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링은 대중음악 창작에 주로 쓰는 방법론 중 하나다. 샘플링이 20세기 중반에는 초기 전자음악과 실험 음악에 쓰였다면, 대중음악에서는 1980년대부터 등장한 힙합과 더불어 하우스/테크노 중심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과 이 둘의 영향을 받은 여러 형식의 팝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피에르 셰페르 via ‘BBC

샘플링이 20세기 중반에는 초기 전자음악과 실험 음악에 쓰였다면, 대중음악에서는 1980년대부터 등장한 힙합과 더불어 하우스/테크노 중심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과 이 둘의 영향을 받은 여러 형식의 팝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힙합에서 샘플링은 비트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였다. 턴테이블을 비롯해 여러 샘플러를 사용하는 DJ들은 이전 시대의 펑키한 소울이나 고전 재즈를 비롯한 여러 샘플들을 가져와 비트로 새롭게 구성해냈고, 이러한 과정에서 DJ 프리미어(DJ Premier)나 DJ 섀도우(DJ Shadow), 피트 록(Pete Rock), 닥터 드레(Dr. Dre) 등 이른바 ‘골든 에라’를 빛낸 여러 프로듀서와 DJ들이 등장했다. 이후에는 매드립(Madlib)이나 제이 딜라(J Dilla),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등 샘플링의 기술을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여러 프로듀서들도 등장했다. 시간이 지나 힙합의 형태가 계속해서 변해도 샘플링은 힙합의 기본적인 재료로써 훨씬 더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제이 딜라가 MPC3000으로 어떻게 자신의 비트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다큐 영상

이후에도 샘플링의 역사는 이어졌다. 수많은 샘플링 음원이 생기면서, 유튜브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악에 들어간 샘플링을 찾아내는 채널들이 몇 가지 생겨났다. 사실 이러한 유튜브 채널이 생기기 전부터 샘플링된 음원을 찾는 일은, 여러 프로듀서와 DJ를 비롯한 음악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요했다. 많은 훌륭한 DJ나 프로듀서들은 저마다의 디깅 실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무도 모르는 샘플을 찾아내거나, 자주 쓰이는 유명한 샘플을 그들만의 획기적인 방식으로 재가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디제잉과 비트 메이킹의 긴 역사에서도 샘플링을 완벽하게 쓰였다고 평가받는 곡들이 탄생했고, Duven Music이 만든 영상 중 하나는 정확히 이를 소개하는 영상이다.

Duven Music <Top 25 Albums of 2018>

물론 이와 같은 내용은 ‘Who Sampled’와 같은 샘플링을 주로 다루는 사이트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Duven Music의 영상 역시 ‘Who Sampled’ 차트에 등장하는 25곡의 가장 높이 평가된 샘플들을 이를 사용한 다른 힙합곡들과 대조하는 내용이다.

재즈, 소울, 펑크, 디스코,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샘플들이 등장하며 여러 중요한 힙합 음악인들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가운데, 현시점 ‘Who Sampled’가 가장 높이 평가한 샘플링은 바로 매드빌런(Madvillain)의 ‘ALL CAPS’다. 매드빌런은 프로듀서이자 DJ인 매드립이 MC인 MF 둠(MF Doom)과 함께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의 유일한 음반인 2004년작 <Madvillainy>의 대표곡인 ‘ALL CAPS’는 1960년대 TV 쇼인 <아이언 사이드(Ironside)>에 실린 사운드트랙에서 멜로디를 샘플링 했다. 애초에 <Madvillainy> 자체가 매드립이 철저히 구성한 샘플링으로 이뤄진 비트와 더불어 MF 둠의 훌륭한 라임과 리릭으로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반으로써 평가받는데, Duven Music은 최근 <Madivillainy> 한 장에 샘플링 된 음원들을 하나하나 대조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하면서, 한 음악인의 커리어 전체를 다룬 다른 영상들보다도 훨씬 더 긴 길이에서 음반에 층층이 쌓인 샘플링들의 결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Madvillainy>의 샘플링 브레이크 다운 영상

이런 과거 음반들과 별개로 동시대 힙합에 사용된 샘플들을 찾아 나서는 채널도 있다. Bandstand는 2010년대에 나오는 대표적인 힙합 음반을 중심으로 여기에 쓰인 샘플들을 빼곡하게 찾아내며, <지금 당장 알아야 할 핫한 샘플> 같은 컴필레이션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영상을 보다 보면 음악인들 저마다의 샘플링 스타일을 알아차릴 수 있다.

