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 출연한 발츠(좌)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조연상 부문에서 맷 데이먼, 우디 해럴슨 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배우 크리스토프 발츠(Christopher Waltz)가 오스카를 안았다. 무대에 오른 그는 약간 어눌한 발음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 ‘유태인 사냥꾼’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악명높은 나치 친위대 장교 ‘한스 란다’를 연기한 그는, 아버지가 독일인, 어머니가 오스트리아인인으로, 비엔나에서 나고 자랐다. 독일인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은 1937년 루이제 라이너(Luise Rainer) 이후 73년만이었다.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리스토프 발츠의 수상 장면

그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대부분 배우와 연극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연기를 본업으로 삼았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유학하며 미국에서 연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에서 연기자 생활을 계속했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에 모두 능통한 그는, 유럽에서 20여년간 다양한 TV 드라마에서 연기를 했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발탁되어 오랜 숙원인 미국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었지만 일단 진출한 후에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미국 진출 10년 만에 2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두개의 아카데미상 수상자가 되었고 이제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꼭 봐야할 몇 편을 뽑아 보았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로, 나치 수뇌부를 암살하려는 저항 세력의 복수극을 그렸다. 원래 감독은 친위부대 장교 ‘한스 란다’ 대령 역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맡기려 했으나, 크리스토퍼 발츠를 만나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3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할리우드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독일 출신 배우 크리스토프 발츠에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칸영화제 최고남우상, 골든글로브 상, BAFTA상을을 안기며 그에게 생애 최고의 한 해를 선물했다.

크리스토프 발츠를 할리우드에 알린 유태인 추적 장면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세르조 코르부치(Sergio Corbucci)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장고>(1966)에 헌정하는 서부영화로, 극장 수입으로 4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감독의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남았다. 크리스토프 발츠는 독일 출신의 현상금 사냥꾼으로 등장하여 전작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골든글로브, BAFTA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는 흑인을 부르는 호칭 ‘Nigger’를 지나치게 사용했다거나, 노예제도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 지나친 폭력 장면 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낳았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 예고편

 

<007 스펙터>(2015)

가장 최근에 나왔던 스물 네 번째 007 시리즈 <스펙터>에서 크리스토프 발츠는 비밀조직 스펙터의 두목 ‘블로펠트’ 역을 맡으며 악역 전문 배우의 면목을 이어 나갔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1971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부터 고양이를 쓰다듬는 캐릭터로, 크리스토프 발츠는 일곱 번째 블로펠트 배우가 되었다. 제작비가 3억 달러에 달해 역대 007 시리즈 중 가장 비싸게 제작되었으나, 8억 8천만 달러에 이르는 극장 수입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007 스펙터>에서 제임스 본드를 고문하는 '스타브로 블로펠트'

2019년에는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 ‘다이슨 이도’ 박사 역을 맡아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하였다. 그의 차기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은 <조지타운>이다. 재력가인 부인의 사망하자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