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보이스

스포츠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면 주제와 방식을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생각하던, 미국의 스포츠 웹진 SB네이션(SB Nation)의 필진 존 보이스(Jon Bois)만큼 독창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아니, 누군가가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틀어서 그만큼 독보적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서 항상 무언가를 쓰고 만들던 존 보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유튜브보다도 더 오래된 이야기고, 무엇보다 스포츠를 전혀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과거 프로그레시브 보잉크 로고, via 현재 홈페이지 관련 기사

2000년대 초중반, 보이스는 프로그레시브 보잉크(Progressive Boink)라는 일종의 웹진이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다. 그의 글들은 언제나 스포츠를 중심이 뒀는데, 일반적인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하기보단 가상의 선수를 만들어 실제 역사에 기입하거나 인터넷의 특성을 이용해 기묘한 방식의 하이퍼링크 소설을 쓰는 식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난 후, 보이스는 당시 막 만들어진 스포츠 웹진인 SB네이션에 들어가 이 방식들을 좀 더 다양하게 시도한다. 이때까지도 유튜브는 아직 그의 중심이 아니긴 했다.

프로그레시브 보잉크를 흡수한 현 SB네이션 로고 via 홈페이지

본격적인 시작은 2013년부터였다. 보이스는 SB네이션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다양한 아이디어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슬픈 스포츠’를 만들어보겠다면서 국경을 넘어가 음식을 먹는 <저녁 점핑(SUPPERJUMPIN’)> 같은 영상도 있었지만, 그에게 어느 정도의 유명세를 가져다준 시리즈는 <브레이킹 매든(Breaking Madden)>이었다. 보이스는 여기서 유명 풋볼 게임인 [매든]의 설정을 최대한 극단적으로 바꾼 다음, 제목 그대로 게임이 ‘망가질’ 때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결과를 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기묘하게 창의적인 이 시리즈에는 인간의 범주를 초과하는 거대한 괴물 선수들과 현실과 묘하게 다른 게임의 논리들이 말 그대로 ‘충돌’하며 기이하고 엄청난 장면들을 만들어냈고, 보이스는 이를 중계하듯 글을 쓰며 게임 영상들을 gif로 만들거나 음악을 더해 글 속에 삽입했다. 이런 <브레이킹 매든>은 보이스가 웹의 형식을 바탕으로 보여줄 수많은 개성적인 작업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 보이스는 <브레이킹 매든>의 설정을 농구 게임으로 옮긴 <NBA Y2K>나 HTML과 이미지, GIF 등을 활용한 ‘어쨌든 NFL에서 캐치는 대체 뭐야?’ 같은 글을 썼다.

‘기계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는 제목의 <브레이킹 매든> 시즌 1 피날레에 실린 영상

이처럼 야구와 농구, 풋볼 등으로 뻗어가는 ‘스포츠’는 보이스에게 핵심 소재이기보다는 주로 느슨한 배경으로 쓰이되, 그 사이에 좀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오게 하는 장치다. 스포츠를 하나의 설정으로 둔 채로, 보이스는 우주가 얼마나 크고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이 얼마나 작은지, 그런데도 세상에 의미가 있거나 적어도 재미가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를 경유하며 보이스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매우 작은 우리들이 어떻게 그 모든 걸 생각해보는 동시에 잠시 잊으며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해왔고, 더 나아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러한 보이스의 관점은 2014년쯤부터 두 가지 갈래로 뻗어 나간다. 한쪽은 아예 웹 기반의 소설을 쓰는 것이었고, 다른 쪽으로는 본격적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웹 소설과 유튜브 영상과는 한참 달랐다. 인터넷을 하나의 창작 공간이자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하던 보이스는, 2014년에 대화문과 설명, GIF와 각종 이미지, 유튜브 영상 등을 이리저리 섞어내 첫 ‘소설’ <팀 티보 CFL 연대기>를 공개했고, 이어 2015년에는 유튜브 시리즈인 <꽤나 좋은 (Pretty Good)>을 냈다.

