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해야 할 것들의 무게감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이 피곤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대답을 해야만 하는 질문들이 피곤하다. 깰 수 없는 약속들과, 반드시 해야만 인간다워지는 모든 것들이 피곤하다. 끊이질 않는 소음과, 그 소음이 있어야만 왠지 안심할 수 있는 도시의 밤도 피곤하다. 버스 창틀에 기대서, 한 뼘 만한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턱이 빠져라 하품을 해보며 회사 화장실 변기 위에서 쪽잠을 청해보아도 피곤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쉬고 싶다. 한낮에 햇빛을 받으며, 있는 대로 늘어져서 숨만 간신히 쉬고 있었으면 좋겠다. 졸다가, 상상하다가, 읽을거리를 찾아 읽다가, 다시 스르륵 잠이 드는 그런 나른한 휴식을 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절로 가르릉, 골골송을 부를 것만 같은 고양이를 닮은 나른한 휴식을.

지금 당장 그 휴식을 가질 수 없으니, 고양이를 닮았고, 고양이를 노래하고, 듣고 있자면 포근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한 마리 고양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것 같은 음악들을 소개한다. 기분 좋은 하품을 하면서 듣다 보면, 내 곁의 온도가 1도는 더 올라간 듯한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Swinging Popsicle ‘ベランダ猫(베란다 고양이)’

누군가는 Swinging Popsicle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칠 수도 있겠다. 시부야 펍을 대표하는 Swinging Popsicle은 1995년에 결성된 아주 오래된 밴드다. 2009년에 정규 음반 6집이 나온 후, 이제는 이 밴드의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1995년부터 2009년이라는 시간 동안 Swinging Popsicle은 정말이지 주옥같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음악들을 남겼다. 결코 넘치지 않는 서정성과, 시티팝과 소프트팝을 어우르는 선율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Swinging Popsicle, 출처 – sync music 

특히 ‘ベランダ猫(베란다 고양이)’는 이 밴드의 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데, 이 곡이 트위터나 싸이월드 같은 SNS를 통해 인기를 끌면서 한국 팬들도 급증하게 되었다. 오래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도 Swinging Popsicle이 초청된 바 있다.
베란다 고양이는 이제 다시는 베란다로 찾아오지 않는 한 마리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어딘가 있을 고양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따뜻하면서도, 조금은 슬픈 언어로 가득 찬 곡이다. 왠지 모르게 그 유명한 <어린 왕자> 속 길들어진 여우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도, 역시 함께 우주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을, 스쳐 지나간 많은 고양이들의 행복을 빌게 되는 포근함이 이 곡 안에 머물고 있다.

 

캐스커 ‘고양이 편지’

“나만 고양이 없어”
이 문장이 한창 유행이었을 때 집사들은 자랑하곤 했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힘없이 누워있을 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고양이가 가만히 다가와 등을 맞대어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그 다정함을. 동물과의 교감은 정말이지 신기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언어로 꺼내지 않아도,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보드라운 털의 감촉에서, 전해오는 체온 속에서 매일같이 들을 수 있으니. 캐스커의 ‘고양이 편지’에서도 고양이는 이런 말을 전해온다.

사람의 삶이란 꽤나 쓸쓸해 보여
그래도 내가 팔짝
너의 무릎에 납작 누워서
널 웃게 만들잖아
그래도 나는 항상
네가 어디 있든 너를 생각해
널 많이 사랑하고 있어

캐스커, 출처 – 캐스커 공식 페이스북 

집사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곁에 있는 고양이의 ‘사랑의 언어’를 마음껏 만끽하며 꼭 끌어안아 주면 좋겠다. 고양이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부러워하며 그 사랑의 온기를 상상해보는 수밖에.

 

김므즈 ‘할머니, 준희 아빠, 고양이, 혹은 해바라기 얼굴들’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 있다. 담담하게 노래하는 김므즈의 음악이 그렇다. 특히나 ‘할머니, 준희 아빠, 고양이, 혹은 해바라기 얼굴들’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다정하고 아름다운지를 짐작할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해진다. 고양이가 타박타박 걷는 것 같은 뭉툭하고 조심스러운 선율은 가사와 어우러져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다정히 위로한다.

김므즈, 출처 – 네이버 뮤직 

이 곡에는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아가도 없는 유모차를 끌며 폐휴지를 줍는 굽은 허리의 할머니, 목까지 잠긴 넥타이를 매고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준희 아빠, 네발로 다니느라 멀리 내다볼 수 없는 고양이, 해가 지기도 전에 고개를 숙여버린 노란 해바라기까지. 곡의 화자는 이 모습들을 담담히 부르다가, 한마디를 날린다.

“모두 안아줄 거예요.”

흘러가는 잔잔한 풍경만큼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 곡은, 바쁘게만 흘려버려 자세히 보지 못했던 풍경을 잠시나마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음악으로 남겨두었구나’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안심을 하고서.

 

Monoman ’Meditation’

끝으로 모노맨이 연주한 ‘Meditation’이라는 기타곡을 짧게 소개해보려 한다. 이 곡에는 ‘고양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이 음악이 주는 멜로디와 감성이 꼭 ‘고양이 노래’처럼 들린다. 실제로 곧을 연달아 듣다 보면, 분명히 작곡가가 의도를 가지고 넣은 것이 분명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이 소리마저도 음악이 되어 듣는 이의 귀를 달콤하게 한다.
곡을 듣고 있자면, 입가에는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걸리고, 조금은 편안해진 한숨을 쉬게 된다. “오늘도 고생했어”라며 등을 기대오는 따뜻한 고양이를 닮은 음악이다. 느릿느릿 여유롭고 나른한 선율을 길게 길게 음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우리, 지금까지 정말 많이 고생했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 같지만, 그 길을 내내 뛰기보다는 엇박자로 천천히, 여유롭고 유연하고 행복하게 걸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길을 가는 데 이 음악들이 도움을 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메인 이미지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016) 스틸컷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