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된 작품이 가장 많은 작가는 누구일까? 여러 작가의 이름이 언급되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가장 격하게 동의하게 될 거다. 특히 그의 4대 비극 <오셀로>, <리어왕>, <햄릿>, <맥베스>는 많은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왜 영화감독들에게 사랑받는 걸까? 아마 세상의 모든 비극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직접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만나보자.
<오셀로>를 원작으로 한, 오슨 웰스의 <오셀로>

20대에 전설이 된 감독, 데뷔작으로 전설이 된 감독,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만든 감독. 이는 모두 오슨 웰스의 수식어다. 오슨 웰스가 20대에 만든 장편영화 데뷔작 <시민 케인>(1941)은 영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불린다. 연출뿐만 아니라 배우, 각본가로서도 탁월했던 오슨 웰스의 꿈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작품을 영화화하지는 못했지만 <맥베스>(1948)와 <오셀로>(1952)에서 각본, 주연, 연출을 모두 소화했고, <오셀로>는 제5회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무어인 ‘오셀로’(오슨 웰스)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베니스 사이프러스에 살고 있다. 그는 ‘데스데모나’(수잔 클로티어)와 사랑에 빠지고 장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오셀로의 곁에는 ‘이아고’(마이클 맥리아모어)가 있다. 이아고는 충신 같지만 오셀로를 질투하는 인물로, 오셀로를 궁지에 빠뜨리려 한다. 이아고는 오셀로가 부관 ‘캐시오’(마이클 로렌스)와 데스데모나의 사이를 의심하도록 계략을 꾸민다.
배우자를 의심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부를 만큼, 오셀로의 의심은 깊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랑을 차지하는 등 가진 게 많은 만큼 불안도 큰 오셀로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를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금방 부풀어 올랐다. 의심이 기존의 신뢰보다 커졌을 때, 행복한 결론은 기대하기 힘들다. 상대에게 믿음을 증명하라고 하기 전에 자신이 지닌 믿음부터 살펴보는 게 관계에서의 예의일 거다. 사랑의 시작점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이니까.

- 감독
- 오손 웰즈
- 출연
- 마이클 맥리아모어, 로버트 쿠트, 오손 웰즈
- 개봉
- 1952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

구로사와 아키라는 자국 일본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던 감독이다. 조지 루카스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카게무샤>(1980)의 제작에 참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꿈>(1990)의 기획에 참여하는 등 해외 수많은 거장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팬을 자처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거미의 성>(1957)과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란>(1985)까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두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배경을 동양으로 옮기면서 원작 이상의 매력을 보여준다.

일본 전국시대, 성주 ‘이치몬지 히데토라’(나카다이 다츠야)는 아들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장남 ‘타로’(테라오 아키라)에게 넘기겠다고 발표한다. 둘째 아들 ‘지로’(네즈 진파치)는 잠자코 그 말에 따르지만, 막내아들 ‘사부로’(류 다이스케)는 말도 안 된다며 분개한다. ‘히데토라’는 분노해서 ‘사부로’와 연을 끊기로 한다. 권력을 넘긴 뒤 히데토라는 장남 타로의 성에 방문하는데, 타로는 아내 ‘카에데’(하라다 미에코)의 조언에 따라 히데토라를 푸대접한다. 권력을 넘기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히데토라의 예상은 완전하게 빗나가고, 그를 둘러싼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란>은 인물별로 상징색을 부여한 의상이 특히 돋보이는데, 의상 감독 와다 에미는 이 작품으로 제5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위해 가족을 비롯해서 수많은 이들을 죽인다. 권력을 좇느라 나를 아끼는 이들을 모두 잃고, 권력을 얻은 뒤에 권력을 탐하는 이들로 둘러싸인 삶을 산다면 과연 행복할까? <란>은 행복하기 위해 권력을 좇는다는 게 얼마나 모순되고 비극인지 알려주는 작품이다.

-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 출연
- 나카다이 타츠야
- 개봉
- 1985
<햄릿>을 원작으로 한, 톰 스토파드의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주한 연극 한 편이 영국에서 주목을 받는다. 이 연극은 바로 톰 스토파드가 극본을 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이다. 단숨에 주목받는 극작가가 된 톰 스토파드는 영화계에서 각본가로 활약한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1985)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1987)의 각본가로 참여했고, 제7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주요 부문을 휩쓴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각본상을 받았다.

각본가로 활동한 톰 스토파드의 유일한 영화 연출작은 자신의 극본을 원안으로 한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1990)로, 제4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에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햄릿’에서 친구로 큰 비중 없이 등장하는 ‘로젠크란츠’(게리 올드만)와 ‘길덴스턴’(팀 로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둘은 숲에서 수상한 극단을 만나게 되고, 갑작스럽게 원작 ‘햄릿’의 세계에 진입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햄릿>은 어두운 비극이지만, 톰 스토파드의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는 위트로 가득하다. 주인공 햄릿이 아닌 원작에서 별 볼 일 없던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에 집중하는 이유는, 삶이라는 연극에서 주인공은 항상 자신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인 듯 보인다. 연극 <햄릿>에서 모든 관객이 햄릿을 주인공이라고 해도, 작은 배역을 맡은 배우들에겐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말하는 주인공이 누구일지라도 내 삶에서 주인공은 나다. 삶에서 우리가 받은 대본에는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단 한 줄의 지문만 적혀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을 믿고 전진하는 게 우리의 유일한 역할이다.

- 감독
- 톰 스토파드
- 출연
- 게리 올드만, 팀 로스
- 개봉
- 1990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

위에서 언급한 오슨 웰스와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해서 로만 폴란스키까지 수많은 감독이 <맥베스>를 영화화했다. <스노우타운>(2011)으로 주목받은 호주 출신 감독 저스틴 커젤의 <맥베스>(2015)는 배우들의 매력이 큰 작품이다. 마이클 파스벤더부터 마리옹 꼬띠아르와 숀 해리스까지, 원작의 대사를 최대한 살린 연출에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서 비극적인 분위기가 증폭된다.

스코틀랜드의 전사 ‘맥베스’(마이클 파스벤더)는 ‘뱅코우’(패디 콘시딘)와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의문의 세 마녀를 만난다. 세 마녀는 맥베스가 코다의 영주가 되고 나중에는 왕이 될 거며, 뱅코우의 자손은 훗날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한다. 맥베스는 코다의 영주가 되고, 예언이 맞았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맥베스의 아내(마리옹 꼬띠아르)는 맥베스에게 왕이 되라고 하고, 맥베스는 ‘덩컨 왕’(데이빗 듈리스)을 살해하고 왕이 되지만 점점 세 마녀의 예언에 집착한다.
용맹한 전사 맥베스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들은 후로 세 마녀의 말에 갇혀서 그 외에 세상을 제대로 못 본다. 충성을 바치며 묵묵히 일을 하던 맥베스는 예언 때문에 왕을 꿈꾸고, 왕이 되자 자신의 자손이 왕이 되길 바란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고, 현명하던 맥베스의 시야는 좁아진다. 가장 달콤한 언어를 쫓았더니, 그 길은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길이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달콤한 첫 맛과 달리 독한 뒷맛을 남긴다는 걸, 맥베스의 비극을 통해 깨닫는다.

- 감독
- 저스틴 커젤
- 출연
-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 개봉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