됐던 크루다. 이들이 보여준 가사와 프로덕션에서의 방향성은 컨셔스 랩의 지표가 되었다. 문서화된 규칙이나 서로 간의 강요는 없었지만, 멤버들 사이엔 랩을 할 때 공유하는 세계관과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진 건 폭력, 사회적 약자혐오가 담긴 가사와 욕설을 지양하는 것이다.

네이티브 텅에 소속했던 퀸 라티파 Via ‘Discog

일례로 네이티브 텅에 속한 래퍼들은 거리의 은어들은 사용하되 각각 남성 흑인과 여성 흑인을 비하하는 ‘nigga’, ‘bitch’ 같은 비속어 사용을 금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맥락상 꼭 필요한 지점이 아니라면, ‘fuck’처럼 흔한 욕설조차 사용을 자제했다. 특히, 크루에 두 명의 여성 멤버(모니 러브, 퀸 라티파)가 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두 아티스트는 음악과 행보를 통해 ‘bitch’란 단어의 사용을 비롯한 흑인여성혐오를 강력히 규탄했으며, 다른 남성 멤버들 역시 서로 연대했다. 그래서 똑같이 사회, 정치적인 주제가 녹아있더라도, 비속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폭력을 미화하는 갱스터 랩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한국 힙합 신에서 컨셔스 래퍼로 자주 언급되는 제리케이

현재 한국 힙합 신에서 아티스트와 팬들이 정의하는 컨셔스 랩은 많은 부분 폴리티컬 랩(Political Rap, 혹은 Political Hip Hop)에 해당한다. 말그대로 정치적인 이슈를 주제 삼는 힙합 음악을 일컫는다. 간혹 현지에서 컨셔스 랩과 폴리티컬 랩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앞서 나열한 특징에서 볼 수 있듯이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장르다. 컨셔스 랩이 주제의 폭은 넓지만, 표현 방식에서 일종의 제약을 거는 식이라면, 폴리티컬 랩은 철저하게 정치적인 주제로 한정하지만, 표현 방식에 제약은 없는 식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이슈를 다뤘다면, 그가 컨셔스 래퍼든, 갱스터 래퍼든 상관없이 폴리티컬 랩에 해당한다. 이 계열의 상징적인 존재라 할만한 이모탈 테크닉부터 갱스터 랩의 아이콘 N.W.A까지를 전부 아우른다.

폴리티컬 랩과 갱스터 랩의 아이콘 N.W.A Via ‘Discog

컨셔스 랩이 ‘90년대 힙합을 논할 때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긴 하지만, 쥐펑크(G-Funk)처럼 장르 자체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네이티브 텅과 그들로부터 영향받은 래퍼들의 음악이 곧 컨셔스 랩이었고, 멤버 각자의 전성기가 지남에 따라 장르의 인기도 사그라졌다. 그러나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컨셔스 랩이란 용어를 더는 입에 올리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 이후에도 명맥만큼은 꾸준히 이어졌다. 다만 예전처럼 앨범 단위의 결과물이나 한 래퍼의 정체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곡 단위를 통해서다. 그 결과, 이전에는 물과 기름처럼 나뉘었던 갱스터 랩과 컨셔스 랩을 한 래퍼의 앨범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점점 래퍼들의 화법이 다양해지고, 컨셔스 랩이 사실상 서브 장르라기보다는 기조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켄트릭 라마 Via ‘Discog

지금 당장 구글에 컨셔스 랩을 검색하면, 2000년대의 베스트 곡들을 뽑아놓은 공식, 비공식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모로 ‘90년대의 컨셔스 랩과는 (특히, 프로덕션과 비속어 사용 면에서)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근간만큼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단순히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다뤘다고 해서 컨셔스 랩은 아니다. 깊은 사유와 통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대 컨셔스 랩 대표곡 Via ‘Undiscovermusic

 

메인 이미지 2016년 그래미어워드 무대에서 컨셔스 랩 대표곡 ‘The Blacker the Berry’를 열창하는 켄트릭 라마, 출처 - ‘Hollyscoop

 

Writer

리드머/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