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이사 철이라고 하지만 제집 없는 사람들에게 이동은 일상이다. 임대 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이사를 해야 하는 1인 가구와 새 학기를 맞아 월세를 알아보는 대학생처럼 타향에 살거나 집 살 돈이 없으면 전세와 월세살이는 숙명이 된다.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자 하는 소망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평온한 환경을 찾기 위해 난민들은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 이주를 단행하기도 한다. 과연 제집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행복을 찾아서> <화염의 바다> 세 영화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집 없는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미국 청소년소설 작가 바바라 오코너의 원작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영화다. 10살 소녀 ‘지소’(이레)는 엄마 ‘정현’(강혜정)과 동생 ‘지석’(홍은택)과 함께 봉고차에서 산다. 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아빠는 재산이 압류당하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 하나만 남긴 채 가족을 떠났다. 지소는 아빠를 기다리며 빨랫줄, 이불, 옷가지 등 살림살이가 구비된 봉고차에서 등하교를 하며 일상을 보낸다.

지소는 생일날이 다가오자 친구들을 초대할 번듯한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채연: 집을 사는 게 아니야, 전세라는 걸 사는 거지.
지소: 그게 뭔데?
채연: 어른들은 집 사는 걸 그렇게 부르더라구.

지소가 ‘채랑’(이지원)이랑 부동산을 돌다가 발견한 예쁜 집은 “평당 500만 원”이다. ‘평당’이라는 개념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평당을 지역 이름으로 착각한다. 아이들에게 500만 원이면 집 한 채 값으로 충분한 것이다. 5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소는 돈 많은 노부인(김혜자)에게서 강아지 ‘월리’를 훔친다.

봉고차에서 생활하는 지소의 일상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 그 어디쯤이다. 지소네가 매일 밤 봉고차를 주차할 공간을 찾아 헤매고, 근처 공중화장실에서 세면을 해결하는 일은 분명 고되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바깥 일상을 다소 낭만적으로 그린다. 다행히 영화 속 계절은 여름이라 지소와 지석이는 추위에 떨 일이 없다. 정현이가 일을 나가고 지소가 학교에 간 사이, 지석이를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석이는 혼자서도 잘 지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를 것이다. 집 없이 봉고차에서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 진짜로 발생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예고편

 

<행복을 찾아서>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병원에 의료 기계를 파는 세일즈맨이다. 불경기로 기계가 팔리지 않자 집세 낼 돈조차 벌지 못한다. 매일 야근하던 아내 ‘린다’(탠디 뉴튼)는 생활고에 지쳐 크리스와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를 두고 떠난다. 기계를 팔기 위해 거리를 헤매던 중 크리스는 우연히 화려한 차를 가진 주식 중개인을 만난다. 숫자에 밝고 사교성만 좋으면 주식 중개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크리스는 단 한 명만 살아남는 증권사 인턴십에 도전한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인턴십 과정 때문에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크리스는 아들과 함께 집에서 쫓겨나 거리 생활을 시작한다.

<행복을 찾아서>는 1980년대 자수성가한 미국 부호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포레스트 검프>의 제작자였던 스티브 티시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했다. 윌 스미스가 주인공 크리스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크리스 아들로 실제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열연해 화제가 됐다. 크리스 이야기를 TV에서 접한 윌 스미스는 크리스가 보여준 부성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제이든 스미스는 촬영 내내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연기했으며, 윌 스미스는 그런 아들과 매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1987년 크리스는 가드너 리치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2006년 크리스는 자신의 회사 지분 일부를 수억 달러에 매각했다.” 엔딩에 나오는 자막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완벽한 판타지 영화라는 것을 암시한다. 크리스처럼 홈리스 생활을 하며 극도의 빈곤을 경험하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부자가 되는 경우는 지금 현실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집 없이 정규직 전환을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며 동시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크리스의 모습은 고달파 보인다. 그래서 그가 꿈을 이뤄 부자가 될 때는 감동이 밀려오지만 어딘가 허망하다. 영화는 크리스가 부단히 애쓰는 모습에만 집중할 뿐 그가 나락으로 내몰린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왜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집과 일자리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시킨다.

<행복을 찾아서> 예고편

 

<화염의 바다>

다큐멘터리 작품으로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첫 황금곰상 수상작이다. 이탈리아 출신 거장 다큐멘터리스트, 잔프랑코 로시 감독이 만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70마일, 시칠리아섬에서 120마일 떨어진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다. 람페두사는 지난 20년간 자국의 테러, 전쟁, 폭력, 기근을 피해 탈출한 40만 명의 난민들이 도착했던 곳이다. 시칠리아 해협을 건너 유럽으로 오려던 이들 중 1만 5천 명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감독은 이곳 람페두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로 담담히 기록했다.

영화는 람페두사에 사는 12살 소년 ‘사무엘’의 일상과 난민들이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 람페두사에 도착하는 과정을 교차로 보여 준다. 사무엘은 새총을 만들어 친구와 장난을 치고, 할머니로부터 어부였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부둣가에 나가 항해 연습을 한다. 그 시각 람페두사 해안에서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이 이어진다. 작은 보트에 올라탄 수백 명의 난민은 배가 육지에 닿을 때까지 탈수와 화상, 사고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무정한 죽음은 어린아이와 임산부를 가리지 않는다. 해안경비대는 매일 죽음을 피하지 못한 난민들의 시신 수십, 수백 구를 바다에서 건져낸다.

바다는 삶의 터전과 죽음의 경계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부인 람페두사에서 바다는 생계 터전이다. 주민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려 밥을 짓는다. 때론 사랑하는 조카를 위해 ‘화염의 바다’라는 곡을 지역 라디오에 신청하기도 한다. 바다는 주민들에게 일상의 일부이지만, 난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화염의 바다’이다. 배에 오르는 난민 중 제일 적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연료를 담은 석유통과 함께 화물칸에 실린다. 이동 도중 누출된 석유는 바닷물과 섞여 난민들에게 화상을 입힌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난민들이 바다로 몸을 내맡기는 까닭은 그저 안전한 세상, 평온한 집을 찾기 위해서다.

<화염의 바다> 트레일러

 

메인 이미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스틸컷

 

 

Writer

망원동에서 사온 김치만두, 아래서 올려다본 나무, 깔깔대는 웃음, 속으로 삼키는 울음, 야한 농담, 신기방기 일화, 사람 냄새 나는 영화, 땀내 나는 연극, 종이 아깝지 않은 책,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