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Bottom of My Garden>(1956) 표지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공업 도시에서 체코 이민자 출신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하고 병약한 소년의 꿈은 뉴욕으로 가는 것, 유명인이 되는 것이었다. 예술적 재능이 넘쳐났던 그는 대학(Carnegie Institute of Technology, 현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상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뒤 곧장 뉴욕에 진출했다. 23살이던 1950년 2월, 맨해튼의 아파트로 이주하면서 시골 출신 소년의 본격적인 ‘뉴요커’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뉴욕을 떠나지 않았다.

<Horoscope for the cocktail hour>(c.1961)

뉴욕. 패션과 문화, 돈과 명성의 중심지. 이 꿈의 도시에서 그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사망 직전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보인 모습은 한 패션쇼장의 모델로서였다. 스타일, 패션, 글래머, 이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은 죽음과 냉소, 허무함의 주제와 함께 종이의 양면처럼 그의 작품 세계를 지탱한다.

앤디 워홀 사후에 일기와 영상물, 책이 다수 출판되고, ‘타임캡슐(Time Capsules)’*이 분석되고 또 공개되면서 각종 주제의 기획전이 곳곳에서 열렸다. 연구하면 할수록 더 다양한 면모를 보이는 이 매력적인 작가는 사후에도 현재형 화제를 이끄는 중이다. 그중에는 물론 앤디 워홀이 20대에 그린 초기 일러스트레이션들로부터 이후 전업 작가로서 펼친 예술세계의 단초를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전업 예술가, 팝 아트의 선구자라는 자각 대신, 직업인이자 자연인으로서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발을 디딘 20대의 앤디 워홀. 그의 1950년대 일러스트레이션에는 정제되지 않은 욕망과 호기심, 흥미가 설탕처럼 흩뿌려져 반짝인다. 그가 펴낸 3권의 매력적인 책을 소개한다.

*타임캡슐- 생전 앤디 워홀은 잡지 스크랩, 각종 포스터와 기념품, 편지, 영수증, 책, 사진 따위 온갖 자료들을 갈색 상자에 담고, 상자가 다 차면 겉면에 날짜를 적어 창고에 보관했다. 작가가 직접 ‘타임캡슐’이라 명명한 610개의 상자 속에는 약 50만 개의 물건들이 들어있다고 한다. 작가 사후 그 존재가 일반에 공개되었다. 앤디 워홀 미술관 아카이브 소장.

 

1955년 <À la recherche du shoe perdu(사라진 구두를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shoe perdu>(1955) 표지(좌), <À la recherche du shoe perdu>의 일부(우) © 2015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1950년대 상업 미술가들은 자신의 역량을 선전할 수 있는 프로모션 북을 자가 출판하여 브랜드나 지면의 미술 담당자에게 보내곤 했다. 앤디 워홀 역시 그런 책들을 제작했다. 그는 1953년 첫 프로모션 북을 제작한 이후 몇 권의 책을 더 만들어 배포했고, 1957년경에 이르러 각종 패션 광고 분야에서 활약하여 영리사업을 위한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인정받게 된다. 1952년부터 59년까지 5차례에 걸쳐 ‘아트 디렉터 클럽(Art Director Club)’ 상을 받으면서 상업 예술가로서의 경력은 정점을 향해갔다. 1955년 제작한 <À la recherche du shoe perdu(사라진 구두를 찾아서)>에는 그의 장기였던 화려한 구두 드로잉이 실려있는데, 특히 구두의 환상적인 이미지와 물질적 풍요를 부각하는 반복의 기법을 사용했다. 산뜻하고 눈에 띄는 색감 또한 그의 장기를 예고하며, 트레이싱(베껴 그리기)과 블로티드 라인(Blotted Line, 잉크 방울을 흘리듯 그린 선)**은 이 시기 그의 중요한 특징이다. 또 이렇게 프로모션 북을 제작하고 인쇄에 관여하면서, 판화에 대한 이해를 자연스레 하게 된다는 점도 이후 실크스크린 기법과 원본성에 도전하는 실험을 예견하는 단서가 된다.

