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아직도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밀당녀’, ‘발연기 전문 하이틴 스타’로 여길지도 모른다. 전 세계 1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인기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프랜차이즈 영화의 주인공이 한 사람의 가장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로 기억되는 것,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배우 자신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관객 수를 동원한 커리어를 크게 괘념치 않는 것 같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남자처럼’ 옷을 입고, 자기가 찍고 싶은 영화를 찍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한다. 대학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를 하고, 그 연구를 자신의 예술에 접합한다. ‘사람들의 기억 속 자신’으로 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깨나가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셀러브리티’라면 감히 갖기 어려운 쿨한 아우라로. 그런 그를 내로라 하는 거장들이 자신의 영화에 캐스팅하는 건 예정된 수순일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영화들을 보자. 만만찮은 감독에, 만만찮은 크리스틴이 함께했다.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 ㅣ 2016 ㅣ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ㅣ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올해 2월 개봉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첫 번째 단독 주연작. 아래에서 소개할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의 두 번째 협연이다. 아사야스라면, 누벨바그의 일원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고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약했으며, 몇 편의 놀라운 영화를 내놓았던 프랑스의 거장 감독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퍼스널 쇼퍼 ‘모린’을 맡았다. 그는 영혼들과 대화를 하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로, 쌍둥이 오빠의 죽음 이후 고립과 고독감으로 외로워하다가 어떤 메시지를 받게 된다. 2016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영화로, “15분 20초간의 문자 시퀀스 만으로도 감독상을 받기 충분하다(정성일 평론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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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소사이어티>

Café Society ㅣ 2016 ㅣ 감독 우디 앨런 ㅣ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제시 아이젠버그, 블레이크 라이블리

여배우 캐스팅에 일가견이 있는 우디 앨런 감독의 47번째 연출작의 뮤즈가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소식은 전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케 하기 충분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성공을 찾아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온 남자 ‘바비’가 사랑에 빠지는 비서 ‘보니’로 열연한다. 보니는 할리우드의 사치스럽고 허세 가득한 문화를 경멸하며 바비와의 사랑을 키워가지만, 알고 보니 반전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영화 속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리본 머리띠와 미니 원피스 같은 레트로한 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 사랑스러운 의상조차 크리스틴의 거침없는 터프함을 숨기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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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Clouds of Sils Maria ㅣ 2014 ㅣ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ㅣ 출연 줄리엣 비노쉬, 크리스틴 스튜어트, 클로이 모레츠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연출로 대배우 줄리엣 비노쉬, 할리우드 톱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 클로이 모레츠 세 명이 출연하여 화제가 된 영화.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극 중 세계적 톱스타인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의 매니저 ‘발렌틴’을 연기했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크리스틴은 성실하고도 순발력 있는, 그야말로 ‘일 잘하는 여자’의 프로페셔널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영원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남고 싶지만 희미해지는 젊음과 인기 앞에 혼란을 일으키는 마리아를 옆에서 진심으로 위하고 조언하는 발렌틴의 모습은 크리스틴의 직설적이고도 따뜻한 눈빛으로 설득력과 호감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예고편

 

<런어웨이즈>

The Runaways ㅣ 2010 ㅣ 감독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ㅣ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다코타 패닝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한창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전 세계 소녀들 선망의 대상이 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개봉한 작품으로, 약물과 동성애, 욕설과 로큰롤이 흥건한 영화. ‘국민 여동생’ 다코타 패닝 역시 상대역으로 출연하여 기존 이미지를 벗고 파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초의 여성 록밴드 ‘런어웨이즈’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밴드의 리드 기타 ‘조안 제트’를 맡아, 소녀들의 시작과 록스타로서의 찬란함, 몰락까지를 연기한다. 다코타 패닝과의 러브 케미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재미다. 데이비드 보위, 비요크, 마릴린 맨슨 등의 뮤직비디오를 맡아 강렬한 감각을 선보인 플로리아 시지스몬디 감독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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