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6일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칭따오 올해의 신인상’ 수상자로 호명된 애리(AIRY)는 무대에서 상을 받은 후 눈물을 보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많은 이들의 격려 속에서 숨을 고른 애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전했다.

“힘들었던 일도 있었고 고마운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들 어떻게 음악하고 살고 있나 너무 궁금했어요. (…) 내 가치나 꿈이 평가절하당하거나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계속 함께 용기주면서 하고 싶습니다.”

애리 첫 정규 EP <Seeds>(2018)

2015년 오픈마이크로 활동을 시작해 지난해 첫 EP를 발매한 애리는, 사람들이 정한 경계를 가로질러 자기만의 세계를 단단하고 조심스럽게 설파하는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 속 사이키델릭과 각종 노이즈 사운드, 의미를 한껏 눌러 담은 시적인 가사를 두고, 포크 팬들은 포크 음악이라고 했고, 록 매니아들은 사이키델릭 록이라고 정의했다. 애리의 음악이 “주술적”이라는 사람도, “토속적”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음악을 그저 ‘씨앗(seeds)’이라고 불렀다. (애리 ‘낡은 우편함’ MV, 애리 ‘없어지는 길’ MV)

애리 ‘어젯밤’ MV

겸손 섞인 자전적 표현과 달리 애리의 음악은 분명 될성부른 나무의 씨앗이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와 매체가 2018년 최고의 신인으로 그의 이름을 꼽았고, 그는 작년 그래미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미츠키(Mitski)의 내한 공연에서 오프닝을 맡기도 했다. 무엇보다 애리는 음악만이 아닌 다양한 예술과 사회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예술가다.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AEV(Art’s Eye View) 프로젝트’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애리라는 씨앗이 품고 있는 세계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지? 애리가 평소 어떤 영상과 이미지를 자양분 삼아 자신의 무궁무진한 씨앗을 키워가는지? 2018년 모두가 주목했던 신인 뮤지션 애리. 이제 반대로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만나볼 차례다.

© MINJUNG KIM, 사진 제공 - 애리

 

AIRY say,

"음악 듣는 것보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꿈이나 환상적 요소가 결합한 영화를 접하고 나서부터 영화에 열광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영화에는 무궁무진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가족이 함께하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날 꾼 꿈을 이야기했다. 혼자 가만히 누워 몽롱할 시간을 즐겼던 기억도 많다. 대체로 거실 바닥에 편하게 누워 있는 나를 천장에서 내려보는 시점으로 시작해서 점점 누워 있는 나에게서 멀리 떠난다.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는 시점이 뒤로 잡아 당겨져 천장을 뚫으면 집이 보이고, 동네, 서울, 한국, 아시아, 지구를 지나 태양계, 우주가 보이는 것. 그렇게 나 자신이 작은 점이 되면 모든 게 신비롭게 느껴져 마음이 흥분되면서도 안정적으로 가라앉는다. 잠이 들기 전 몽롱할 때 시야에 걸리는 것을 겹쳐 보이게 하거나, 무작위로 떠오르는 영상을 두서없이 춤을 추게 상상하는 버릇도 여전하다.

화면 속 영상이 없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상상하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 취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정리해본 적이 있다. 그것들은 결국 ‘보는 것’이었고, 하나의 ‘이야기’였으며, 꿈이나 무의식, 착시, 우주, 환상적 요소 등 일상적인 것과 다른 이질적인 요소가 포함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내 취향처럼, 일상과 거리 있는 볼거리로 일상을 이야기하는 환상적인 영상들을 소개한다.

 

1. Edgar Pera ‘Cinesapiens’

에드가 페라 <Cinesapiens> 예고편

수년 전 시간만 나면 한국영상자료원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갔다. 어느 날 입장하는데 3D 안경을 나눠줬다. 장 뤽 고다르, 에드가 페라, 피터 그리너웨이. 세 감독의 옴니버스 작품인 <3X3D>였다. 그중 에드가 페라의 <Cinesapiens>(부분 영상)를 보며 너무 흥분되어서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누아르 형식을 띠는 블랙 코미디에 껌뻑 죽는데, 이 작품이 선사하는 거대하고 진지한 농담에 정통으로 당했다. 재밌어서 못 참겠는 기분.

교주 같은 사람이 나와 관객을 홀리듯 말하는 방식과 내용, 어지럽게 나타나는 또 다른 장면과 화면에 새겨지는 글자를 넘어, 원시인이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좋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이미지를 보는 것에 대한 기원을 찾는 감독의 재치가 귀여웠다. ‘본다’는 행위는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것이자 전복의 도구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다양한 모순을 짚어주는 이 영상 덕분에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도 느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즐겼던 이미지와 오락, 영화기술과 그 발전, 영화산업, 자본과 이데올로기, 지배와 피지배, 관객, 인간, 삶, 전쟁. 이 모두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Cinesapiens>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답한다. “LONG LIVE CINESAPIENS!”

 

2. Röyksopp ‘Only This Moment’

10년 넘도록 이 영상이 질리지 않는 이유는, 한 문장도 안 빼고 전부 좋은 가사와 편히 누울 수도, 신나게 달릴 수도 있게 하는 음악,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지는 영상 때문이다. 말랑말랑하게 찔러대는 귀염둥이, 폭군, 삶, 사랑, 자기 자신, 모든 것 자체에 쩔쩔매는 나에게.