릴 핍(Lil Peep)은 그의 이모 랩 스타일에 따라 2000년대의 인디 록이나 이모, 펑크 등을 주로 샘플링 했고, 칸예 웨스트는 소울 트랙의 피치를 변경하는 특유의 스타일을 다양한 장르, 종종 전자음악과 접목했으며,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은 오래된 전자음악과 포스트 펑크 등의 여러 어두운 샘플들로 <Atrocity Exhibition>를 만들기도 했다. 아랍풍의 벨소리부터 하드코어 펑크 밴드, 온갖 기계음에 그들 스스로의 음악까지도 샘플링 하는 데스 그립스(Death Grips)도 빼놓을 수 없다.

릴 핍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Bandstand의 영상은 애벌런치스(Avalanches)의 <Since I Left You> 속 샘플링을 분석한 영상이다. 2000년에 나온 이 음반은 힙합이 아닌 호주의 DJ들이 만든 댄스 음반이지만, 오로지 샘플링만으로 음악을 만드는 장르이자 방법론인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게 해낸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애벌런치스는 수많은 중고음반에서 조각조각 끌어온 3,500개나 되는 미세한 샘플들을 차곡차곡 배치했고, 이 모든 작은 소리의 조각들이 거대한 퍼즐처럼 위화감 없이 합쳐져 <Since I Left You>가 되었다. Bandstand는 이 모든 샘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비교하며 30분이 넘는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이 보여주듯 <Since I Left You>는 샘플링을 가장 완벽히 이용한 음반일 것이다.

<Since I Left You>의 샘플링들을 찾아내고 대조하는 Bandstand의 영상

두 채널 외에도 샘플링을 찾아내고 분석하며 비교하는 채널들이 존재한다. 힙합에서는 XSamples가 다른 채널들처럼 동시대 힙합 음반을 다루고, 가사 분석을 중심으로 힙합 콘텐츠를 다루는 Genius도 한 음반에 사용한 모든 샘플을 찾아내는 시리즈가 있다. nosbo 2007처럼 1990년대의 힙합을 중심으로 샘플링을 시대별로 찾는 채널이 있는가 하면, 특히 피치를 조절하고 소리를 변형한 샘플들을 사용해 인공적인 레트로 사운드를 만드는 베이퍼웨이브와 퓨처 펑크 성향 음반들의 샘플링을 분석하는 Vladimir Putin도 특기할 만하다.

샘플링은 오랫동안 대중음악의 소리를 만드는 주된 방법론이었고, 많은 사람은 저마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이 샘플들을 특별하게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샘플링은 단순히 실제 레코딩 과정만이 아니라 녹음 이후의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서도 창조적 깊이를 훨씬 넓힐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줬다.

‘Most Sampled’에서 가장 많이 샘플링된 곡은 ‘Amen, Brother’다. 이 곡의 6초짜리 드럼 루프는 이른바 ‘아멘 루프(Amen Loop)’라고 불리며 1980년대 후반부터 힙합과 전자음악에서 널리 퍼져 그 비트에 큰 영향을 끼쳤고, 현재까지 3,000번이 넘게 사용되며 새로운 곡으로 다시 탄생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만 봐도 샘플링은 단순한 복사-붙여넣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작품들의 인용으로 새로운 맥락과 의미를 부여하는 게 특징인 지극히 창조적인 작업이다.

‘Amen Loop’에 대해 다룬 영상

 

메인이미지 'Most Sampled' 유튜브 영상 썸네일

 

Writer

어설픈 잡덕으로 살고 있으며, 덕심이 끓어 넘치면 글을 쓴다. 동시대의 대중 음악/한국 문학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인디 게임, 인터넷 문화, 장르물 등이 본진(중 일부). 웹진 weiv에서 대중 음악과 비평에 대해 쓰고 있고,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창작/비평하고자 비효율적으로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