**트레이싱과 블로티드 라인- 앤디 워홀이 자주 사용한 일러스트레이션 기법. 사진이나 그림에 트레이싱지를 대고 윤곽을 연필로 베껴 그린 후, 트레이싱지에 잉크로 선을 그려 종이에 찍으면 균일하지 않고 흐르는 듯 번진 특유의 선이 나타난다. 여기에 화려한 색을 칠하거나 금박을 입힌다. 영상을 보고 직접 따라 해보자! [바로가기]

 

1957년 <A Gold Book(금(색) 책)>

<A Gold Book>(1957) 표지(좌), <A Gold Book>의 일부(우) © 2015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A Gold Book>은 친구와 함께한 태국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나른한 동작의 인물들과 정서를 트레이싱 기법으로 표현한 프로모션 북이다. 말 그대로 화려하게 빛나는 금빛 표지를 열면 간결한 선과 화려한 색이 소량 포인트로 사용된 감각적인 드로잉을 총 20점 수록했다. 마치 선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책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배포되었다. 여행을 함께 한 친구 찰스 리산바이(Charles Lisanby, 1924~2013, TV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이후 동성애적 주제를 담은 <Boy Book(소년 책)>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워홀 자신 또한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의 표지도 <Boy Book>과 유사한 정서를 담고 있다. 금빛의 화려한 이미지는 이후에도 다수 사용되는데, 마릴린 먼로 사후 제작한 1962년 작 <금빛의 마릴린 먼로(Gold marilyn Monroe)>가 대표적이다. 유명인, 아름다움, 화려함으로 글래머가 극도로 추구되는 가운데 실크스크린으로 형태와 의미 모두 납작하게 재현한 마릴린 먼로의 얼굴은 죽음과 덧없음의 정서를 드러낸다.

<Gold Marilyn Monroe>(1962)

 

1959년 <Wild Raspberries(야생 라즈베리)>

<Wild Raspberries>(1959) 중 <그레타 가르보 오믈렛(Omelet Greta Garbo)>. 아래 적힌 설명은 이렇다. “제누아즈(설탕과 달걀로 만든 과자)를 쌓고, 분홍색 얼음으로 채우세요. 머랭을 덮어서 살짝 익히세요. 내놓기 직전에 잘 저은 키르슈(체리로 만든 증류주)를 한 잔 붓고 불을 붙이세요. 언제나 촛불을 켠 방에서 홀로 먹어야 합니다.”
<Wild Raspberries> 중 <샹보르 지역의 초콜릿 볼(Chocolate Balls a la Chambord)>.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10인치 정도 되는 오목하고 둥근 플래터를 마라시노 체리, 신선한 민트와 아몬드 열매로 장식하세요. 그 뒤, 로열 페이스트리(Royal Pastry) 숍에 전화로 반 인치 크기의 초콜릿 볼 1파운드를 주문하세요. 아주 마른 사람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오로지 무알코올 진저에일만을 곁들이세요.”

정교하고 세련된 취향의 프랑스식 요리책을 비튼 위트가 가득 담긴 책이다. 공동 저자인 수지 프랑크푸르트(Suzie Frankfurt, 1931~2005, 실내 장식가로도 유명)는 사교계 명사이며 오자가 섞인 아름다운 필기체는 앤디 워홀의 모친인 줄리아 워홀라(Julia Warhola 1892~1972)의 필적이다. 달걀을 넣지 않고 만들어 촛불을 켜 둔 방에서 혼자 먹도록 하는 <그레타 가르보 오믈렛(Omelet Greta Garbo)>, 플라자 호텔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사 오게 지시하는 <트레이더 빅스의 새끼 돼지 요리(Piglet a la Trader Vic's)>와 <알프 랜던(미국 정치인)의 샐러드(Salade de Alf Landon)> 등이 실려있다. 요리책의 형식을 빌려 당대 고급 요리와 문화를 비꼬고 있지만, 정작 이 책은 블루밍데일스(Bloomingdale’s) 백화점의 상류층 고객들을 위한 100매 이하의 한정판으로 제작했다. 앤디 워홀은 유명인이 되고 싶어 했고, 유명인들과 어울리고 싶어 했다. 특유의 드로잉 기법과 화려한 색, 금박 등의 요소가 여지없이 나타나는 이 책의 제목은 당시 개봉한 잉그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영화 <Wild Strawberries(산딸기)>(1957)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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