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은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학문이다. 단지 한두 가지 외국어를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쓰는 여러 종류의 언어가 어떤 원리로 발생, 변화하는지 연구하는 일종의 과학에 가깝기 때문.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언어와 관련된 상황마다 반드시 언어학자가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학자가 주인공인 영화 셋을 모았다. 언어의 소멸, 새로운 언어의 출현 등 특별한 상상력과 의미가 가미된 영화들의 언어 정의법을 살펴보자.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언어는 관점이다.”

소멸 위기의 고대 토착 언어 ‘시크릴어’. 세상에는 이 시크릴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 단 두 명 존재한다. 젊은 언어학자 ‘마르틴’은 시크릴어를 지키기 위한 연구 목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은 젊은 시절 크게 다툰 뒤 서로 말을 안 섞은 지 50년이 넘었다. 과연 마르틴은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를 설득할 수 있을까?

영화 초반부에는 시크릴어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에 따르면 태초의 여자는 새였다. 새는 땅을 걷는 남자를 사랑했고, 남자 역시 새를 사랑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맺어지기 어려웠고, 새는 남자에게 밀림 공용어인 시크릴어를 가르쳐 남자와 결합한다. 말하자면 시크릴어는 자연의 언어였으며,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연의 일부였다.

시크릴어의 전설은 영화의 주제와 연결된다. 이사우로와 에바리스토는 왜 긴 시간 대화하지 않았을까? 다툼 후에 뒤따르는 서로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조금 다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닌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써 언어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이야기인 것. 멕시코와 네덜란드 합작 영화로 2017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후 관객상을 받았다. 지난 3월 7일 국내 개봉했다.

 

<컨택트>

“언어는 사고다.”

현존 최고의 SF 소설가로 추앙받는 테드 창. 이 영화는 그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앞서 <그을린 사랑>(2010),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등을 연출하며 주목을 받았던 젊은 감독 드니 빌뇌브가 연출을 맡았다. 국내에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는 여느 때처럼 대학에 강의하러 갔다가, 12개의 외계 비행물체가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했다는 속보를 듣는다.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스는 군대로부터 외계인의 언어를 번역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결국 비행물체가 착륙한 곳으로 가서 외계인들과 접촉하게 되는 루이스. 그와 외계인은 차츰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며 소통하게 된다.

루이스가 외계인의 언어인 ‘헵타포드’를 배워감에 따라, 영화에는 루이스의 과거 회상 장면이 점점 많이 등장한다. 이는 “사람의 사고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형성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에 따라, 점차 세상을 다르게 보고 사고하게 되는 루이스의 변화를 반영한 것. 결국 이 이야기 속에서 인류는 헵타포드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이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사고방식과 경험을 얻게 된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편집상을 받았으며, 그 밖에 무려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스틸 앨리스>

“언어는 기억이다.”

저명한 언어학자 ‘앨리스’. 자상한 남편과 똑똑한 아들, 딸까지 두어 남 부럽지 않게 살던 그에게 언제부터인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강의 도중 익숙했던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고, 매일 다니던 길을 방황하며, 약속들을 수없이 깜빡하는 일이 생긴 것. 병원에 간 그는 50대 젊은 나이에 희귀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앨리스는 유능한 언어학자였기에, 끝없는 대화와 단어 환기 및 정보 복습을 통해 사라지는 기억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앨리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증상은 급속도로 악화한다. 본래 워낙 높은 지적 능력과 학식을 갖추었던 탓에 질병을 최대한 버텨내다가 의심과 진단이 많이 늦어진 것. 하지만 앨리스는 실망하지 않고 알츠하이머 치료 협회 회담에서 연설까지 하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연설에서 앨리스는 고백한다. 자신은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그리고 그 속에서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 순간을 애쓰고 있는 것뿐이라고. 영화 말미, 앨리스는 대부분의 언어 능력을 상실한다. 그러나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맞서 싸웠던 그에게, 기억은 결코 잊게 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단어를 남긴다. 2007년 리사 제노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주연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모든 이미지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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