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재즈 팬들이 책이나 카페 벽면에서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된 그의 사진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퍼져 나간 기록 사진으로, 저명한 재즈 사진가 허먼 레오나드(Herman Leonard)가 1948년 뉴욕에 위치한 재즈 클럽 로열 루스트(Royal Roost)에 출연한 덱스터 고든을 찍은 사진이 손꼽힌다. 당시 그의 사진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을 정도로 그는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동시에 마약 중독자로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유럽으로 피신하듯 이주하여 코펜하겐에서 14년을 살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란 노트패드에 자신의 일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Biting the Apple>(1976)에 수록한 ‘Blue Bossa’

덱스터 고든이 67세를 일기로 1990년 사망했을 당시, 노트패드는 상당 부분 미완성이었다. 특히 그가 마약과 인종차별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던 1950년대 시절은 아예 내용 자체가 없었다. 아내 맥신(Maxine)은 재즈 뮤지션들의 유럽 투어를 주선한 로드 매니저 출신으로, 남편 사망 후 바비 허처슨, 시더 월턴과 같은 재즈 뮤지션의 매니저 일을 다시 시작했고, 체계적으로 재즈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다. 학사 과정에 이어 컬럼비아 대학 재즈 연구센터(The Center for Jazz Studies)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덱스터 고든과 아내 맥신 고든(1976)

그러면서 그는 노트패드에 기록된 단편적인 사실들을 꿰어 맞추기 위해 지미 히스, 소니 롤린스 등 남편의 동료들과 틈틈이 인터뷰와 워크숍을 하면서 사실에 접근했다. 재즈 뮤지션의 자서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즈의 역사적 사료로 기록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고 방대한 리서치를 한 것이다. 맥신의 작업은 남편이 사망한 지 28년이 지난 2018년 11월, 마침내 <Sophisticated Giant: The Life and Legacy of Dexter Gordon> 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맥신 고든과 <Sophisticated Giant> 표지

총 20장으로 구성된 책의 16장 이후에야 ‘맥신’의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두 사람은 늦게 만났다. 이때가 1975년, 덱스터 고든이 50대의 나이에 여전히 유럽에 머물던 시기였고, 맥신은 열성적인 재즈 팬이었던 사회 초년병으로 미국 재즈 뮤지션들의 유럽 투어를 기획하던 로드 매니저였다. 그는 한창 떠오르는 재즈 트럼펫 스타였던 우디 쇼(Woody Shaw)와 함께, 컬럼비아 레코드를 설득하여 고든이 14년의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귀향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후 우디 쇼와 헤어지고 그와 낳은 아들을 키우던 맥신은, 고든과 6개월 동안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고든은 미국으로 돌아온 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1986)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는 영광을 안았고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그래미 연주상을 받았다.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에 재즈 뮤지션으로 출연한 덱스터 고든

덱스터 고든은 키 198cm의 거구였지만, 항상 웃는 낯으로 청중들과 스스럼없이 잡담을 나누는 친근한 성격의 보유자였다. 책 제목처럼 세심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의 그에게는 많은 에피소드가 따라다녔는데, 그 중 루이 암스트롱과의 인연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된 바 있다. 17세였던 1944년, 그는 루이 암스트롱의 밴드에서 최연소 멤버로 인기를 누렸다. 암스트롱을 ‘아빠(pops)’라고 부르는 애제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식 스윙 레퍼토리를 연주하는데 질려서, 암스트롱의 밴드에서 탈퇴하고 젊은 비밥 연주자들과 어울렸다. 암스트롱은 뒤늦게 급료를 올려주겠다고 회유했으나 그는, “아빠,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음악이예요” 라며 뿌리쳤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이후 고든은 1950년대 젊은 시절 내내 마약 소지에 따른 수감 생활과 음악적으로 퇴보하면서 고난의 시절을 보냈다.

고든 스스로 가장 편안하게 연주했다는 <Go!>(1962). 그의 가장 유명한 앨범이다

그는 1961년 블루노트와의 계약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 출반된 세 장의 앨범 <Doin’ Alright>(1961), <Dexter Calling>(1961), <Go>(1962)는 모두 명반으로 꼽힌다. 14년 간의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대대적인 마케팅과 함께 컬럼비아에서 출반한 <Homecoming: Live at the Village Vanguard>(1977) 또한 재기의 신호탄을 쏜 명반으로 여겨진다.

<Sophisticated Giant> 출간 후 인터뷰에 나선 맥신 고든

 

맥신 고든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