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살아남기에도 바쁜 세상이지만, 조금만 시간을 들여 살펴보자. 세상엔 너무도 처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과격한 언사로 지지자를 구슬리는 지배자들은 필요할 때만 피지배자의 모습을 흉내 내기 바쁘다. 내 삶의 기본권은 보장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이 나라에서 더 나은 삶을 가질 기회조차도 주기 싫어한다. 금기라는 것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인재(人災)도 미리 예방할 수 있다지만 정작 우리는 참혹한 현실을 눈으로 접하고 귀로 들은 후에야 행동하기 바쁘다. 이처럼 모순과 절망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뮤지션의 시선을 이번 글에 담아냈다.

 

자발적인 복종을 경계하다, Foals ‘Exits’

Foals ‘Exits’ MV directed by Albert Moya

반세기 이전,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그의 작품 <1984>에서 감시자 ‘빅브라더’를 향해 맹목적으로 복종하면서 동시에 현실 감각이 결여된 당원들의 ‘이중사고’와 이를 지배하는 살벌한 당의 사상을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펼쳐냈다. 궁핍하고 암담한 세상에서 사는 소설 속 당원들은 지배 계층의 억압에 두려움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당에 헌신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1984년을 훌쩍 지나, 대부분의 나라가 ‘인간다운 삶’을 표방하는 지금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떠한가? 놀랍게도, 영국의 인디밴드 Foals가 곡 Exits를 통해 묘사한 현재는 오웰이 그린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출처 - NME 

감시 권력을 대표하는 CCTV가 전혀 낯설지 않은 이곳에서, 우리는 트렌드를 좇고자 소셜 미디어에 광적으로 몰두하고 내 이야기를 끊임없이 오픈하기 바쁘다.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까 두려워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와중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점차 공과 사의 경계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감시 체제에 ‘복종’하면서, 각자의 삶이 존중받는다는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지구는 고질적인 환경 파괴로 황폐화되어가고 있으며 기득권층은 다가오는 미래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고자 지하 벙커를 만들고 있다. 곡 ‘Exits’는 이렇게 황폐화된 미래의 혼란과 이를 탈출할 출구의 모습을 초현실적인 암흑세계로 그려냈다. 바다가 하늘을 잠식하고, 꽃이 뒤집혀 자라나는 왜곡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성적인 대안은 존재하는 것일까?

마우리츠 에셔, <상대성(Relativity)> (1953) via ‘Vogue Australia’ 

밴드는 곡에서 그려낸 현재의 지구의 상황이 마치 네덜란드 판화가 M.C. 에셔가 표현한 초현실적인 미로(상단 이미지 참고)와 같다고 한다. 모든 생명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무도 지구를 탈출할 수 없고, 일부는 이를 피하고자 자신만의 지하 세계를 만들고 있는 기이한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그대로 표현한 뮤직비디오도 곡의 어두운 분위기를 이어간다. 세기말 영화에서 볼 법한 미래의 모습을 복고풍 디스토피아로 연출했다.

‘Exits’는 3월 초에 발매된 밴드의 5집 <Part 1 Everything Not Saved Will Be Lost>의 색감을 대표하는 동시에 꽤 실험적인 요소가 많아 듣는 재미가 있는 곡이다. 도입부를 급 반전시키며 쏟아지는 비트감, 몽롱하게 유영하는 건반, 가볍게 치고 빠지는 코러스, 댄서블한 리듬과 아웃트로와 함께 곡에 공간감을 더하는 기타 솔로 모두 조화롭게 어울려 다채롭다. 밴드의 초기 작품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사운드와 최근 발표작에서 볼 수 있던 예리한 시선이 모두 들어간 것이다. Foals는 뒤이어 6집 <Part 2 (이하 생략)>를 오는 9월에 발매한다고 한다. <Part 1>의 세계관을 이어가면서도, 전작의 밝은 뉴웨이브보다는 무거운 록 넘버가 주를 이룬다니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아는 만큼 행동하라, The 1975 ‘Love It If We Made It’

The 1975 ‘Love It If We Made It’ MV directed by Adam Powell
※ 광과민성 발작을 유발하는 요소가 포함된 영상이므로 시청에 주의를 요함

흑인의 이미지에 공포감을 심어 멜라닌을 팔면서도, 어린 흑인들을 마구잡이로 감옥에 집어넣어 배를 불리는 미국 정부의 모순된 모습이 비친다.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 차별, 사회적 불평등에 저항하면서 흑인들은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리기 시작한다. 구체적인 지표가 보여주는 현실을 가면으로 가리고, 왜곡된 진실(post-truth)를 내세우며 과격하고 보수적인 언행을 펼친 도널드 트럼프는 이념 하나로 ‘기회의 땅’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이로 인해 이민자와 테러리즘에 대한 거부감은 높아지고 극우파의 배척은 미국을 넘어 유럽에서도 문제가 된다. 그 와중에 핵을 무기로 국제 정세를 잡으려는 나라는 여전히 많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사회를 바라보며 우리는 모든 사건을 수없이 공유하고 이에 분노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다.

출처 - The Guardian 

영국 밴드 The 1975의 프런트맨 매튜 힐리(Matty Healy)는 2016년부터 몇 년간 자신이 분노한 대상을 곡 작업에 넣었고, 그 결과 탄생한 곡이 ‘Love It If We Made It’이다. 그는 곡이 사회 비판적이지만 저항 음악(protest song)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무쌍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가사 구절마다 그대로 투영했지만, 곡에서 자신의 주장을 어필하지 않고 꽤 객관적으로 현상을 바라볼 뿐이다. 대신 그는 뭉근히 끓어오르는 비트감과 몽롱한 멜로디, 쟁글거리는 전자음을 짓밟고 열변을 토하듯 그 어느 때보다 호소력 있게 노래한다. 중간에 삽입된 질주하는 기타 리프, 일정하게 튀어나오는 코러스는 묘한 긴장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출처 - Twitter 

미국에서 래퍼 카니예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선언을 했고 결과적으로 둘의 묘한 관계가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반대로 콜린 캐퍼닉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평화적이고 절제된 저항을 보여주며 흑인 사회에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바다 건너 유럽에서는 3살짜리 시리아 이민자 아이가 지중해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영국 사회는 동정심에 불탔지만, 정작 그 사진이 없었다면 사회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 매튜는 부끄러웠다고 한다.

‘Love It If We Made It’은 그렇게 사회를 바라보는 노래일 뿐,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에 사람들이 조작된 정보를 따르며 누군가를 배척하는 삶을 경계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논란을 야기한 언행을 그대로 가사에 실으면서도 검열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막다른 길의 참상을 두 눈 크게 뜨고 바라본 우리다. 노래는 이제 용기를 갖고, 서로 관심을 가져주며 사랑하고 신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