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런던, 베를린, 뉴욕, 오스틴 등 음악으로 유명한 도시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들도 달지 못한 ‘유네스코 음악의 도시’ 칭호를 받은 도시가 있으니 바로 스코틀랜드의 문화수도 글래스고(Glasgow)입니다.

스코틀랜드는 ‘세울리안’이 느끼기엔 조금 횅한 곳입니다. 인구가 고작 500만 명인데 땅덩이는 엄청 넓어서 인구밀도가 1㎢당 67명밖에 안 됩니다. 참고로 서울의 인구는 1천만이 넘는 데다가, 인구밀도는 1만 6천여 명이죠. 그나마 에든버러(Edinburgh)와 글래스고에 많이 모여 살기는 합니다만, 그래 봐야 글래스고의 인구가 고작 60만으로, 송파구(66만 명)보다도 적습니다.

에든버러와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음악 도시를 두고 다투기도 하는데, 에든버러의 대표선수로는 베이 시티 롤러스(Bay City Rollers), 아이들와일드(Idlewild), 프로클레이머스(The Proclaimers) 등이 있습니다. 글래스고는? 일단 가장 앞에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과 심플 마인즈(Simple Minds)를 딱 놓고, 모과이(Mogwai), 더 파스텔스(the Pastels), 지저스 앤 메리 체인(The Jesus & Mary Chain), 바셀린스(The Vaselines),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킹 크레스토까지 줄을 세우자면, 아무래도 에든버러가 좀 무리수를 둔 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솔직히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엄밀히 따지자면 서울은 아니고 일산(이스트킬브라이드) 정도기는 하지만 뭐 다 글래스고 권역이니 넘어갑시다.

여기서 잠시 프라이멀 스크림의 이름이 나온 김에 한 곡 듣지 않을 수가 없겠죠? 이 밴드의 음악은 이름에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외상을 겪었던 경험을 끄집어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치게 하는 ‘프라이멀 테라피’라는 정신치료 요법이 있는데, 그때 지르는 첫 비명을 ‘프라이멀 스크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라이멀 스크림을 듣자면, 어려서 흑인 교회에서 가스펠을 듣고 자란 꼬마가 시카고 블루스로 기타를 배우고 뉴웨이브 사운드에 빠져서 만든 댄스곡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Primal Scream ‘Movin' On Up’ <The Word>(1991) Live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2015년에 발간한 글래스고 음악 신에 관한 책 <디어 그린 사운즈(Dear Green Sounds)>의 공동저자이자 글래스고 토박이 음악평론가 빌리 슬론에 따르면 글래스고에 인디 음악이 역병처럼 창궐하던 1980~90년대에는 “기타 케이스를 메고 소키홀 거리(글래스고의 중심가)를 걷자면 수표책을 흔들며 레코드 취입 계약을 맺자고 달려드는 사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도시 전체가 음악 전염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장르도 다양했죠. 뉴웨이브 록을 대표하는 프라이멀 스크림, 얼터너티브 계열의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미국 남부에 당장 데려다 놔도 좋은 델 아미트리(Del Amitri)까지 온갖 아종과 변종들이 ‘혼자서도 잘해요’(DIY, Do it yourself)와 ‘누구나 다 해요’(아마추어리즘, Amateurism)의 바람을 타고 번져 있었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글래스고의 록 & 팝 밴드를 전부 소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생은 항상 선택과 집중! 프라이멀 스크림이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델 아미트리가 너무 저평가 받긴 하지만, 다 쳐내고 지금까지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글래스고의 인디 팝 신에 집중하려 합니다.

