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하나가 한국 땅에 자리를 잡았다. 국내 가구 업계들은 긴장했고, 매장이 들어서기로 한 지역은 들떴다. 오픈 후 몇 달 간은 매장에 들어가려는 자동차들 때문에 주변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월드 스타의 내한보다 더 뜨거운 내한이었다. 스웨덴의 홈 퍼니싱 기업 이케아(IKEA)의 이야기다. 브랜드 하나가 이토록 뜨겁게 한국을 달구었던 것은 아마도 이케아가 단순히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라이프스타일을 팔기 때문이리라.

이케아가 그동안 했던 수많은 광고 캠페인 중에 몇 개를 추려보았다. 이케아가 팔고자 하는 것은 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구를 넘어선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사실을 이케아의 광고가 아마 제대로 보여줄 것이다.

 

2002년의 ‘Lamp’ 광고와 2018년의 ‘Lamp2’ 광고

2002년 ‘Lamp’ 광고

때는 2002년. 한 편의 광고가 미국에 온에어 되었다. 모델은 빨간색 램프. 한 여자가 낡은 램프를 거리에 버린다. 램프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원래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새로운 램프가 차지하는 것을 본다. 그 위로 흐르는 처연하고 쓸쓸한 BGM. 버려진 램프에게 연민을 느끼는 그 순간, 스웨덴 남자 한명이 등장해 말랑해진 우리의 감성에 팩트 폭격을 날린다.

“Many of you feel bad for the lamp. That is because you’re crazy. It has no feelings, and the new one is much better.
(많은 사람들이 이 램프에 연민을 느낄 거에요. 정신차리세요. 램프는 감정을 못 느껴요. 더 좋은 걸로 사세요)”

스웨덴 남자가 날린 팩트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뒤통수가 얼얼하다. 평소에는 새 물건을 그토록 좋아하면서 고작 비에 젖은 채 슬픈 음악이 깔렸다고 저 램프 하나에 그리 감정이입을 했단 말인가? 16년 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도 이 광고는 센세이션했다.

사실 당시 이케아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다. 미국은 스웨덴이 아니었고, 이케아는 코스트코, 월마트에 밀려 이도저도 아닌 브랜드였다. 내구성이 좋고 비싸고 오래가는 가구를 선호하던 미국인들과 내구성보다는 트렌디하고 저렴한 가격이 장점인 이케아는 잘 맞는 짝이 아니었다. 이케아로서는 가구도 옷처럼 유행에 따라 마음껏 바꿔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광고가 바로 이것. 마침 2002년 9월, 미국 전역에 60개의 새로운 이케아 매장을 오픈한 것을 계기로 광고가 온에어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고 하나가 미국 가구 시장의 트렌드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 이 광고가 나간 기간 동안 미국 내 이케아 판매는 8%가량 늘었고, 미국 가구 시장에서 3위로 급성장했다. 2003년에는 칸 광고제 그랑프리, 클리오 광고제 그랜드 클리오 등을 휩쓸면서 DDB 월드와이드의 회장인 밥 스카펠리로부터 “전 세계의 관념을 바꾼 광고 중 하나”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 출처 - adweek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광고를 연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영화 <그녀>(2013) <어댑테이션>(2002) <존 말코비치 되기>(1999)로 유명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라는 것. 특히 마지막 반전을 이끄는 스웨덴 남자 캐스팅은 전적으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결정이었다고.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을 캐스팅하고 싶었다. 마치 이케아에서 일하는 직원이 거리를 지나가다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Jonas Fornander는 그런 이유로 캐스팅했는데, 그는 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스웨덴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광고의 주인공인 램프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고심 끝에 캐스팅한 것. 여러 램프 후보 중에 제일 불쌍해 보여서 발탁되었단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탁월한 캐스팅이 빛을 발한 광고가 아닐 수 없다.

2018년의 ‘Lamp2’ 광고

이 역사적인 광고는 2018년 부활하게 된다. 이번에는 미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사실 16년의 세월 동안 강산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새것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낭비에 대해 고민하며 지속가능성과 스마트한 소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케아도 그중 하나였다. 심지어 이케아는 2030년까지의 목표를 담은 새로운 ‘People+Planet’ 전략을 발표하고, ‘아름다운 가능성(Beautiful Possibilities)’이라는 제목의 웹사이트를 열어 재활용, 재사용, 심지어 재판매를 목표로 하는 이케아의 수많은 시도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그 옛날 이케아의 역사를 바꿨던 광고를 패러디할 적절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2018년, 16년 만에 램프 광고의 후속편이 캐나다에서 온에어 되었다. 광고 내용은 단순하다. 후속편은 2002년의 마지막 장면, 그때 그 거리에 버려져 있던 램프를 한 소녀가 가져가면서 시작된다. 소녀는 그 낡은 램프를 집으로 들고 가 전구만 갈아끼운 후 새 생명을 불어넣고, 램프는 소녀의 일상을 따스하게 비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2002년 광고보다 조금 나이가 든 Jonas Fornander가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16년 전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램프를 보며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면 정상이라고. 재활용은 좋은 것이라고.” 당연히 전작만큼의 반전과 재미는 없다. 하지만 전작과는 다른 행복이 전해진다. 압박감 때문에 원작을 1000번 넘게 봤다는 후속편 스태프들의 노력이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 같다.

 

100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한 2010년 ‘Happy Inside’ 캠페인

출처 – Brand tracker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안다. 고양이들이 집에서 가장 편하고 아늑한 곳을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지. 사람인 우리는 그저 고양이의 판단에 감탄할 뿐. 그래서 이케아는 고양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케아 매장에서 가장 아늑한 곳은 어디인지 말해달라고.