<꽤나 좋은>은 제목처럼 ‘꽤나 좋은’ 이야기들을 다루는 유튜브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생애 처음으로 타석에 올랐던 투수 구대성이, 당시 MLB 최고의 투수였던 랜디 존슨(Randy Johnson)을 상대로 타점을 얻은 이야기를 다룬 첫 영상을 시작으로, 보이스는 2015년부터 비정기적으로 <꽤나 좋은>을 연재해 지금까지 열 두 편의 영상을 올렸다. 이전 작업의 방식을 영상 문법에 맞춰 끌어와 구글 어스와 통계 자료처럼 놀라운 연출로 개성 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보이스는 세계 최악의 올림픽 마라톤 경기부터 253:141라는 비현실적인 점수로 경기를 한 대학 농구팀까지 많은 주제를 흥미롭게 다뤘다. <꽤나 좋은>이 많은 인기를 얻지는 않았지만, 그 특유의 ‘보이스스러움’을 좋아했던 팬들 사이에서 나름의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 보이스는 다양한 스포츠의 통계들을 중심으로 파고드는 <차트 파티 (Chart Party)>라는 또 다른 유튜브 시리즈를 내고 최근에는 무려 1시간짜리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구대성의 일화를 다룬 <꽤나 좋은>의 첫 번째 영상

이렇게 다양하게 이어온 보이스의 글쓰기는 마침내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더 넓게 실험된다. 2017년, “미래의 풋볼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부제와 함께 <17776>이라는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다. 존 보이스 식의 SF소설인 <17776>은 제목처럼 머나먼 17776년을 배경으로, 만 년 넘게 인류의 전파를 받다가 결국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된 세 우주 탐사선의 대화문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 우주 탐사선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인류가 그 이후 만 년 동안 <브레이킹 매든>과 닮은 기이한 풋볼 경기들을 뛰는 것을 바라본다는 기묘한 설정을 바탕으로, <17776>은 보이스가 전보다 훨씬 더 많아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17776>에서 보이스는 대화체의 내러티브에 이전의 영상들처럼 구글 어스와 함께 여러 GIF와 이미지 파일, 스크랩된 자료 등을 더하고, 중간중간 유튜브 영상들을 삽입하면서 인터넷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와 함께 <17776>에는 그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느슨하고 거대한 주제,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완벽히 무의미한 삶에 대해 담았고, 그런데도 그 무의미에 대항하며 실패하고 절망하면서, 스스로 가까스로 의미와 재미를 만들어내는 큰 이야기가 보이스만의 완벽한 방식으로 펼쳐졌다. 작품은 심지어 그 해 휴고 상에서 ‘최고의 그래픽 스토리’ 부문 후보 추천에 오르기까지도 했다.

<17776>에 삽입된 오프닝 영상

<17776> 이후 보이스가 앞으로 또 소설을 쓸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그는 계속 유튜브 영상을 만들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지속해서 실험되고 이어진 그만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때마다 다르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겠지만, 특유의 개성 있는 분위기와 우주적인 주제만큼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2018년 말, 보이스는 팟캐스트 <샤포 트랩 하우스(Chapo Trap House)>의 펠릭스 비더만(Felix Biederman)과 함께 MMA의 역사를 다룬 2시간짜리 5부작 유튜브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개했다. <고독의 시대에서 싸우기(Fighting in the Age of Loneliness)>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보며, 존 보이스가 앞으로 또다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 막연한 상상과 무한한 기대가 함께 찾아왔다.

<고독의 시대에서 싸우기 (Fighting in the Age of Loneliness)>

 

Writer

어설픈 잡덕으로 살고 있으며, 덕심이 끓어 넘치면 글을 쓴다. 동시대의 대중 음악/한국 문학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인디 게임, 인터넷 문화, 장르물 등이 본진(중 일부). 웹진 weiv에서 대중 음악과 비평에 대해 쓰고 있고,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창작/비평하고자 비효율적으로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