 

 글래스고의 첫 번째 멜로디 요정, 바셀린스

 글래스고에 별명을 붙이자면 ‘멜로디 요정들이 사는 도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 동네의 엘프들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음표 하나하나 다듬고 다듬어 곱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지금 소개할 바셀린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늙은 멜로디 엘프 중 하나입니다. 사실 바셀린스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면 그 명성에 비해 조금 어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프랜시스 맥키(Frances McKee)와 유진 켈리(Eugene Kelly)는 1986년에 바셀린스를 결성해 1987년과 1988년에 EP를 하나씩 내고 1989년에 이 두 EP에 들어있는 노래에 몇 곡을 더해 첫 풀-랭스 앨범 <덤-덤(Dum-dum)>을 발표하고 해체합니다. 뭐 글래스고에선 꽤 성공한 동네잔치였습니다만, 당시엔 미국은커녕 영국 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죠. 아래는 바셀린스의 첫 싱글 ‘Son of a Gun’입니다.

The Vaselines 'Son of a Gun'

그러나 1992년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유진 켈리와 프랜시스 맥기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송 라이터”라고 온 동네에 떠들고 다니더니, 자신의 앨범 <인섹티사이트(Incesticide)>에선 바셀린스의 ‘Son of a Gun’과 ‘Molly’s Lips’을 커버하고, 1994년 <MTV 언플러그드 인 뉴욕>에선 바셀린스의 ‘Jesus Wants Me For A Sunbeam’의 제목을 ‘Jesus Don't Want Me for a Sunbeam’으로 바꾸어 삽입하면서 유진 켈리와 프랜시스 맥키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음악으로 돈을 번 건 너바나 로열티뿐”이라는 유진 켈리는 “커트 코베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EP 한두 개 내고 그냥 사라지는 수많은 밴드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하고 다녔지만, 어쩌면 바셀린스가 없었다면 커트 코베인이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90년대 글래스고를 휩쓸고 갔던 DIY 음악의 열풍은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의 음악, 그리고 미국 얼터너티브의 탄생에 꽤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죠. ‘방구석 스튜디오 스타일’ 또는 ‘아마추어리즘’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이들이 음악을 다루는 태도는 대략 노래를 들어보기만 해도 감이 올 겁니다. 예를 들어 ‘Jesus Don't Want Me For A Sunbeam’은 이상은의 ‘담다디’를 칠 수 있는 실력이라면 누구나 연주 가능한 ‘D-C-G' 단 세 개의 오픈 코드로 이뤄져 있고, 음치만 아니라면 부를 수 있는 음역의 노래입니다.

Nirvana 'Jesus Don't Want Me for a Sunbeam'

그러나 이 단순한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커트가 프랜시스 맥키의 이름을 따 자신의 딸 이름을 ‘프랜시스 빈 코베인‘으로 지었다는 건 유명한 얘기입니다. 지난해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던 코트니 바넷이 ‘내가 작곡했으면 하는 노래‘ 중 하나로 이 노래를 꼽기도 했죠. 1987년생인 그가 30년 전 노래에 아직도 감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코트니 바넷이 만든 노래에서 바셀린스의 편린이 느껴진다는 사실에서 굳이 뭔가를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만.

하여튼, 그 자체로 아름다운 멜로디이기에 굳이 드라마틱하게 만들지 않는 게 이 동네 엘프들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음표 하나에는 반드시 가사가 한 음절씩 또박또박 들어가고, 절대 바이브레이션을 넣지 않고 한 음을 두 박자 이상 웬만해선 끌지 않습니다. 왜? 두 박자 이상 끌려면 어쩔 수 없이 목을 떨게 되니까요.

Teenage Fanclub ‘What You Do To Me’

이게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작아 보이는 특징들이 음악을 대하는 글래스고 인디신의 도그마 내지는 애티튜드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개한 바셀린스가 그렇고, 앞으로 소개할 틴에이지 팬클럽,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벨앤세바스찬, 더 파스텔스가 그렇습니다. 뭐 누가 이론으로 만들어 주창한 건 아니지만요. 하여튼 다음 시간에는 낡은 순서대로 ‘더 파스텔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Writer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연예, 음악, 영화, 섹스 영역을 담당하는 기자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생일이 같은 선택 받은 팬이자, 가장 좋아하는 밴드 틴에이지 팬클럽의 한국 수행을 맡았던 성공한 덕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