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여러 사람에게 치여 지쳤을 때, 우리는 종종 아무도 없는 숲으로 가고 싶어진다. 울창한 숲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에서의 생활이 잠깐의 휴식이 아니라, 오랜 삶이 되어버리면 어떨까. 숲에서의 대안적 삶(자연주의적 삶)은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다. 물론 여러 어려움 때문에 실제로 이를 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지금 소개할 세 편의 영화들은 숲으로 떠나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떠나게 됐는지, 그곳에서 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이야기들을 한번 살펴보자.

* 아랫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캡틴 판타스틱>

<캡틴 판타스틱>은 제도화된 현대사회와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숲속에서 살아가는 6명의 아이와 아버지 ‘벤’(비고 모텐슨)의 이야기다. 벤은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토대로 아이들을 키우는 인물이다. 그는 획일화된 공교육 대신 독서와 토론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극기훈련으로 아이들의 체력을 키운다. 그렇게 체계적인 숲속 생활을 보내던 벤과 아이들은 어느 날 엄마(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고, 그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도시로 향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시종일관 '별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여자에게 말을 못 붙인다는 이유로, 아디다스를 모른다는 이유로, 노엄 촘스키의 날을 기념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혼란을 느끼게 되고, 벤 또한 자신이 아이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영화는 숲이 아닌 평범한 집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공산품(시리얼)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끝난다. 벤은 결국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벤의 교육방식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관객마다 이에 대한 의견은 극명히 다르겠지만, 영화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아무리 벤의 행동이 극단적이라 할지라도, 획일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주체성과 비판적 사고를 키워주는 교육은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캡틴 판타스틱> 트레일러

영화는 벤의 교육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아무런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좀 더 주목한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 주체적인 삶에 대해 배우면서도, 그의 신념을 비판 없이 따라왔다. <캡틴 판타스틱>은 그 모순을 끊임없이 지적하는 영화다. 개인의 신념이 옳든 아니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들을 별나다고 낙인찍었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개개인의 생각과 신념은 각각의 형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 이게 바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흔적 없는 삶>

<흔적 없는 삶>은 미국 포틀랜드의 국립공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윌’(벤 포스터)과 그의 딸 ‘톰’(토마신 맥켄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피터 록의 소설 <My Abandonment>를 원작으로 하며, <윈터스 본>(2010)의 감독 데브라 그래닉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의 주인공 윌은 전직 군인으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인물이다. 그는 딸과 함께 숲에 숨어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지만, 경찰에게 존재가 발각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공유지에 사는 것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숲에서 퇴출당한 부녀는 정부의 도움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톰은 새로운 곳에 금방 적응하지만, 윌에게 그곳은 소음으로 가득한 또 다른 전쟁터일 뿐이다. 결국 그는 톰을 데리고 다시 숲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윌은 사고를 당하고 새로운 마을에 한 번 더 얹혀 지내게 된다. 갈 곳 잃은 부녀를 진심으로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상황의 변화를 기대하게 하지만, 그런데도 윌은 전쟁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숲으로 향한다. 톰은 더는 아빠의 삶을 따라가지 않기로 한다.

<흔적 없는 삶> 트레일러

<흔적 없는 삶>은 평생 전쟁의 상흔을 지우지 못하는 한 남자(아빠)의 이야기이자,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한 소녀(딸)의 이야기이다. 윌에게 ‘숲’은 살기 위해 가야 하는 곳이었고, 톰에게 ‘숲’은 살기 위해 벗어나야 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로 가슴 아픈 이별을 택한다. 부녀의 이별은 사회가 만든 상처이기에 안타깝지만, 한 개인의 성장(독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름답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장면도 여기에 있다. 이별의 순간에 부녀는 아무런 대사 없이 그저 서로를 잠시 껴안고, 머리를 맞댄 채 서 있는다. 온몸으로 각자의 길을 묵묵히 응원하는 윌(부모)과 톰(자식)의 모습은, 그들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향한 사랑과 유대만큼은 잃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숲 속에서>

<숲 속에서>는 전기도, 수돗물도, 인터넷도, 심지어 시계도 없는 숲속의 오두막에서 9개월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13회 2016년 ‘EIDF(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발)’에 초청되었다. 숲으로 떠난 삼 남매의 엄마이자, 영화의 감독인 ‘수잔 크래커’는 “방과 후에 아이들이 돌아오면 갓 구운 쿠키와 따뜻한 우유를 차려놓은 엄마가 되길 바랐어요”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가족이 숲으로 떠난 이유는 그들끼리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영화는 사회적인 현상이 아닌, 개인적인 결핍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자연주의적 삶이 평화롭고 느긋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숲으로 떠난 가족은 도착하자마자 식량 창고를 짓고, 야외 화장실을 만들며 바쁜 하루를 보낸다. 영하 40도의 추운 겨울에도 물을 길으러 강으로 향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하나 만들기 위해 하루의 절반을 사용한다. 영화의 원제는 <All the Time in the World(아주 많은 시간)>이지만 도시나 숲이나 시간이 없는 건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가족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숲에서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스스로 계획하고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시간이다. 삼 남매와 부모는 창의력을 발휘해 소중한 9개월을 하나둘씩 채워나간다.

<숲 속에서> 트레일러

영화의 끝 무렵에 가족은 “숲속에서 평생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숲을 떠난다. 자연주의적 삶은 값진 만큼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숲에서 온전한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며 영원한 시간을 누렸고, 자유가 무엇인지 배웠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더라도 삼 남매와 부모는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만약 숲으로 떠나는 게 무섭다면, 혹은 떠날 상황이 아니라면, 잠깐이라도 이들처럼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보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본인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Writer

빛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 가끔 글을 쓰고, 아주 가끔 영상을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