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은 뭐 하나 편리하게 돌아가는 것들이 없다. 곱게 쌓은 화장은 번들거리기에 십상이고 조심스레 걷는 수고를 들여도 바짓단에 튄 흙탕물 자국은 공들인 발걸음을 무시하듯 마음까지 얼룩지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빗물에 젖지 않기 위해 파라솔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법한 강력한 우산을 들어도 눅눅함을 피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로맨스 영화 속엔 비가 내렸다. 머리가 휘날리고 번거롭게 우산을 들어도 비와 함께 아름다운 순간이 담겼다.

<늑대의 유혹>(2004) 스틸컷

영화 속에서 비가 내리면 그 공간의 일상적인 소리의 볼륨이 꺼진다. 배우들 뒤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바로 옆을 지나는 사람의 목소리도 듣기 힘들다. 오로지 주인공과 마주한 상대의 목소리만 들려 로맨틱한 무드가 조성되기도 한다. 또 내리는 비에 몸을 맡긴 배우의 모습은 회피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철저한 계산과 계획을 통해 감독이 뿌린 ‘영화 속 비’는 영화마다 다르게 표현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달콤하게 뿌린 비는 로맨틱한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만들어 냈을까?

 

<노트북>

가진 것 하나 없는 자유로운 ‘노아’(라이언 고슬링), 부족한 것이 없는 ‘앨리’(레이첼 맥아담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고 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된다. 영화 <노트북>에서도 비의 힘은 강력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겉도는 대화만 주고받다가, 갑작스레 내린 비에 참아왔던 것들이 씻겨 내려간 듯 감정에 솔직해지기 시작한다. 앨리는 7년을 기다리는 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노아를 원망했지만 노아는 매일 앨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답한다. 그들의 오해가 빗물에 씻겨가고 시간이 오래 흘렀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장면이다.

<노트북>의 연못 신, 후반부에 비오는 신이 이어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감독과 조성우 음악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속 비 내리는 장면.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이 우산 쓰고 길을 걷는 장면은 많은 사람이 손에 꼽는 장면이다. 한 쪽 어깨가 다 젖도록 정원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 주는 다림의 마음과 그걸 알고 다림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정원의 마음이 대사 없이도 전해지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내리는 비와 작은 우산 때문에 두 사람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둘의 마음이 엿보여 유난히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저녁 7시쯤 사진관으로 오겠다던 다림을 기다리는 동안 콧노래를 부르는 정원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비 오는 거리 신

 

<어바웃 타임>

‘팀’(도널 글리슨)과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의 결혼식 장면은 화려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사람들로 가득 찬 장면이다. 구름이 가득한 날씨, 애써 준비한 머리와 드레스가 휘날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심지어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뭔들 두 사람의 결혼을 막을 수 있을까. 신부 행진곡으로 지미 폰타나(Jimmy Fontana의 ‘일 몬도(ll Mondo)’라는 곡이 흐르고 사람들이 비를 피해 달리는 모습, 넘어지는 장면, 소리 지르는 소리까지 뭐 하나 합이 맞지 않아 보이지만 팀과 메리는 행복하기만 한 모습이다. 메리의 빨강 드레스, 일 몬도, 비에 흠뻑 젖은 신랑과 신부는 꽤나 이상한 조합이지만 볼수록 사랑스럽다. 날씨보다 두 사람의 감정이 모든 것을 정하게 된다는 걸 보여준다.

<어바웃 타임> 비 오는 날의 웨딩 신

 

따뜻함, 솔직함, 설렘…. 로맨스에 꼭 필요한 감정들을 포용하는 ‘비’는 로맨틱한 영화를 더 사랑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가 내리는 로맨틱한 영화를 더 즐기고 싶다면 <늑대의 유혹>(2004) <이프 온리>(2004) <클래식>(2003) 등의 작품도 눈여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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