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음악계에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한 뮤지션들은 있다. 그들은 매스컴과 대중의 멸시를 당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뮤지션들은 반대로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밝힘으로써 더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가 확대되고 계속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퀴어 뮤지션들은 ‘Love is Love’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현재의 퀴어 뮤지션들을 바라보며, 사랑의 즐거움과 아픔을 이야기하는 곡들을 이번 글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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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lle Monáe ‘Make Me Feel’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 그들의 메시지를 대변하고 이를 곧 자신의 커리어에서 실천하는 걸출한 뮤지션 자넬 모네(Janelle Monáe). 이전까지 아프로퓨쳐리즘에 기인한 SF 이미지, 앨범의 화자를 안드로이드로 설정해 약자를 대변하면서도 탄탄하게 다진 방향성과 수많은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로 그는 자유로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바이섹슈얼이자 판섹슈얼임을 공개적으로 알린 뒤 발표한 콘셉트 앨범 <Dirty Computer>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과 동시에 소수자들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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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전설 프린스(Prince)의 영향을 받은 트랙 ‘Make Me Feel’은 두터운 신시사이저의 발놀림을 지배하는 자넬 모네의 펑키한 보컬 전개로 80년대 팝 사운드를 연상케 한다. 그는 곡에 대해 자유로워진 자신이 자축하는 노래라 언급했다. 곡의 서두에서는 이전까지 자신을 따라다닌 성 지향성에 대한 모두의 질문을 언급하고, 뒤이어 우회적으로 자신이 성적으로 자유로워졌음을 선언한다. ‘편견과 지배에서 벗어나 흑인 여성으로서 해방된 즐거움과 이에 대한 축복’을 전하며, 곧 어린 퀴어 리스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차별에 좌절하지 않고 그들만의 사랑을 시작’하길 격려한다. 과감하고 직설적인 가사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는 보랏빛 아련한 조명 아래 배우 테사 톰슨과 남자 댄서와 함께 안무를 하면서 바이섹슈얼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했다.

 

Troye Sivan ‘Bloom’

오래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내러티브를 통해 펼쳐내는 뮤지션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은 유튜브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동시에 개성 있는 앨범으로 평단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그는 2018년 발매한 2집 <Bloom>에서 LGBTQ 커뮤니티의 스토리를 예리한 접근과 수수한 표현력으로 자연스럽게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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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이 전작보다 어두워진 가운데 수록곡 ‘Bloom’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밝고 경쾌한 버블검 팝 트랙이다. 낮은 톤으로 시작해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에서 일렁이는 신스 라인과 둔탁한 비트감이 상당히 경쾌하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지배하는 가사이기도 한, ‘너를 향해 피어난다’는 곡의 메시지는 곧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에 대한 찬가인 동시에 사랑에 눈을 뜬 성적인 은유이기도 하다. 뒤이어 ‘나는 (내가 꽃을 피워낼) 이 계절을 기다려왔다’, ‘내 정원으로 놀러 오라’는 등 자연과 관련된 은유 표현에 유의적으로 접근한다. 뮤직비디오에서도 트로이 시반은 드래그 퀸이 되어 한껏 꾸민 모습으로 관계에 있어서 복종적인 자세를 취한다. 곡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내주면서 본인 역시 인생의 달콤함을 알아가고 있다.

 

Halsey ‘Strangers’

어두우면서도 팝스러운 스타일을 고수하는 얼터너티브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공개적으로 자신이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힌 할시(Halsey)는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를 끊임없이 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부터 시적인 표현력과 허스키 보컬로 담대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그는 자신을 ‘안티 팝스타’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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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을 가져온 2집 앨범 <hopeless fountain kingdom>의 수록곡 ‘Strangers’는 두 화자가 각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트랙으로, 할시가 연기하는 ‘Luna’와 걸그룹 피프스 하모니 출신의 뮤지션 로렌 요로구이(Lauren Jauregui)가 맡은 ‘Rosa’가 연인 관계로 등장한다. 복고풍의 신스팝 사운드에서 두 보컬 모두 허스키하고 뇌쇄적인 중저음으로 다운톤의 분위기를 전하는데, 할시 보컬의 쓸쓸한 감성과 거친 로렌의 표현력 덕분에 곡은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진실한 감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관계만으로 이끌리는 것을 느낀 두 여성은 다툼 뒤에도 서로에 대한 적의만 남긴 채 각자를 ‘낯선 이’로 바라보며 위태로운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할시가 곡에서 직접적으로 여성 대명사(she)를 사랑의 대상으로 언급한 것은 이 곡이 처음이며, 로렌이 바이섹슈얼임을 밝힌 것이 할시가 그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Kehlani ‘Honey’

몇 장의 믹스 테이프와 데뷔 앨범을 통해 그래미 어워즈에 후보로 오를 정도로, R&B 신에 새로운 흐름을 쌓아 올린 뮤지션 켈라니(Kehlani). 그는 자신을 퀴어라고 지칭하면서도 해당 용어가 내포하는 고정관념으로 정의하는 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여성성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도 지양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출처 - Billboard 

스캔들 사건으로 매스컴에 오르며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켈라니는 1집 <SweetSexySavage>에서 자아 성찰을 거듭한 진솔한 이야기를 빈티지하고 색채 짙은 소울 그루브에 담아내 좋은 평을 받았다. 정규 앨범 활동 이외의 여러 준수한 작품 중에서 유난히 빛나는 디지털 싱글 ‘Honey’는 본격적으로 그의 성적 정체성을 알리는 트랙이자 퀴어 앤섬으로도 불린다. 가벼운 어쿠스틱 기타 루프와 그의 보컬로만 이뤄진 곡이지만, 보편적인 곡 구성을 타파하며 후렴구를 전면에 배치해 메시지를 강하게 남긴다. 또 후반부에서는 길게 여운을 남겨 색다른 시도를 했다. 이전 작품과 같이 솔직하게 토로한 곡의 가사 중 ‘나는 내 여자들을 마치 꿀처럼 좋아해, 달콤하지’라는 첫 소절의 낭만과 행복은 곧 허밍과 함께 ‘이게 사랑일까’라는 의문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의문은 레즈비언의 아이콘인 헤일리 키요코(Hayley Kiyoko)와 함께한 트랙 ‘What I Need’에서 곧바로 풀렸다.

 

메인 이미지 자넬 모네, 출처 – The EDGE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