음악과 가사, 영상이 따로 또 같이 완벽하다. 각각 별개로 봐도 내게는 하나의 완벽한 음률, 시, 영화다. 10여년 전 나는 ‘편히 누울 수도, 신나게 달릴 수도 있는 음악’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이 노래를 알게 되고 가사를 본 순간, 마치 첫사랑을 목격한 듯했고, 아직도 그 첫사랑에서 못 헤어나오고 있다. 영상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것이 내게 동화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한 노래와 영상이 함께라니. 영상에서의 눈빛, 만남, 혁명, 프로파간다, 다차원 시공, 우주의 교차가 가사와 절묘하게 맞물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해되는 리듬으로 내게 말을 건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때, 사랑이 나를 구원하고 내가 사랑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환상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뮤직비디오를 좋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사이 많은 인연이 지나갔다. 나도 잘 몰라 어쩔 줄 모를 때 ‘Only This Moment’는 공명정대한 신의 전언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마음을 안정시켰다. “마음 속 깊이 우리 사랑이 죽을 걸 안다”는 가사 만큼이나 “마음속 깊이 사랑이 살아남을 걸 안다”는 말도 위안이 된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낭만을 가지고 무모하게 도전하지만, 처절하게 실패한 젊은 패기의 초상에 마음을 잘 뺏긴다. 그걸 알면서도 미완의 혁명을 새로운 방식으로 꿈꾸고 있는 모습까지 나오면 게임 끝이다.

 

3. Blockhead ‘The Music Scene’

음악의 흐름에 모든 게 들어맞는 영상. 기괴한데,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암흑의 디스토피아 세상 속에서 동물은 해체된다. 화면이자 스피커인 기계에 홀려 앉아있는 인간의 형상은 꼭 내 모습을 보는 듯 폐부가 찔린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들려와 이마저 내 이야기인 양 흠칫 놀라지만 움찔거리며 반격할 거리를 찾게 된다.

반복되는 가사 “The music scene has got me down ‘cause I don’t want to be a clown”에도 그렇다. 요즘 ‘광대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소 비디오와 함께 듣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영상을 보면 서글픈 상황이 그려지면서 결국 이런 문구에 최면이 걸리듯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음악과 영상에, 이런 가사라니.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해체되고 다시 만들어지는 생명. 자극적인 화면을 바라보는 인간의 형상. 이것을 모두 지켜보는 자연적인 것을 대표하는 사슴까지. ‘나는 어디쯤 있는 걸까?’ 또다시 ‘본다’는 의미의 관객성에 매료되는 나를 보면서, 보는 행위 자체를 넘어 그 의미를 찾는 행위까지 즐기는 나를 다시 보게 된다.

 

4. Richard Linklater <Waking Life>

<Waking Life> 예고편
<Waking Life> 명대사 via 유튜버 ‘Strings N Greades’
뉴욕타임스 ‘Critics Picks’ <Waking Life> via The New York Times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TMI의 끝판왕이다. 굉장히 수다스럽다. 평소 관심 없는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어 멍하지만, 관심 있는 이야기에선 이야기를 쏟고 마는 내 머릿속 같은 모양이다. 실사 이미지를 애니메이션화 한 ‘로토스코핑’ 기법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봤는데, 영화 속 스타일이 다양한 점이 내게는 더욱 혼란스러워서 좋았다. 심지어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지금보다 더 좁은 사회에 살았던 터라,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익숙치 않은 얘기가 나오니 더 흥미로웠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대사에서도 많은 위안을 얻었다. 의문과 분노, 평화 등 호기심이 반복되지만, 그에 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었던 주제들이 영화에서 쏟아져 나와, 내 욕구를 해소해 주었다.

전봇대에 올라간 노인을 보고 “적어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낫다.”고 하는 말이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뜬금없이 “나는 개미가 되기 싫다.”고 하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비포 시리즈>의 ‘셀린느’(줄리 델피)가 등장해 “지금의 내가 노파의 기억은 아닐까?” 말하는 부분 등에서 텔레파시로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스스로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고 꿈만 꾸던 장면들이었다. 지금은 힘껏 시도하며 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지하거나 이상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쿨한 척하거나 머리 아파 무시하고픈 것들이기도 하다.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될 때면, ‘나, 이거 예전에 봤어.’, ‘당연한 얘기지, 이젠.’, ‘예전보다는 이런 얘기에 익숙해졌지, 난.’ 이런 아는 척으로 마음이 출발하지만, 영화 중간부터는 내가 그와 같은 것들을 ‘많이 잊고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심지어 마지막에서는 언제나 나의 코어를 보게 된다. 꿈, 기억, 본능, 예술, 과학, 사회, 인식, 자아, 소외, 공허, 호기심, 관계, 인생.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 항상 기억하면서 살기는 싫지만, 영원히 잊기도 싫은 이야기다.

어릴 때 유독 자주 꾸는 꿈이 있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채로 눈을 감으면 몸이 둥실둥실 떠오르는데, 눈을 뜨면 사르르 내려앉는 꿈이었다. 둥실거리는 느낌이 좋아서 눈을 감지만, 떠오른 상태로 눈을 뜨고 더 많은 것을 접하고 느끼고 행하고 싶은데 동시에 할 수 없어 아쉬웠다. 나중에 나는 이걸 ‘꿈’ 그리고 ‘현실’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의 대립으로 확장했다. 그래서 깨어있을 때 좋은 꿈을 꾸기 위해 생활하는 부족 이야기나 꿈의 의미를 찾는 콘텐츠를 보면 꿈과 현실의 대립이 없어지고 용기가 생긴다. “Just, wake up.”

 

싱어송라이터 애리는?

“음울한 파열음과 주술적인 소리가 그물을 이룬다. 고전적 소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독특한 사이키델릭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신성 싱어송라이터가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분야 예술가와의 협업 및 사회활동과 국내외 수많은 공연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다, 2018년 첫 EP <SEEDS>를 발매했다. 이후 2019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미츠키의 내한 공연 오프닝에 서는 등 기대되는 아티스트로 떠오르며 더욱더 활발한 활동을 가질 기반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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