이케아 ‘Happy Inside’ 광고

2010년 여름 어느 날 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텅 빈 영국 웸블리의 이케아 매장. 평소 같았으면 어둠만 가득했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100마리의 고양이가 웸블리 이케아 매장을 찾은 것. 고양이 100마리라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영국에서 이케아의 광고를 담당하던 ‘마더 런던’은 이케아의 가구가 그저 싸고 트렌디한 것을 넘어서 아늑함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냈다. 영업이 끝난 이케아 매장에 100마리의 고양이를 풀어놓고, 고양이들이 이케아의 가구에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자.

사실 광고회사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훈련된 고양이도 아닌 평범한 집고양이가 무려 100마리. 촬영 스태프는 물론 고양이의 주인도 이케아 매장에 들어선 고양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몰랐다. 촬영이 시작되고 어떤 고양이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고, 어떤 고양이는 서랍 안에 자리를 잡았다. 생김새도 종류도 모두 다른 100마리의 고양이들은 텅 빈 이케아 매장 안을 자기 집처럼 누비며 광고가 되기에 충분한 영상 소스들을 제공했다. 다행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이케아 매장 곳곳을 탐험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케아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광고는 2010년 9월, 60초 버전으로 편집되어 공개됐다. 반응은 당연히 뜨거웠다. 하지만 100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풀어놓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는데 광고 한 편으로 끝나면 아깝지 않은가. 이케아와 마더 런던은 다양한 영상과 이벤트들을 함께 준비했다.

이케아 ‘Happy Inside’의 메이킹 필름 ‘Herding cats’

특히 이 광고를 만드는 과정을 찍은 ‘Herding Cats’라는 제목의 메이킹 필름은 열흘 만에 2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본 광고가 약 7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거의 3배 이상의 차이였다.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웹사이트에는 어느 고양이가 어느 가구에 정착할지 맞추는 게임도 넣었다. 이 웹사이트를 오픈한 첫 주말엔 방문자가 너무 많이 몰려 일부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다. 게다가 그다음 해 이케아가 출시한 <Cat-alogue>라는 이름의 카탈로그는 또 어떤가. 카탈로그 속 제품 곳곳에 고양이가 요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100마리의 고양이라니, 고양이와 가구를 담은 카탈로그라니! 이건 정말이지 이케아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Happy Inside 웹사이트, 출처 – Chrisrawlinson 
<Cat-alogue>, 출처 – this is not advertising 

 

그 자체로 요리가 되는 레시피, 2016년 ‘Cook this Page’ 캠페인

이케아는 건방지다. 가구를 내어놓고는, 조립은 소비자더러 하란다. 하지만 이케아를 겪어본 사람들은 힘겹게 가구를 조립해서 제자리에 놓았을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또다시 이케아를 찾는다. 스스로 완성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이케아만의 도도한 태도. 이 태도야말로 이케아를 규정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 특징이 이번에는 요리에 발휘됐다.

이케아 ‘Cook This Page’ 캠페인 설명

가구를 조립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요리 방법도 가구 조립 설명서처럼 종이에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 심지어 가구 조립하는 것보다 요리가 훨씬 쉽다. 종이에 그려져 있는 일러스트대로 재료를 얹은 후 종이를 말아서 오븐에 넣으면 끝.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구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모두 이케아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레시피가 그려져 있는 이 종이는 버터 같은 것을 포장할 때도 쓰이는 것으로, 먹어도 인체에 무해하다. 종이에 그려져 있는 일러스트나 글씨는 식용 잉크로 인쇄했단다. 총 4가지 요리의 레시피가 있다. 허브와 레몬을 넣은 연어부터 스웨덴산 미트볼을 사용한 라비올리까지.

‘Cook This Page’의 예시, 출처 - applied arts magazine 
‘Cook This Page’의 예시, 출처 - Truly Deeply 

예시를 보다 보면 이 레시피 종이를 구해 스웨덴 요리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종이는 이베이에서도 구하기 힘들다. 사실 이 레시피 종이는 2018년 캐나다 이케아의 주방 행사를 위해 만들어졌던 것. 가족의 날 캐나다 전역의 18개 이케아 매장에서는 이 레시피 종이로 요리를 하는 행사를 열었고, 고객들에게 이 레시피 종이를 제공했다. 이 사실이 SNS에 알려지고 12500개의 레시피가 모두 소진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시간. 이케아에서는 이 레시피를 다시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하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Cook This Page’의 예시, 출처 – designboom 

사실 요리에 관한 이케아의 색다른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에는 사진작가 칼 클라이너(Carl Kleiner)와 함께 <Homemade Is Best>라는 요리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때는 레시피 자체를 예술 작품처럼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재료만 늘어놓았음에도 눈이 황홀해진다.

사진작가 칼 클라이너와 함께 제작한 이케아의 요리책 <Homemade Is Best>, 출처 - ad of the world 

그런데 이케아는 왜 자꾸 요리에 관한 걸 내놓는 걸까? 이케아의 식품 부문 전무이사 마이클 라 코(Michael La Cour)의 인터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몇 년 안에 이케아가 ‘먹으러 가는 곳인데 가구도 좀 파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 목표를 향해 전념할 것이라면서. 가구를 넘어 요리까지 넘보다니, 이러니 이케아가 건방지다고 할 수밖에!

 

메인 이미지 The logo of IKEA is seen above a store in Voesendorf, Austria. HEINZ-PETER BADER via ‘News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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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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